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어쩔 수 없는 선택과 후회
이 집을 계약할 때 주인아저씨께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아저씨는 상관없다면서도 비중이 너무 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건을 말씀하셨고 나는 걱정 마시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가진 보증금이 4백만 원뿐이었고 이전빌라에 이미 1600만 원 전세자금 대출이 있는 상태에서 집을 옮기며 엄마네 보증금 500만 원에 다른 보증금 대출까지 받아 오천을 마련했다. 대출 이자까지 하면 월세는 65만 원이지만 70만 원 이상의 월세를 내는 셈이었다. 부모님 하고 같이 부담하는 거였어도 준비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결정이라서 관리비도 늘고 1년에 한 번씩 개인대출도 갚고 있다 보니 왠지 모르게 이사 후에 금전적으로 부담이 느껴지기는 했다.
나 역시도 이래저래 지쳐서 엄마가 필요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같이 살면 공부방을 잘 운영할 자신이 없어서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혼자라면 거실도 사용하고 행사도 하는데 무리가 없었겠지만 가족이 있으니 현관 앞에 있는 방한칸에서만 운영할 수밖에 없었고 아빠의 비매너가 걱정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 첫날부터였다.
초등학생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아빠가 들어왔다. 안방에서 문 열어 놓고 시원~하게 소변보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이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다들 나를 쳐다보며 이게 무슨 소리냐고 했다. 나는 열이 받아 소리 질렀다.
"아빠~~~~~~~~!!!!!"
엄마도 만만치 않았다.
중학생 수업 중에 집으로 귀가한 엄마는 갑자기 관략근이 풀렸는지 현관에서부터 뿡빵뿡빵 하며 추진력을 얻어 거실로 들어갔다. 너무 웃겨서 기절했다.
웃긴 일과 별개로 사실 예상은 했지만 첫날부터 보고 싶지 않은 꼴이 시작되었다.
혼자 살면서 늘 오후 수업에 생체리듬이 맞춰진 나는 늦어도 10시까지는 자야 했다. 그런데 같이 살면서 아침에 부엌에서 나는 소리와 음식냄새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고 특히나 아침부터 식탁에서 싸우는 소리에 복통이 심해졌다.
어릴 적부터 자주 배가 아파서 한의원에도 가봤고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넷째 이모부(목사님이시다)에게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는 옛날이라 다들 정확한 병명이나 원인은 몰랐다. 그런데 요즘 말로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이렇게 심한 적은 없었는데 부모님과 다시 합치고 내 복통은 아주 극심해졌다. 내 장은 극과 극을 오갔다. 엄마 목소리 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이 움직이지 않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변비가 극심해 지다가 뒤틀리는데 그 고통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출산을 한 아는 동생이 나와 비슷한 복통을 겪고는 아기 낳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위로가 될 정도였다. 한 번 아플 때마다 직접 칼로 배를 가르고 원인을 꺼내고 싶을 정도이다. 또 아플까 봐 불안감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로 체중이 줄었다.
역시 합치는 게 아니었어. 후회가 됐다. 너무 힘들어도 그냥 혼자 살걸. 괜히 오지랖 부렸어 라며 자책했다.
하지만 그 타이밍에 이런 매물이 있었고 이사는 신의 뜻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희생해야 했다. 그렇게 긴 시간 다시 엄마와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