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신적 독립의 시작
30대를 앞두고도 나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자아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없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우울증 때문인지 삶의 이유만 그렇게 고민했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기독교 종교의 하나님 안에서 누구로서가 아닌 아무것도 아닌 쌩 인간으로서 어떤 가치관으로 어떻게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야 하는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따뜻한 밥 먹으며 부모 품에서 망상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이제 알을 깨고 나와서 현실을 살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망했고 집은 경매에 넘어갔으며 나는 20대 후반이고 살 거처를 찾아 각자도생을 위해 독립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딸이 곧 자신이었다. 엄마는 세상을 읽지 못하고 언제나 자기시대의 가치관에 갇혀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언제나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전철을 스스로 탈 줄 모를 정도로 나에 대한 통제가 심했고,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은 결국 나의 몫이었다.
나보다 먼저 독립을 한 친구의 원룸을 방문하고 온 나에게 엄마는 거기에 들어가 살으라는 무리한 요구까지 했다. 마치 내가 널 놓아주지 않으리라는 마지막 발악 같은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결단을 했다.
집을 박차고 나가 무작정 원룸을 알아보고 그 집의 장점, 단점도 모르고 계약을 한 후 바로 통보했다.
"원룸 계약했어."
막상 일이 벌어지고 나니 엄마와 아빠는 순순했다. 어차피 자기네들도 방편이 없었으니까.
300/30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의 신축 오피스텔형 원룸에 필요한 식기와 기본적인 옷가지들만 갖고 들어왔다.
아 그런데 그 공간이 주는 새로움이 있었다.
고요함.
나에게 그게 얼마나 필요했던지 원룸에서 처음 느꼈다.
'아 가족과 살면서 그간 힘들었구나... 몰랐네... 가족과 사는 게 힘들었는지...'
워낙 어릴 적부터 혼자 잘 있고 혼자 조용하게 꽁냥꽁냥 뭘 그리거나 만들면서 잘 노는 성격인데 독립할 즈음 부모 간 불화가 더 커지니 그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시작부터 끊임없이 싸워온 엄마와 아빠의 공간에서 내 정신이 온전할 수는 없었다. 그 집은 성장할 수 없는 곳이었고, 그들이 소리 지르고 싸워도 우리는 무시되는 존재였으며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워낙 내향인이고 소음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니..
그 원룸은 단비 같은 피난처였다.
이사하고 어느 날은 엄마가 왔는데 나는 외출해야 했고 시간이 애매했다. 그런데 엄마가 혼자 뜨개질하면서 더 있다가 간다고 하는 거다. TV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 그러라고 하고 나오면서 문을 닫으며 엄마를 봤는데...
큰 창틀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뜨개질하는 엄마.
공기에 살랑살랑 떠다니는 먼지.
고요함.
엄마도 그 공간에서 위로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가끔 아주 가끔 느끼는데, 엄마는 우리 둘을 낳은게 스스로의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나를 통제하면서도 여자로서 가진 것 없어도 독립적으로 살려는 의지를 볼 때마다 사실 조금 부러워하는 걸 느낀다.)
엄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