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딴따라의 10가지 재주
나는 재주도 많지만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수줍어하면서 노래도 조금 했고, 수줍어하면서 춤도 조금 췄고, 따라 그리기를 조금 잘했고, 만들기도 꼼꼼하게 잘했다. 글도 (그 시절엔) 감성적으로 쓸 줄 알았고, 외모도 좀 반반 해서 인기도 조금 있었고... 나는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한 딴따라였다.
내가 20대 때 엄마는 가끔 누르듯 말했다. "옛말에 열 가지 재주 있는 놈이 빌어먹지를 못한다고 했어!"
별생각 없이 옆을 지나가는데도 기분 나쁘게 불쑥 그런 말을 한다. 그때마다 내가 무능력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 말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피조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치~! 나는 그 10가지 재주가 있어서 살아남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초등반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활동을 제공했다. 레인보우 케이크 만들기, 빼빼로 만들기, 컵케익, 과자로 만든 집, 직접 반죽한 도우로 발효시켜서 피자 만들기, 비누 만들기, 가루치약 만들기, 달력 만들기, 핸드워시 꾸미기, 봄이 되면 각자 꾸민 화분에 싱싱한 허브를 심어 들려 보내면 반응이 너무 좋았다. 초등수업은 게임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그날 내용에 맞는 카드를 일일이 만들어서 모든 수업에 게임 활동을 하게 했고, 보드 게임판도 매번 수업내용에 맞게 만들어 진행했다. 학년이 올라가도 이전의 내용을 복습할 수 있도록 기존의 카드로 계속해서 게임을 진행했다. 공부방은 게임수업을 하는 공부방으로 소문이 났다.
교재가 끝나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라면파티를 했고, 연중 두 번이나 마켓데이를 진행해 선물을 잔뜩 안고 가도록 했다. 마켓데이 행사로 동네 공원에 쪽지를 여기저기 숨겨놓고 보물 찾기도 했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니며 쪽지를 찾아왔다. 아이들이 많아지니 동생과 엄마까지 불러서 엄마는 식당을, 동생은 팬시용품 판매를 하도록 하기도 했다. (시급은 짜장면). 방울토마토로 직접 만든 스파게티 소스로 스파게티 먹으며 무비데이도 진행했다. 몸은 고되지만 아이들은 너무 행복해했다. 가끔 재료가 남을 땐 10분~15분 정도로 짬을 내 중학생도 케이크 만들기를 해주기도 했다. 2호 크리스마크 케이크도 해보고, 때로는 미리 만들어 놓은 컵케익에 크림 올리고 장식만 하면 되었다. 중학생이니까 안된다?라는 틀을 깨고, 가능하다면 하자! 주의였다. 아이들은 낭만이 필요하니까! 공부하다가 지루할 때는 기분 내라고 카페에서 배운 음료를 만들어 와인잔에 주기도 했다. 중등반은 시험이 끝나면 꼭 모여 보드게임을 하면서 서로 간에 친목을 다졌다. 그런 날은 집에 가지도 않는다.
이런 수업이 너무 하고 싶었던 계기가 있었다.
어릴 적 동생과 나는 방학이면 종종 막내이모 집에 머물렀다. 어느 날 이모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겠다고 토마토를 갈아서 손거품기로 한~참동안 열심히 거품을 내고, 냉동실에 얼렸다가 먹었는데 조금 느끼하고 맛은 없었다. 그때 이모가 "별루네~." 하면서 멋쩍게 웃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고맙고 좋았다. 아이들에게 주고 싶던 것들의 모든 시작은 바로 그 날이라고 여겨도 전무후무하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은 거의 없지만 이모들에게 받은 사랑이 많은 것 같다. 내리사랑이라고 이모들로부터 받은 정성을 아이들에게도 주고 싶었다.
엄마는 자신을 너무 모른다.
어릴 적 주공아파트에 살 때 피자가 너무 비싸서 엄마가 직접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피자치즈와 노란 치즈, 햄, 양파, 피망, 케첩으로 엄마표 피자를 만들어줬다. 일이 커져 대문 열어 놓고 우리 통로 사람들이 다 들락날락하며 먹었던 행복한 기억이 있다. 엄마는 주일마다 교회에서도 음식담당을 오랫동안 해왔고 듣기로는 담임목사님도 엄마 요리를 참 좋아하셨던 것 같다. 게장 장사 제안도 여럿에게 꾸준히 있어왔다. 요리와 음식을 나누는 재주는 엄마를 빼닮았고, 가끔 기발하고 별난 생각을 하는 것과 그림, 노래, 손재주는 아빠를 빼닮았다. (변비까지). 그렇게 나는 엄마 5+아빠 5=10가지 재주를 갖춘 완전체가 되어 마침내 빌어먹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