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조용한 중재자들, 대단한 존재감들.
이 글의 시작점인 '엄마가 나와의 상의 없이 내 돈을 다 써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던 그날 후.
돌아오는 주일 예배가 끝나고 언제나처럼 동기들과 모여 앉았다. 그때 나는 가장 편하다고 생각한 친구들 앞에서 어느새 이성을 잃어가며 아무도 듣고 싶지 않은 나의 엄마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온~갖 것들로 화와 짜증을 주체하지 못할 때 나를 멈추게 한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날까지 나는 그 친구가 짜증 한번 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내 정확한 속사정은 몰랐겠지만 계속해서 징징대는 나에게 "그럼 그만하면 되잖아~!" 하면서 신경질을 홱~! 하고 내는데. 순간 너무 놀라서 모든 행동을 멈췄다. 아니 뇌가 정지됐다.
참한 친구에게 받은 면박에 어안이 벙벙해서 '아 내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당분간 사람 만나면 안 되겠다'하며 고독하게 아픔을 치유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했었다. 그 친구에게 미움은 없었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해 준 어떻게 보면 고마운 친구였고,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는 않아서 내 가족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교회에 발길을 끊고 몇 년이 흘러 2000/50 빌라에 살고 있을 때, 동생이 그 친구와 잠시 우리 집에 들렀다가 나가며(동생은 일요일에 교회 사람들을 자주 차로 데려다줬다) 둘이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보는 그 순간, 그 계단! 딱! 계단을 내려가는 둘을 보는데 '아! 둘이 만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하 나에겐 아직 말을 하지 않은 거였다.
내가 가장 아플 적에 면박을 준 그 친구가 고맙기는 해도 막 좋은 감정은 아니어서 (혼자만의 조금 서운한..) 딱히 얼굴을 많이 보고 싶지는 않았던 그런 혼자만의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족이 될 줄이야. 와. 정말 사람 일은 모를 일이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큰데 말이다!
그렇게 나를 '형님'이라 부르게 된 친구는 너무나 소중한 조카를 둘이나 낳아 우리 가족을 무장해제 시켰다.
늘 날이 서있는 엄마, 아빠, 나는 조카들이 오면 아무렇지 않은 '척' 우리 모두 화목한 '척'을 했다.
조카들은 나, 엄마, 아빠, 동생 사이에 굉장한 존재감을 가진 '조용한 중재자들'이었다. 동생과는 트러블이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동생은 자기가 원하는 이상이 충족되지 않을 때 휙 히스테릭해지는 성향이 있어서 결혼시점에 별로 감정이 좋지 않았던 기간이 있었다. 첫 조카 가졌을 때도 내가 아빠에게 동생네 일로 화를 낸 적이 있어 감정이 좋지 않아 배불러 힘들었을 친구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트러블은 조카들이 태어나면서 싹 다 없어졌다. 더군다나 첫째가 나와 아기 때 외모와 습관까지 너무 닮아 버려서 신기하기도 하고 습관에 따라오는 질환 때문에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나도 내려받은 유전인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괜스레 미안했다. 둘째는 동생과 판박이로 나와버려서 어딜 가나 내 동생 이름으로 불린다. 너무 코믹스럽다.
그리고 이상한 기분을 느껴버렸다.
조카들을 보며 아기들은 때릴 데가 없다는 걸 알아버린 거다.
조카들이 태어난 후 내가 가르치던 초등학생 중 나를 정말 힘들게 한 아이에게 어느 날 빛이 나는 현상까지 있었다. 아이들의 소중함을 깨달아버렸다. 이렇게 소중한데! 어디 하나 손지검 할 데가 없는데!
왜 그렇게 나를 때렸지..
조카들에게 한없이 인자한 엄마의 행동은 한편으로 불쾌하다.
나는 조카들이 아무리 어려도 잘 못된 행동이 있으면 들을 수 있던 들을 수 없던 무조건 말하고 가르치라고 하는데 엄마는 모든 게 허용적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지적하려고 하면 더 강요적이고 더 큰 목소리로 짓누르듯이 내가 말 한마디도 더 못하게 큰 소리를 친다. 그럼 나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 언제부터 저렇게 허용적이었다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괴리감에 괴로워진다.
우리를 벽에 몰아 놓고 따귀를 때리던 엄마는 어디 간 걸까. 이혼을 중재하는 TV프로그램에서 간혹 한 배우자가 관찰 카메라 앞에서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때 다른 배우자가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게 아니겠는가..
"평소처럼 해~!"
사회는 자식에게 "부모님께 감사하여라 공경하여라 존중하여라 지켜드려라 사랑한다 하여라" 가르치지만,
부모에게 "자식에게 미안했다. 고맙다."라는 말을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당신들이 아무리 각박했던 시대의 피해자였다 한들..
나는 진심을 담은 그 두 마디면 되는데..
그러면 다 용서하고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집착 그만..)
암튼 조카들은 우리 관계의 큰 국면이다. 우리는 이제 다 접고 산다. 그냥 '나이 먹어서 그렇다'도 될 수 있겠지만(다 귀찮아). 어쨌든 조카들이 행복해야 되니까. 조카들이 아프면 안 되니까. 조카들은 나쁜 건 모르고 살아야 되니까.
우리는 몇 년 사이 다 바뀌어버렸다. 정말 '대단한 존재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