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10년간 나를 살게 한 아이들.
이모는 아들이 셋이었고, 첫째와 둘째 모두 나와 공부를 해봤지만 결국 '내가 너무 능력이 없던 시기의 첫째'여서, 그리고 '함께 공부할 팀이 없는 둘째'여서 둘 다 나와의 학습을 중간에 중단했다. 너무 미안했지만 자책할 시간이 없었다. 더 이상의 실패는 안된다. 셋째는 정말 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막내는 함께 공부할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첫째와 다르게 FM! 정말 하라는 대로 해주는 아이였다. 아이들과 함께 나 역시 점점 가르치고 성장하며 이렇게 잘 따라주는 아이들을 '가스라이팅 혹은 세뇌'하는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으려 정말 조심했다. 아이들은 정말 너무 착했고 나에게 악의가 없는 천사들이었다.
아마 다른 학습을 할 때도 그렇겠지만 제2 언어를 학습할 때는 두 가지 학습 유형이 있다고 한다. 한 가지는 이성으로만 받아들이는 학습, 나머지는 본능으로 받아들이는 학습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 두 유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럼 두 가지 중에 '본능'으로 받아들이는 학습에 혹할지 모른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나도 모르게 흡수해서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간혹 그런 학습 유형의 최악의 단점이 '느림'이다. (물론 전부 그런 것도 아니고, 급한 성미를 가진 한국인만의 관점일 수 있다) 내 막냇동생은 처음부터 영어 뉘앙스의 흡수력이 좋았다. 그래서 작문을 하면 가장 매끄러운 문장을 썼다. 하지만 습득 속도가 느려서 어김없이 고1부터 또래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리고 느린 아이일수록 평범한 아이들보다 노동강도가 세져서 금방 지치고 포기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내 동생은 포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찐 FM이다. 그렇다고 아둔한 편도 아니다. 학습 외로는 주변 상황에 대한 파악도 빠르고 특히 친구들 간의 묘한 분쟁을 잘 느끼고 아이스 브레이킹을 정말 잘해서 미움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어딜 가나 사랑받는다. ㅎㅎ 진짜 굉장한 능력이다. 어릴 때부터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영어학습에 한계가 있다 보니 걱정은 되었다. 그렇다고 말리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비슷한 관련 전공을 잘 찾아가서 정말 기특하다!!
어릴 때부터 한 히스테릭했던 B는 수업 중에 한 번씩 방귀를 뀌어야 했다. 긴장되거나 친구들과 아주 작은 것이라도 비교되는 상황이 오면 배가 부글부글 하며 독가스를 뿜었다. 초등학생 6학년 어느 날에 나는 정말로 불쾌해서 "담부턴 저어~기 현관문 가서 끼고 냄새 털구 들으와~~!! 아우 선생님도 자꾸 이러면 불쾌해~~!!" 했더니... 그 생활을 중3 때까지 했다. 이 순진무구한 영혼을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다 이해하고, 웃음도 꾹 참아주고, 모른 척도 해주며 견뎌줬다. 애기티를 벗지 못하던 중3과 달리 고1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좀 더 참고 감정 조절도 해보고 툭하면 울던 눈물도 없어졌다.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와 거울처럼 비슷한 면을 갖고 있어서 나 역시 그 아이의 마음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가끔 참지 못하고 나에게 뾰족뾰족하게 말하지만 알고 보니 제 엄마를 맹목적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영어선생님 중에는 나를 맹목적으로 존경해 주고 사랑해주고 있었다. 교회 얘기만 나오면 날을 세우고 따지던 아이가 친구들과 교회를 가보더니 지금은 가장 열정적인 신앙인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곤충박사였는데 대학도 환경 관련전공으로 합격했다.
나와는 결이 달라 속을 알 수 없었던 C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들이 자기의 첫인상만 보고 반항적인 학생일 거라고 속단을 했는지 오해를 받고 있더란다. 그 말에 속상했지만 선생님들이 그 아이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공감은 갔다. 눈빛에 약간의 포스가 있다 보니! 하지만 실체를 알고 나면 지인~짜 괜찮은 학생이라는 걸 알 꺼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정말 크면서 너무너무 차분하고 괜찮은 남자가 되어갔다. 착하고 성실하고 전혀 행동에 악의가 없는 아이였다. 매사에 성적도 안정적이어서 내가 가장 안심하고 있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그 안정감을 주던 아이가 가끔씩 무너질 때 우리는 모두 충격에 빠졌었다. 이상하게 한 번씩 성적이 곤두 박질 쳐서 식겁할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만 놀라는 게 아니라 본인도 크게 놀라니까 너무 속상했다. 수능 직전까지 깜짝깜짝 놀라게 하더니 다행히 수능 때 예상점수를 받았고 최종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갔다. 합격 발표 날 가족 모두 환호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해 줬다.
수능을 본 당일부터 아이들은 연락이 없었다.
나는 너무나 서운한 감정을 혼자 삭히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가르쳤는데 이 나뿐 놈들...'. 아이들 역시 끝까지 끝난 게 아니라 이 중요한 순간 경거망동 하지 않으려고 말을 아끼는 거였다. (그냥 그렇게 믿고 있다 ㅎ) 최종적으로 대학합격결과까지 나오고 선물을 들고 방문했다. 눈물을 꾹 참고 맛있는 소금빵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보냈다. 아이들이 어릴 적 그렇게 혈기 왕성하고 감정 조절을 못해서 툭하면 소리 지르던 나는 어느새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변했다. 10년 사이 나보다 작고 왜소했던 아이들은 점점 길쭉하고 어깨가 벌어지더니 남자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보며 아들 크는 게 이렇게 경이로운 건가 싶더라. 여자 아이들 변하는 건 잘 못 느끼겠는데 아들들 클 때는 감동이 느껴진다.
내 막냇동생은 대학 영어강의를 사진 찍어 보여주며 나에게 숙제도 알려주고 어떻게 하냐고. 여전히 고등학생처럼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을 하다가 가만히 두니 마침내 스스로 해결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 느린 아이들은 마음의 성숙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10년을 견뎌온 아이들.
C는 고2 때가 되니 어김없이 지쳐하고 힘들어하는 게 눈에 띄게 보였는데.. 결국 버텨냈고!
다행히 끝까지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보니 달콤한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선은 이긴다는 것이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무엇보다 나도 아이들도 버텨냈음을 칭찬하고 싶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 진짜 대단하다!
요즘 아이들의 대학생활이 너무 부럽다. 그 시절. 스무 살 그 시절.
요즘 나는 학습의 의미를 찾는 학생들을 설득할 때,
"대학 꼭 가~! 왜냐하면 나는 그때 너무 행복했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가! "
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막내는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연애를 시작한 것 같았다! 깜찍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