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0년간 나를 버티게 한 한마디
첫 독립을 한 원룸에서 살았던 기간은 매우 짧았다.
내 이사소식을 들은 막내 이모는 이모집 근처에 와서 공부방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왔다. 이모는 아들만 셋이었다.
마침 학원사정도 좋지 않아 뒤숭숭 해졌다. 부원장님 위에 사장님이 계셨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사장님이 직접 수업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사장님 개인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으니 월급을 잘 받을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 됐다. 전에 일했던 학원에서 바지 사장의 횡령으로 몇백을 받지 못하고 나온 경험이 있어 불안감이 느껴졌다. 실장님은 불안감이 조성되자마자 자기는 이제 여기서 오래 일하기도 했고 공부방으로 나가면 수입이 더 좋아질 거라며 공부방이야기를 하셨고, 그럼 나도 그래볼까 싶었다. 그런데 실장님은 댁이 학원 코앞인 데다 워낙 학부모들과 유대가 커서 오픈하면 학생과 수입이 보장될 것이 뻔했는데, 나는 대인관계 능력도 없고 부원장님이 배정해 주시는 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여서 사실 공부방은 무방비 도전이었다.
얼마 후 사장님께 그만두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부원장님과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걷던 마지막 길.
그날은 정말이지 잊히지 않는다.
부원장님도 가끔은 내 행동을 지적하신다던지 하신 일도 있지만 나쁜 기억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너무 다정한 분이셨다. 이사하고 퇴근방향이 같아지면서 다소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던 퇴근길을 같이 걸었었는데.. 마지막 날 헤어지며 '이제 나도 공부방을 할 거라고' 말씀드리자 빙그레 웃으며 비수 같은 한마디를 날리셨다.
"못 할 거예요~!"
.
.
하.. 그 순간 갑자기 부원장님이 악마 같았다.
현실적인 편인건 알고 있지만 서로 파하는 마당에 빈말이라도 '파이팅!'을 외쳐주지는 못할 망정 '못 할거'라니~!
마지막 그 한 마디가 절망에 가득했던 나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었고, 가뜩이나 화병으로 병든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 말이 너무 '맞았으니까.'
나는 너무 투명한 사람이고, 부원장님은 항상 내가 뭐가 부족한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계셨다.
(약간 푼수 떼기 같은) 실장님은 볼 때마다 영어실력이 나보다 부족한 것 같은데 아이들 성적은 기가 막히게 잘 나오고 나는 내심 그걸 의아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원장님이 조용히 부르시더니 생긋 웃으며 "신기하죠? 별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성적은 잘 나오죠?" 라면서 (네 맘 다 안다는 양~) 말을 띄우셨다. "영어실력은 분명 선생님 보다 부족해요. 근데 잘하시니까 노하우가 궁금하죠?" 그리고는 한번 잘 지켜보고 배워보라고 하셨다.
지금 난 한 자리에서 10년 넘게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못 할 거라는 부원장님 말처럼 정말 별 지랄을 다해봐도 남들 월급정도의 수입만을 거둬들이며 일하고 있다. 정말로 잘~ 못~ 했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부원장님의 그 '악마 같은 말' 때문이었다.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니야! 내가 진짜 못하나 보자~!' 하면서 그렇게 10년을 버텨왔다.
그분의 그 말 한마디와 실장님의 노하우와 이모의 믿음이 없었더라면..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아마도 쥐구멍 같은 어디에선가 무기력하게 누워서 그만 세상을 등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겐 삶 자체가 너무 큰 산이었다.
그때 내 정곡을 찌른 그 한 마디는 악마를 이용한 신의 지혜 같았다.
덕분에 긴 터널을 지나 지금 생존해 있다.
그래도 그렇지~! 못할 거라니! 못할 거라니이 이 이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