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사

23. 나는 언제 자리 잡지?

by 소년

코로나는 우리 가족이 합쳐야 했던 또 다른 이유를 줬던 것 같다. 코로나 여파로 학생들이 학원가에서 집 근처 동네로 공부할 장소를 옮기는 현상이 생기다 보니 공부방은 오히려 잘 유지되었다. 그런데 아빠는 일이 뚝 끊겼고 결국 엄마는 가계 유지를 위해 밤샘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밤새 서서 김밥을 말고 아침에 오면 눈 위에 수건을 올리고 잠을 잤다. 그 와중에 조카가 태어나니 한 번씩 손주를 봐주던 어느 날 엄마는 체력이 달려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한 동네 살던 동생네와 엄마 아빠는 거의 동시에 코로나에 걸리기도 했는데 다행히?! 나는 2023년 엄마 아빠가 이 집에서 '출가'한 후 혼자 일 때 뒤늦게 처음 코로나에 걸렸다. 서로 옆에서 돌보지 않았다면 아마 더 힘들지 않았었을 까.


힘겨웠던 코로나가 지나고 2023년 여름 엄마 아빠도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조금 안정되었을 때.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도 더 이상 불편함을 주면 안 된다는 말을 하며 가까운 집으로 이사를 나갔다. 그동안 나와 살며 이제는 자식이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표시를 주니 싸울 때는 둘이 나가 차에서 싸우고 들어오고 집에서는 조용히 말을 아껴가며 살았던 것 같다. 나는 그 배려가 좋았다.


사실 한 번은 이상한 정치인을 추종하는 아빠에게 단 둘이 있을 때 쓰레기를 던지며 호통을 친 일이 있었다. 자식이 아빠에게 '호통'이라고 하면 이상한가? 너무 화가 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참고 말 못 하는 수동적이고 능력 없는 딸이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부녀관계도 끊을 수 있을 만큼 나이도 찼고, '계속 그 사람을 추종하고 싶으면 당장 이 집을 나가'라고 엄포를 놓으며 그런 사람이란 걸 보여줬다(물론 찔찔 짜가며). 피식피식 아빠식대로 센척하며 비웃다가 이내 아빠는 진지해졌고 내가 지시한 대로 그 당을 탈퇴했다는 증명서를 가져왔다. 여전히 아빠는 몰래 그 정치인의 사진을 품고 있지만 더 이상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권위주의 적이고 절대주의 적인 아빠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 이제는 자식한테 지적받을 수 있고 최악의 상황에는 외면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됐다. 아빠의 일은 한 회 차 글로 쓰려다가 왠지 취지와 맞지 않고 내 개인적 감정만 실리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 아빠가 부모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옛날의 가치 속에 갇혀서 고집스럽게 사는 게 아니라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배우고 한번 더 성숙하기를 바랐다.


엄마 아빠가 나간 후 30평 집은 홀가분 해졌고, 내 기분도 가벼워져서 갑자기 아침에 산으로 운동을 나가기도 했다. 의아하게 오랜 피부병으로 냄새도 심하고 진물과 각질에 시달리던 반려견도 갑자기 며칠 후 피부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졌었다. 내 반려견은 나와 한 몸이 되어 내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신나고 좋았던 건 딱 1달. 갑자기 울적한 기분이 몰려오는데 이건 또 뭔가 싶은 거다.

내가 찾은 이유가 아주 웃기다.

성질부리고 으르렁댈 데가 없으니 다시 감정이 다운된 것이다.

하... 나는 여태 결혼 안 한 걸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도 예측할 수 없는 이런 감정기복으로 상대방이 나가떨어졌든지 내가 어디서 떨어졌든지 둘 중에 하나였을 것 같다.


이번 이유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를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삶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1년을 그 집에 혼자 살면서 사실상 30평 아파트는 아직 버거웠고, 이미 이사를 왔던 목적 자체도 엄마아빠 때문이어서 일단 다시 이사를 준비했다. 그 아파트에서 살았던 7년은 접어버리고 그전 시점에서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나는 다섯 번째 이사를 했다.

나는 언제 자리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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