[2월 2주차]#플랫폼 #공정위 #미국
안녕하세요. 서진욱 기자입니다.
정부가 제정 절차에 착수한 플랫폼법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재계가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찬반 논쟁에 불이 붙었는데요. 한미 통상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도 포착됩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플랫폼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미국 재계와 정부의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달 중 플랫폼법 초안을 발표할 예정인데요. 찬반 논쟁이 더욱 거세질 것 같습니다.
다음 레터는 설 연휴 이후인 13일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가족들과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미리보기
한미 반발 직면한 플랫폼법… 무슨 내용이길래?
미국의 강한 반발… "중국 기업·공산당에 선물"
일단 지켜보는 미국 정부… 의미심장한 IRA 발언
국내 기업들의 '역차별' 우려… "자율규제 기조와 배치"
곤혹스러운 공정위, 이달 중 초안 발표 예정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 절차에 돌입한 '플랫폼경쟁촉진법'(플랫폼법)이 국내외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미국 재계가 크게 반발하면서 한미 통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국내 인터넷기업들은 한참 전부터 플랫폼법 제정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습니다. 큰 줄기의 입법 방향성만 공개된 상황인데 공정위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거셉니다.
지난해 12월19일 공정위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플랫폼 규제 입법 방안을 보고했습니다. "독과점 폐해가 빠르게 확산하는 플랫폼 시장 특성상 현행 규율 체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독과점 규율 개선 TF의 논의 결과를 반영했죠.
공정위는 플랫폼법이 제정되면 △반칙 행위에 빠르게 대응 △예방효과 증진 △소상공인, 소비자 경제부담 완화 △스타트업 등 플랫폼 사업자의 진입 용이 및 활동 활성화 등 선순환 효과가 기대된다는 입장인데요. 플랫폼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플랫폼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힘이 큰 소수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반칙행위 금지
지배적 사업자 지정 과정에서 사업자들에게 지정 전 의견 제출, 지정 후 이의제기, 행정소송 등 다양한 항변 기회 보장
사업자가 반칙행위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 금지 대상에서 제외
정당한 이유: 경쟁제한성이 없거나 소비자 후생 증대 효과가 있는 경우, 다른 법률 준수를 위해 필요하며 다른 방식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 등
핵심 쟁점은 플랫폼법 규제 대상인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어떻게 정하느냐는 건데요. 구글과 메타, 애플,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플랫폼 기업은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게 매우 유력합니다. 아직 공정위는 대략적인 지배적 사업자 기준도 공개하지 않았는데요. 대상 기업을 최소화한다는 원칙만 밝힌 상황입니다.
미국 재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찰스 프리먼 아시아 담당 부회장 명의의 성명에서 "플랫폼 규제를 서둘러 통과시켜려는 듯한 한국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는데요. 미국 재계가 플랫폼법에 반대하는 건 이미 알려졌지만, 미국 최대 경제단체인 상의의 공개적인 입장 표명은 이례적입니다. 상의는 플랫폼법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경쟁을 짓밟고, 좋은 규제 관행을 무시할 뿐 아니라 정부 간 무역 합의를 위반한다고 주장했죠. 플랫폼법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위배된다는 논리죠.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도 공정위의 플랫폼법 제정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윌리엄 라인시 국제경제석좌 겸 선임자문관(클린턴 정부 상무부 차관)은 기고문에서 플랫폼법이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 Digital Markets Act)처럼 미국 플랫폼 기업을 불공정하게 겨냥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도 했죠.
트럼프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로버트 오브라이언도 기고에서 "미국과 한국 기업들이 진정한 경쟁과 혁신을 방해받는 동안 중국 기업들에 디지털 경제를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중국 기업들에 유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브라이언은 플랫폼법이 '중국 공산당에 선물'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죠. 오브라이언은 2기 트럼프 정부가 출범할 경우 국무장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입니다.
지배적 사업자 지정이 유력한 미국 기업들은 공정위와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공정위와 암참(주한 미국 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5일 플랫폼법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는데, 구글과 애플, 메타 등 규제 대상 기업들이 불참했습니다.
