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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꼬꼬 Oct 04. 2020

<킹덤, 2019> - 악역의 미학

영화로 삶 말하기 12

악인이 승리하는 법. 자신의 뜻대로 광경을 만들어가는 약자의 서사.




나는 악역을 동경했다. 모든 악당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주인공을 빛낼 뿐인 허약한 반쪽짜리들이다. 끝에서는 변절하고 패하는 그저 그런 악들은 결국 서사의 들러리로 전락해왔고, 대중은 권선징악의 틀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악당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작품에서 비슷하게 무너진다. 그들은 욕망과 분노로 가득하되 절제할 줄 모르고 허망한 자만심에 잠식당하는데, 늘 턱 밑까지 숨어 들어온 주인공에게 그 허술한 목덜미를 물어뜯긴다.      


물론 광기와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분출하더라도 강렬하고 매력적인 악역은 있다. '레옹'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약통을 흔드는 스탠 형사를 기억한다. '놈놈놈'의 박창이는 무절제와 자만심으로 가득한 강도였지만 그의 등장은 눈빛만으로 장면을 장악했다. 이들은 외로운 만큼 잔혹하고, 비열한만큼 강인하다.


정말 지독한 악당들도 있다. 이들은 악당으로서 아주 결정적인 덕목을 하나 더 가졌는데, 바로 집요함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는 서늘한 광기로 관중을 압도하면서도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목표를 추적해 뒤를 덮쳤다. '무사'의 몽고군 장수 탐불화는 빠르고 확실했으며, 체면을 갖추면서도 무자비했다. 그는 결국 고려군을 끝까지 추격하고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마지막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굴욕과 상실을 거듭하고 끝내 영광스럽게 침몰하는 가장 어려운 길을 가는 악역들이 있다. 그들은 두려움과 굴종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수치와 분노, 비열하고 치밀한 계획을 실행해가는 침착함, 목적을 향한 순도 높은 탐욕과 집착을 모두 표현해내야만 하는 섬세한 역할을 짊어진다. '킹덤'의 숨은 주인공 계비조씨는 이 난해함을 훌륭하게 풀어냈다.


계비조씨 역의 김혜준은 키가 작고 앳된 얼굴의 어린 배우다. 보통 이런 분위기의 배우가 맡는 왕비는 왕실의 암투에서 설 자리를 잃고 억울한 분쟁에 휘말려 유배되거나 목숨을 잃는다. 비열한 지략으로 조정을 장악하고 언제나 표독스러운 살기를 내뿜는 왕비로는 '여인천하'의 경빈박씨를 연기한 배우 도지원이 떠오른다. 쟁쟁한 대신들도 쩔쩔매는 그녀의 카리스마와 다르게, 킹덤의 계비는 어른을 흉내 내는 철부지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다.


첫 번째 시즌 중 그녀의 눈빛은 시종일관 불안하다. 말투는 왕실의 사극에 어울리지 않고, 여린 외모와 반전되게 드러나는 감정들은 이 여자가 정녕 국가를 대표하는 중전인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성숙하지 못한 왕비는 지엄하지 못하여 그저 얄밉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이는 사극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부족한 연기력이지만, 최고 권력자의 딸로서 아직 스스로의 발판 없이 아비의 뒷줄만을 잡고 흔들리는 꼭두각시를 표현하기에는 제대로 들어맞는 설정이 아닌가. 조선은 오늘 왕족이었던 계승자가 내일 객지로 유폐되고, 어제까지 그 위세를 호령하던 당상관이 하루아침에 사형당하던 패배가 용납되지 않는 시대다. 어느 날 하찮은 여인이 적통 세자 출산이라는 중책을 짊어진 채 그 복판에 떨어졌고, 그것이 계비조씨 김혜준이다. 

조학주가 한양에 머무는 동안 계비는 늘 가시방석이었다. 상상해보자. 딸이자 일국의 왕비인 자신에게, 휘하 대신일 뿐인 아비가 원자 출산에 실패한다면 용서 없이 유배 보내겠다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조학주와 대신들의 강녕전 출입을 막아섰을 때에도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서슬 퍼런 경고의 단언이었다. 그것은 결코 아버지가 딸을 보는 눈빛일 수가 없었다. 조범일의 수급을 담은 상자를 열었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찬 아비를 앞에 두고서야 그녀는 온전히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딸로는 영영 살아갈 수 없구나. 나는 중전으로서 살아남는 수밖에 없구나. 그 순간부터 계비는 아비 조학주와 자신을 동등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대를 이을 아들, '내'가 낳아드리겠습니다."   


시즌 막바지에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한 내선재의 비밀과 거짓 회임은 조정에서 계비가 겪어온 위태로움과 이후의 비정상적인 탐욕에 대한 근간을 보여준다. 이 부분을 기점으로 계비조씨의 눈빛은 소름 돋도록 변한다. 아직 십 대 티를 벗어나지 못한 얼굴에 어찌 그런 표독스럽고 저열한 표정을 띄을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학주가 세자 창을 처리하고자 문경새재로 떠난 후부터는 아비의 폭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시작하는데, 사실 중궁전의 상궁들과 내금위, 환관들은 이미 계비에게 장악되어 있었다. 내선재 획책 초기에 조범일과의 대화 장면에서는 그녀가 아비를 향한 두려움에 고개 숙이면서도 끊임없이 활로를 모색하고, 목적을 위해 고심하고, 또 그것들을 태연히 숨겨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킹덤이라는 거대한 서사가 일차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을 빛낼 악역은 제법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나는 개인적으로 악역으로서 가장 추한 최후는 마지막 순간에 단념하는 못난 짓이라고 여긴다. 선인의 몇 마디 농간에 신념이 흔들리고, 기회를 한 번만 더 얻는다면 해낼 수 있다는 듯 호소하는 패배자의 눈빛을 보이는 일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계비조씨의 최후는 완벽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사선에 서 두려움에 떨고, 홀로 악착같이 투쟁해왔던 악당은 결코 추하게 무너져선 안된다. 아니, 평생을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에게, 앞에서는 중전마마를 복창하며 기다가도 뒤돌면 영상의 꼭두각시라 삿대질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남아온 계비는 각본 상의 악역일지라도 애초에 악당조차 아니었다. 


"보고 계십니까, 아버님. '저'는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조선 땅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계비는 그제야 자신을 낮춰서 조학주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다. 조범일의 수급을 사이에 두고 독대했을 때 본인을 '나'로 지칭한 바에는 피해의식과 오기, 위축된 자존감이 남아있었다. 자신이 힘겹게 싸우고 있는 권력자와 그가 뿜어내는 강렬한 분노 앞에 고개 드는 두려움을 자기 자신을 격상시켜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 아비와의 관계에서 남은 것이라곤 혈육을 직접 독살했다는 한 조각의 죄책감뿐, 그녀는 결국 살아남아 자신을 억압했던 괴물이 밟아보지 못한 왕좌에 올랐다. 왕은 이미 가장 높이 있는데 어찌 스스로를 높이려 하겠는가. 세상을 발아래 둔 왕비는 자신을 낮춤으로 오히려 승리를 과시했다. 멋지게.


물론 결과적으로 세자의 기지와 의인들의 희생으로 역병은 진압되고 왕실은 다시 체계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남은 사람들이 풀어갈 이야기일 뿐이고, 그녀가 살아남은 순간까지의 세계에서는 의미 없는 일이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광경까지를 오롯이 쟁취하는 것. 그리고 거기까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것. 몰락한 왕국의 안주인은 끝까지 멋들어진 악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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