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B

21. 나의 도피처

by 소년

마카롱이 한참 유행하던 시기였다. 어느 날 엄마가 마카롱이 먹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서 그냥 왔다고 하길래 직접 만들어 볼까 싶어서 도전을 해봤다. 이미 이모들이 쓰던 작은 오븐 두 개로 아이들 활동 수업에 활용하고 있어서 베이킹에 조금씩 관심을 가질 때였다. 그 후로 마카롱에 몇백만 원을 쓴 것 같다. 마카롱이 너무너무 어려워서 매일 도전할 때마다 실패했고 오기가 나서 마카롱 개인 수업을 찾아 등록했다. 수업을 듣다 보니 오븐이 중요했다. 마카롱이 뭐라고 나는 160만 원짜리 스메그 오븐을 덥석 구매했고 완벽한 마카롱을 만들 수 있었다.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며 공부방 운영을 더 잘해 나갈 자신이 없어져서 적극적으로 다른 일들을 모색했다. 성격이다. 워낙에 옆에 누가 있으면 멀쩡한 일도 잘 못한다. 그럼 그만두고 학원으로 다시 들어가 보라는 엄마에게 나는 이상하게 누구 밑에서 일하면 불안하고 혼자 일하면 좀 덜 벌어도 편하다고 했더니.. 엄마가 피식 웃으며 아빠 쪽 가족과 형제들 모두 개인사업을 한다고 말했는데 새삼스레 알고는 소름이 돋았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내력이었다. 일단은 동대문을 가봤으니 옷장사를 해봐야겠다 싶어서 필요한 신고를 다 하고 온라인마켓을 열었다. 옷은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으나 지속적인 투자에 들어가는 초기비용이 부담돼서 결국은 그만두어야 했다. 그 만한 돈이 없었고 대출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스트레스도 줄일 겸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제과제빵 수업을 신청했다. 조금 멀었지만 너무 재미있었고 만들어 온 빵도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나의 스메그 오븐도 있겠다 제과제빵도 배웠겠다 집에서 열심히 빵을 만드는 것에 열중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피자 만들기 수업도 가능했다. 아이들은 너무 신나 했고 낭만을 갖고 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영어 수업보다 더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막내이모는 연말 행사 때마다 나에게 마들렌과 마카롱을 부탁했고 해가 바뀔수록 실수를 저지르고 고쳐가며 내 실력은 업그레이드되었다. 베이킹을 할 때는 잡생각을 잊을 수 있어서 스트레스 해소가 됐다. 빵을 만들 때는 밤을 새워서 준비해야 했다. 피곤한데도 너무 즐거웠고 이상하게 베이킹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깝지 않았다. 한 번은 이모에게 선물박스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안을 했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 돈은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본 40개 분량의 박스가 추가 주문으로 이어져 100박스가 되었고 영세한 교회에 간식 선물로 보내고 싶다고 부탁을 더 주셔서 몇 박스씩 선물상자를 더 만들었다. 며칠 밤을 새웠고 서서 포장을 하다가 몇 번씩 벽에 머리만 닿으면 잠에 빠지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 도피를 했더랬다. 이 풀리지 않는 인생과 답답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게 베이킹과 수업 이중생활을 하다 보니 세월이 흘러 마음만 먹으면 해 볼 만한 플랜 B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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