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사

8. 고단했던 1년

by 소년

지금은 내가 한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때는 마음이 어리석은 지옥 속에 있던 터라 쓰다 보니 얼마나 징징댔는지 느껴진다.


그렇게 짧은 첫 번째 독립생활을 마치고 두 번째 이사를 했다.

다행히 첫 번째 집의 집주인은 처음으로 세를 준 집이라 잘 몰라서 그런지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에 달리 딴지를 걸지 않았다.


두 번째 집은 이모가 알아봤는데 예상대로 최악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막내이모는 성격이 나와는 정 반대로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인 데다가 안목이 좀 없는 편이다. 그래서 자녀들 공부방 선생님으로 나를 선택했었나 싶다.) 층이 낮아 외부 가림막으로 막혀있는 작은 창이 있는 북향, 녹색계열의 난잡하고 어두운 벽지, 체리색 바닥. 고장 난 냉장고. (분명히 고장 나 있었는데 한 달 뒤에나 정확히 알고 말하니까 주인아저씨가 절반은 세입자가 내는 거라며 결국 절반을 내가 냈다. 경험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종종 있었다.) 내 시작은 너무 초라했다. 그게 내 실력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이 너무 각박해서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이제 마흔 넘어 생각하고 보니 이 동네에서 보증금 300만 원으로 얻을 수 있는 방은 그 정도뿐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겨우 피난 나와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두 번째 집에서 내 화병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가난하고 초라한 1년이었다. 초라한 시작을 조용히 하고 싶은데 엄마는 교회 목사님과 다른 청년들을 불러 예배를 드리며 내 감추고 싶은 시작을 강제로 오픈했다. (원래는 '까발렸다'로 썼었다.) 엄마의 오지랖은 그렇게 날 부끄럽게 했다. 나이 서른이나 먹어서 왜 싫다는 말을 못 했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모르겠다. 하지 말라고는 했는데.. 그때 나는 엄마에게 정말 무기력했다.


그렇게 원룸에서 시작한 공부방은 다행히 이모의 도움으로 홍보 없이 학생들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직 많지 않았고, 생활비가 없어서 생수도 아꼈고 사람도 안 만났고 생활비로 카드빚은 쌓여갔다. 과일이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고 카페 출입도 자제하려 방안 테이블에 멍하게 앉아 답답한 시간을 견뎠다. 억지로 앉아 버티다 보니 두통이 심해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원래 물도 많이 마시고 과일도 정말 좋아했는데 그때 나를 너무 통제하다 보니 여전히 물도 과일도 정말 안 넘어간다. 이 전에 해오던 수영을 그만두니 극심한 허리통증이 밀려왔다. 머리를 감으려 숙였다가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에 온 요통인 것 같다. 인터넷에서 가장 저렴한 운동화를 사서 1년간 신었는데 금방 색깔이 바래서 벗겨지는 게 딱 제 값을 했다. '아키땡땡땡'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발전한 것 같지만 그 후론 절대 보지도 않는다. 보상심리로 지금은 '뉴발땡땡'만 구입한다. 겨울에 롱패딩은 정말 부의 상징이었고 나는 동대문에서 건진 얇고 저렴한 국방색 누빔외투로 견뎠다.


엄마아빠도 오래된 빌라로 이사하고, 엄마는 내 이름으로 상가를 얻어 옷가게를 시작했다. 엄마 인생에서 전혀 경험조차 없는 일이었다. 새벽마다 늙은 엄마가 혼자 동대문에 사입하러 다녀올 생각 하니 결국 또 마음에 걸려서 새벽에는 동대문을 동행하고 오후에는 수업을 했더랬다. 힘들지만 호기심도 있었고 이른 새벽에 밝은 조명이 켜 있는 상가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입삼촌들과 바쁘게 옷을 담는 주인들, 우리처럼 사입하러 온 소상공인들을 보면서 힘을 얻기도 했다. 허기진 새벽 동대문 도매시장 길가에서 먹는 떡볶이와 어묵국물도 너무 맛있었다. 물론 첫 경험이 달콤했을 리 없다. 엄마가 옷을 보려고 살짝 만졌는데 가게 주인이 갑자기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꺼지라고 한 일도 있었다. 우리가 초짜인 게 너무 티가 났는지 고성을 지르며 으름장을 놓았다. 텃세였다.


한 때는 우리 가족도 40평대 아파트에 입주하고 친구들한테 자랑하던 때도 있었는데 갑자기 폭싹 늙어 버린 것 같은 아빠 엄마와 초라한 행색으로 동대문에서 서성이고 있다 보니 좋지 않은 기분이 이따금씩 스쳤다. 그때 동생은 서울 어느 고시원 같은 곳에 들어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바로 밑에 치킨집이 있어서 냄새가 올라올 때마다 괴로웠다고 한다. 돈은 없고. 배는 고프고.


어느 날은 동대문 길가에서 떡볶이를 먹고 집으로 출발했는데 오는 길에 차에서 배가 뒤틀리고 난리가 난 거다. 눈이 많이 와서 도로도 미끄러웠다. 나는 마치 해산하려는 임산부처럼 신음하고 있고 엄마는 '조금만 참아라. 어떡하니. 어떡하니' 걱정하고 있고, 마침 내리막길이라 아빠도 불안해하며 자꾸만 미끄러지는 노란색 늙은 마티즈를 조심조심 운전했던 기억이 있는데 생각할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겨우 똥 마려운 거였는데 셋이서 오는 내내 오두방정을 떨었다.


새벽에 동대문에서 오면 아침에 잠을 자고 오후 3시부터 수업을 시작해서 밤 9시 반에 끝났다. 그러다가 쌓여가는 카드 빚을 갚기 위해 밤 10시 반에 시작하는 카페 마감 알바를 구했다.


룸식 카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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