아직 미국 정부는 플랫폼법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비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죠. 최근 방한한 미국 국무부 호세 페르난데스 경제차관은 "한국 정부가 정식으로 법안을 발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가로 코멘트할 것은 없다"며 "우리 모두는 협력과 투명성 보장, 이해관계자들과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플랫폼법을 제정하더라도 미국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밝힌 건데요. 미국 정부가 재계와 함께 우리 정부와 국회에 대한 압박에 나설 여지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죠. 실제로 미국 정부가 재계 입장을 적극 대변한다면 내정간섭 논란까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페르난데스 차관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성공을 위한 '한미 간 협력'을 강조한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한국이 추진하는 플랫폼법에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어서죠. 한국 자동차·배터리 기업들은 IRA 외국우려기업(FEOC) 규정 탓에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FEOC로부터 광물, 부품 등을 조달해선 안 되는데, 사실상 중국의 모든 기업이 FEOC로 지정됐기 때문인데요. 중국 광물과 부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국 자동차·배터리 기업들은 FEOC 적용에 대한 우려를 미국 정부에 전달한 상태입니다.
페르난데스 차관은 한국 기업들이 공급망 다각화에 나서야 한다면서도 FEOC 문제에 대해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IRA를 통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 기업과 근로자들이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생색용 발언도 내놨죠.
만약 미국 정부가 플랫폼법에 IRA를 연계해 압박한다면 우리 정부는 더욱 난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미중 갈등의 결과물인 IRA 수혜를 받았다는 미국의 인식을 고려하면, 플랫폼법 협상에서 뜬금없는 영수증을 내밀 수 있어서죠. 앞서 소개한 저명 인사들의 중국 수혜 발언을 곱씹으면 플랫폼법 갈등이 미중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다뤄질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입법 시 고려할 변수가 늘어나는 점은 우리 정부엔 분명한 악재입니다.
정부가 처음으로 플랫폼 규제 입법에 나선 건 문재인 정권 때인 2021년입니다. 당시부터 국내 인터넷기업들은 일관되게 플랫폼법 제정을 반대해왔습니다. 이유는 크게 2가지인데요. 국내 기업만 규제를 지키는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윤석열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와 배치된다는 겁니다. 인터넷기업 관련 협·단체로 구성된 디지털경제연합은 지난달 9일 개최하려던 공정위와 간담회를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플랫폼법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달라는 요구를 공정위가 거부했기 때문이죠.
플랫폼법과 비교되는 EU의 DMA와 DSA(디지털서비스법)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한 규제입니다. 미국 빅테크의 EU 온라인 시장 장악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미국 빅테크의 사업에 각종 제약을 걸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죠. DMA, DSA 적용을 받지 않는 EU 기업들은 상대적인 규제차익을 누립니다.
한국에서는 EU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다는 게 국내 인터넷기업들의 주장입니다. 공정위가 국내외 플랫폼을 동시에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더라도 해외 기업들은 각가지 핑계로 법망을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죠. 결국 국내 기업들만 막대한 규제 비용을 부담할 것이란 우려입니다. 그동안 국내에 서버가 없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를 회피한 해외 기업들의 행태와 정확한 국내 매출 산출조차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국내 기업들이 우려할 만합니다.
플랫폼법 제정이 당초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와 상반되는 것도 사실이죠.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공정한 플랫폼 시장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공약은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에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플랫폼 거래질서 공정화를 위해 자율규제 방안과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내용입니다. 정부는 자율규제 법적 기반 마련을 위해 지난해 11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죠. 자율규제 정책에 적극 협조한 국내 기업 입장에선 플랫폼법 제정은 뒤통수 맞는 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국내외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한 공정위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는데요. 실제로 플랫폼법 제정 논란이 한미 통상 갈등으로 비화한다면 정부 내 반대에 직면할 수도 있죠. 대통령실이 플랫폼법 제정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입니다. 공정위가 입법 추진을 중단하더라도 대통령실의 결정이 필요합니다.
공정위는 올해만 플랫폼법 관련 보도에 대한 설명자료를 8번이나 냈습니다. 코너에 몰린 만큼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는데요. 공정위는 국내 기업들이 주장한 역차별 우려에 대해선 "거짓 주장"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미 여러 해외 사업자의 이용자 수, 매출 등을 파악해 시장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판단한 만큼 플랫폼법 역시 해외 기업 규제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소비자단체들이 플랫폼법 제정에 찬성하다는 점도 강조했죠.
플랫폼법 초안 작업은 마무리 수순으로 알려졌는데요. 공정위는 조만간 초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초안이 공개되면 구체적인 법 조항을 두고 논쟁이 벌어질 겁니다. 플랫폼법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법이기 때문에 국회의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국회가 플랫폼법과 같은 쟁점 법안을 심사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22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에나 입법 논의 일정을 잡을 수 있겠죠. 지금 벌어진 갈등은 길고 긴 플랫폼 규제 논쟁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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