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자 이번엔 B를 치료할 시간이야!
이사를 하고, 학생들도 늘어나고, 수입도 안정되고, 멀리 다니던 과외도 그만두었고, 나의 보라색 스파크도 생겨서 조금 편안한 날이 도래했다.
이사 초기 잠시 왔던 허망감에 따른 우울감은 사랑하는 시츄로 극복을 했지만 여전히 극복해야 할 감정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것 같다.
마음은 내가 조금 살만하면 "자 이제 힘이 생겼으니 그 힘으로 A를 해결하자."
A를 해결하면, "자 이제는 또 이만큼 튼튼해졌으니 이번엔 B를 해결하자."
이렇게 툭~ 툭~ 감추고 싶은 마음을 꺼내 드러나게 하고 직면하게 해서 홀가분 해질 때까지 나를 몰아세웠다.
'아..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어느 날부터 마음속으로 틈만 나면 계속 이 말을 반복했다.
'왜 가슴이 아프지?..'
마음이 울적하고 왠지 서글프고.. 뭔가 아련하게 아픈 마음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명치에 진짜 통증이 생겨버렸다.
사실 이전 원룸에서 사는 동안 더운 여름에 낮에는 수업, 밤에는 알바, 새벽엔 동대문, 주말에는 과외를 하며 그 해동안 힘들었던 감정을 돌보지 못했고, 그럴 여유도 없어서 애써 외면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필요에 의해 일했지만) 마치 자기 학대 같았고 칼로 날 난도질한 듯한 시간들이었다.
하도 베어 뜨거워진 나를 외면했다. 한편으로는 나를 칭찬하고 싶은 시간이기도 해서 그저 그 시간을 '아~ 참 뜨거운 여름을 보냈어'라며 요즘말로 '정신승리'하려고 했다.
육체적으로도 정말 힘들었고.. 서글펐는데 딱히 그걸 알아줄 사람도 없었다. 문득 누군가를 만나서 내 얘기를 하려고 하면 어떤 이는 이혼을 했고, 언니가 사기사건에 연루돼서 감옥에 갔다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라며 말문이 막히게 했다. 베프는 사실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걸 오랜 세월이 지나 알았고(내가 너한테 그렇~게 아빠욕을 했는데;;), 또 다른 베프는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계모와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 징징대는 내가 싫기도 했으니 입을 다물었지만 너~무나 외롭고 고독했다.
그러다가 이게 무슨 우연인지
tv를 틀었는데 고현정이 꼭 우리 엄마 같은 고두심에게 "그때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라고 외치며 "사과해! 나한테 사과해!" 라며 울부짖었다. 감정이 동화되어 버렸고 또 서럽게 울었다.
당장 상담센터를 알아봤다. 막 토로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참 잘 살고 싶은가 보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매일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했으면서 참 적극적으로 치료하려 나서고 다녔다.)
첫 상담에서 나는 그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이 나왔다고 말을 하는데 또렷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며 다시 이성을 잃었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마음의 '화'가 그랬다..
상담은 한 시간에 8만 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어서 상담선생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보자고 했지만 나는 이주일에 한 번씩 오겠다고 잘랐다. 상담하는 시간은 참 상냥하시다가 상담 후 선결제를 하고 가라는 선생님의 카드 긁는 시늉을 보고 정나미가 뚝 떨어졌었다. (결국 장사꾼들이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담은 두 달 정도 받았고, 마지막에 내 모습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나는 뾰족 뾰족 튀어나온 둥근 공. 나를 안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날 망설이다가 결제를 하고 나왔지만 다음 상담부터는 가지 않았다.
상담받는 기간 동안 나는 여전히 뾰족뾰족했고 상담 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몇 년 후 문뜩 느꼈다.
"어, 나 잘 살고 있네?..."
그냥 잘 사는 게 아니라 그때 그 아픔을 잊고 살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원망도 많이 누그러졌고, 명치 통증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후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 때는 꼭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권한다.
그런데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