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

11.

by 소년

인생이 코너에 몰리면 주저 없이 삶의 전선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나 역시 할 수 있는 알바시간대가 밤시간 밖에 없었고 짧은 시간밖에 못해서 급여를 많이 받으려다 보니 '음침한 카페 알바'라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카페 사장은 다른 층 바에서 여자를 양쪽에 앉혀 놓고 술 마시며 심부름을 시킬 때도 있었다. 정말 돈이 궁할 때는 바에서 하는 일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다 보면 올 것이 온다...


요즘은 자칫하면 말 한마디에 '일반화하지 말아라'라는 칼이 날아와서 말조심해야겠지만,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여자로 살다 보면 느닷없이 정말 많은 추행을 당한다. 나만 그랬던 건가? ㅎ 가해자는 남녀노소 불문한다.


내가 당한 첫 추행은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였다. 외진 한 동네에 살아서 버스도 같이 타고 다니는 친구였다. 교회 춤추는 동아리에서 여럿이 있다가 그 친구와 단 둘이 방에 남게 된 적이 있었는데, 내가 피아노를 치려고 앉았더니 겨드랑이로 손이 들어와서 내 가슴을 만졌다. 뭔지 알았지만 당황한 나는 아닌 척을 하려고 웃으며 "아 왜 이래~!" 해버렸다. 왜 이러한 상황은 늘 이렇게 돌아가는 건지.. 친밀한 관계라는 게 이렇게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킨다.


교회에서 갔던 고아원에서는 한 꼬마와 앉아 있는데 꼬마가 몇 번이고 내 가랑이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그건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해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알게 모르게 그 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애정결핍에 따른 문제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네 호프집에서 알바가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서로 친구관계인 사장님들은 좋으신 분들이었다. 어느 날 덩치 큰 깡패가 들어와 정가운데 테이블에 앉았다. 가장 무거운 과일 접시를 내려놓는데 이제 막 스무 살 앳된 내 손을(사실은 열아홉) 그윽~하게 만졌다. 하필 가장 무거운 과일 접시 내려놓는데! 곧바로 사장님에게 그 얘기를 하니 부엌 가장 깊숙한 데로 날 넣어놓고 나오지 말라고 하시면서 직접 서빙하셨다. 그렇게 세상을 하나 배웠다.(.... 고 좋게 생각했네 나는? ㅎ)


대학교 때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실습을 했다. 정신지체 3급인 성인 남자 장애인이 친밀하게 내 팔짱을 끼고는 쉴 새 없이 말을 붙이며 손등으로 내 가슴에 반복적으로 손을 댔다. 어이가 없었다. 한 나이 많고 폭력성이 있었던 정신지체 장애인은 평소 주먹을 휘휘 휘둘렀는데, 테이블에 기대 서있는 내 뒤에서 기형적으로 큰 주먹으로 (나쁘게 말하려고 과장하는 말은 아니다. 보통 정신지체를 갖고 있는 장애인은 신체적으로도 조금 다른 경우도 많다.) 꼬리뼈를 가격했다. 황당하게도 친밀감의 표시였다. 그 장애인 복지관에서 현타를 느꼈던 것 같다. 전공의 시작은 사명이었지만 결국 졸업만 했지 결코 복지사 자격증도 받지 않았으며, 그 분야는 일절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기분이 얹잖아 서라기보다는 아직 나는 깜이 안되고 성향이 그 일과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영어 유치원에서 일할 적에 아이들 음식 조리하시는 아주머니가 자기가 원의 주인인 것처럼 텃세를 부리고, 목소리도 큰데 오해될만한 말도 함부로 해서 선생님들이 불편해했다. 그리고 무례한 일이 발생했다. 교무실에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도 장난이라고 덥석 내 가슴을 만지고는 혼자 신~나서 웃는 거다. 나중에 오히려 다른 선생님들이 나서서 나에게 사과하라고 했지만 울면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룸카페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와인잔은 쉽게 깨져서 정말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사장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나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면서 내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쓸어내려 만지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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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지는 일이 그렇게도 쉬운 일이었나 보다 덜~! 하.. 이 눔에 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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