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녀의 결계가 깨지듯
마음이 떠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엄마에게서만 마음이 떠난 게 아니었다. 뱃속에서부터 시작되어 20대 때는 내 얼굴 모를 사람 없던 요란했던 신앙생활 내내 성장을 함께 보아주셨던 모든 주변 분들에게서도 마치 전구의 빛이 꺼지 듯 마음이 떠났다. 교회에 가면 누구에게도 웃으며 인사할 수 없었다.
출생부터 엄마의 굴레 안에 살며 감겨 있던 눈과 닫혀 있던 귀가 트였고, 마침내 판단력이 생겼다. (지식의 부재로) 인정하지 못했던 것들과 스스로 나에게 (아니라고) 세뇌했던 것들을 풀어 주고, 진실은 인정하고 잘못은 잘못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나는 짧은 평생 엄마를 존경했지만, 마치 독재자의 문제에 대한 인민들의 깨달음처럼 드디어 나에게도 그런 계몽의 순간이 왔다.
알고 보면 어릴 적 엄마는 평소 분노를 응축해 놓았고, '나의 잘못'이라는 기회가 왔을 때 그 감정을 이용해 폭발시켰다. 끝내 나를 짓눌러 이겨내고 나서야 본인의 화가 풀렸다. 대나무회초리와 연고로 반복되는 체벌은 그 시절 어느 집에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짝싸대기, 발길질, 그리고 뾰족한 것을 무서워한 내가 병원에서 주사기 무섭다고 난리 치며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을 부끄럽게 했다고 으르렁 거리며 집에 가서는, 빨랫줄로 나를 묶고 올라타 분노에 찬 짐승이 되어 쏟아내는 분과 싸대기는... 잊지 않는다. 그때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그 길..... 20대 때는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간 날 지름 8센티, 길이 50센티 정도 되는 대나무로 기둥에 몰려 맞던 기억도 문뜩 난다. 오죽하면 아빠가 옆에서 만류했고 다음날 내 양팔에 시퍼런 굵은 멍이 들어 있었다. 한참 늦은 방황을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까지 맞아야 했을까?.. 아마 나로부터 젊은 시절 술주정 하던 아빠를 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보란 듯이 더.
알고 보면 술을 퍼마신건 20대 초 잠깐이었고 그 후 술은 그냥 맛이 없어서 안 마신다. 나를 단속하려고 자기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그렇게 팼다. 그 속에서 나는 20대여도 성인이 되지 못했다.
아무튼
무례하게 돈을 뺏기고 알았다. 나는 가축으로 태어난 소유물이구나. 내가 가진 돈은 내 것이 아니구나.
21세기에.
나는 가진 것 없어도 여전히 곱게 보존되어 괜찮은 집에 시집가면 되는 거였다. 소리 내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걸 나를 향한 성폭력으로 간주한다. (팔에 문신을 하고 나니 결혼 소리가 뚝 끊긴 건 정말 소름이다. 무슨 조선시대~!)
세뇌는 무섭다. 엄마니까, 엄마라고 해서! 엄마가 하는 행동은 다 맞는 줄 알았다. 학원 부원장님이 나에게 양면성이 있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게 어디에서 왔겠는가. 신실한 신앙인이었던 엄마는 내 짧은 평생 늘 집에서는 돈돈거리며 아빠와 싸웠다. 그때 그 현상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왜 나는 어디 가서 그게 잘못 됐다는 말을 못 했을까.. 엄마가 다 옳은 줄 알았다....
이 이상한 세상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더는 그 얼굴을 보고 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