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끝이 없는 이사.
우리 집은 원래 이사를 많이 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주공아파트 안에서도 몇 번이나 이사를 다니고, 주공에서 새로운 30평대 아파트로, 그 후 새로 분양받아 46평으로, 하지만 IMF를 맞아 빌라로. 그리고 그 빌라는 경매로 넘어갔고 우리는 흩어졌었다. 자꾸 가물가물 해지지만 머리로 기억하기로는 14번 정도이다. 혼자 나와 이사를 다니면서 문뜩 나도 자꾸 이사 다니던 부모님의 삶의 형태를 내려받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은 진짜 하기 싫지만 흙수저 밑에 흙수저인가 하는..
다섯 번째 이사는 이유가 정말 많았다.
불편하고 북적이다가 갑자기 뚝 혼자가 되니 처음에 독립했을 때와 다르게 '고요함'이 견딜 수 없었다. 높은 층이어서 조용하고 좋았는데 왠지 소음이 그리워졌다. 반려견은 지루성 피부염으로 인한 악취가 심해서 산책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누가 탈까 봐 조마조마하고 민망해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공부방에 변화를 주고자 전자칠판을 중고로 구매해 보려다가 사기도 당해서 난생처음 경찰도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손발이 떨렸지만 이내 해탈이 되었다. (그래 내가 언제 돈이 있었니~) 코로나 여파가 잔잔해지니 오히려 공부방에는 입회문의가 없었다. 홍보하지 않아도 알음알음 매년 중요한 시기에는 문의가 있었는데 아예 뚝! 끊겨버렸다. 이제 고3이 된 학생들은 오랜 기간 같은 환경에 매몰되어 매우 괴로워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환경을 주고 기분전환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는 너무 큰 30평 아파트였다.
남은 전세자금대출도 갚고, 관리비를 포함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간판도 달아볼 만한 저층 상가주택이나 빌라를 찾아 나섰다. 이 작디작은 동네에서 11군데를 돌아봤다.
매번 나를 위한 집은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열심히 발품을 팔면서 이미 나를 기다리는 그 집을 찾아간다. 그 순간은 기대되고 신난다. (아.. 나는 순응을 너무 빨리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둘러본 후,
처음 계약을 했던 집이 있었는데 은행 관련 문제로 파기하게 되었고 파기과정에서 임대인의 치졸하고 꼬장 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파기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 후, 부동산 대표님의 권유로 다시 본 집이 있었는데 보증금도 저렴하고 집주인 아주머니 아저씨가 너무 좋아서 인연이 되었다. 인자하신 아주머니께서 그냥 농사 지으신다면서 엄~청나게 화려한 네일아트를 하고 계신 모습이 아주 흥미로웠다. (아 이것이 건물주의 삶인가~!)
이전 집주인아저씨와도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되어서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사실 그 집의 월세가 저렴했던 이유는 건축 후 딱 한번 리모델링된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리모델링되지 않아서 베란다는 비가 오면 저벅저벅 물이 차고 벽은 외벽이라 곰팡이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인아저씨가 정직하신 편이고 집이 넓고 뷰가 좋다 보니 내겐 감지덕지한 집이었다. 아니 우리에겐. 정말 감사한 7년을 살았다.
나는 이삿날도 수업은 절대 쉬지 않는다. 짐이 엄청 많아서 다 정리되지 않았으나 오후 4시쯤 남은 짐은 안방에 그냥 다 때려 넣으시라고 한 후 어김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정말 괜찮냐고 되물으셨다. 평수를 줄여서 들어오다 보니 공간이 온통 짐으로 가득 찼다.
지금의 집에서 나는 풍부한 매미소리와 아침 새소리와 저녁 귀뚜라미 소리, 가끔 지나가는 아저씨들의 교양 없는 "까~악 퉤!" 소리,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 겨울 새벽에는 눈길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택배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잠 못 이루는 완전히 settled 상태다. 무엇보다 가계사정이 안정되고, 학생들도 쉽게 들락날락하며 공부하고, 냄새나는 반려견을 맘 편하게 출입시키며 운동시키고 있다.
내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지 궁금하다. 월세살이가 불안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집 형태를 경험하며 부동산에 대처하는 지식이 쌓이니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억울하지 않기도 하다.
더 나은 조건으로 멀리 이사 갈 수 있지 않았느냐? 왜 굳이 이 동네에 붙어 있어야 하느냐?
이 작은 동네에 나를 10년간 붙잡고 있었던 3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나의 자랑, 나의 자부심.
나보다 작았던 초2 아이들은 어깨 쩍 벌어진 성인남성들이 되어 좋은 대학에 들어가 연애도 하는 대학생 청춘이 되었다.
이 광명을 얻으려고 여기에 있었다. 다른 브런치북을 쓰려고 아이들 이야기는 아껴왔다. 그러나 다음은 우리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쓰련다.
나를 살게한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