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제약 없이 원하는 하루를 상상할 수 있다면...
작년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던 ‘선재 업고 튀어’를 보았다. 화제의 드라마답게 ‘선업튀’는 그동안 굳어진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고 몽글몽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보았던 영화 ‘유미의 세포들’이 기억난다. 유미의 여러 귀여운 세포들 중 '사랑세포'는 연애 시작 전 혼수상태로 병원 중환자실에 오래도록 있었다. 이를 동일하게 나에게 적용시켜 보자면 나의 사랑세포와 덕심세포 역시 중환자실에서 링겔을 맞고 있기에 충분한 상황이었으나, 선업튀로 인해 심폐소생술을 받게 되었다. 잃어버렸던 혹은 잊어버렸던, 아니면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던 사랑세포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바로, 류선재로 상징되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호응이었다.
나의 얇고 긴 덕심은 트렌드와 궤도를 같이 했다. 다양한 아이돌과 가수를 섭렵했고 보이그룹과 걸그룹 양쪽을 모두 조금씩 다양하게 좋아했다. 한때 영화 역시 나의 깊은 사랑을 받았지만 시간과 돈의 한계로 머나먼 당신이 되곤 했다. 드라마는 많이 보지 않았다. 도저히 10화 이상 긴 분량을 챙겨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명작이라고 하는 드라마를 정해 오래도록 조금씩 쪼개어 보았다. 그렇게라도 겨우 보았던 드라마는 몇 안된다. ‘도깨비’와 '태양의 후예' 정도가 고작이었다. 드라마 자체를 오랜만에 보니 아이돌에 대한 사랑도 좋지만, 스토리에 대한 목마름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열심히 했던 RPG 게임 역시 스토리의 재미로 하지 않았던가!
요즘 '나는 솔로'나 '솔로지옥', '커플 팰리스' 등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연프는 짧은 촬영기간으로 인해 서사가 그리 깊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다. 선업튀는 인과관계 명확한 드라마라서 주인공을 따라가면 깊은 감정과 애달픈 서사를 느낄 수 있어 완전히 대리만족이 되었다. 스토리의 재미와 반전, 설렘과 긴장을 넘나드는 감정의 다이나믹, 꽉 막힌 해피엔딩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다. 수원 화성의 아름다운 풍경도 좋았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하루를 만든다면, 나는 내가 선업튀의 주인공인 임솔이 되어 류선재와의 데이트를 기획해 보고 싶다. 그것이 어렵다면, 류선재가 아닌 변우석이라도. 사실 그냥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과 가도 좋겠지.
멋진 데이트가 되는 하루라... '내가 원하는 하루'라는 주제를 받고나니 막상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아무 제약 없이 하루를 상상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나는 다이나믹한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일상을 함께 살아보고 싶다. 선업튀도 아름다운 자연과 자연스러운 수원의 거리가 좋았다. 마침 2025년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 중 '아보하'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뜻으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을 말한다. 나 역시 일상의 데이트가 마음에 든다. 하루가 아까우니 여행지에서와 같이 빼곡하게 하루 일정을 채우는 것으로 하자.
먼저 마음에 드는 예쁘고 편한 옷과 신발을 신고 오전에 만나 서울 시내에 있는 식물원을 다녀오고 싶다. 자연 속에서 예쁜 식물을 보고, 소소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산책한 후 맛있는 점심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다녀오고 싶다. 그리고 오후 4시쯤 조금 일찍 시작하는 뮤지컬을 봐야겠다. 음악이 멋진 뮤지컬이면 좋겠고, 노래 실력이 훌륭한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 뮤지컬 아이다를 못 봤는데 만약 공연한다면 적절할 듯하다.
뮤지컬을 보고 난 후 사진도 함께 찍는다. 선업튀에서는 증명사진을 함께 찍었는데 네컷사진으로 더 멋지게 남겨보자. 저녁 시간이 되면, 한강에 가서 산책을 하다가 함께 치킨에 맥주 한 잔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하고 싶은 걸 쭉 적어보았는데 만약 현실적인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 체력으로는 딱 절반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말 이틀에 나눠하는 걸로 해도 될까. 그리고 뮤지컬 대신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포레스텔라 공연을 같이 보거나 보고싶은 영화를 봐도 좋고, 내가 취미로 하고 있는 합창단에 가서 같이 노래연습을 해도 좋겠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사실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을까. 계절은 꽃구경 가기 좋은 아름다운 봄도 좋고, 낙엽이 날리는 가을도 좋다.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겨울도 멋지다. 하지만 풀벌레 울려퍼지는 정취가 좋고 하늘의 별을 보기도 딱인 여름밤이 제일 좋을 것 같다. 예전에 여름의 분위기를 표현한 밈이 있었다. 이렇게 뜨거운 계절을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 그런 시절을 상징하게 되지 않을까? 바로 ‘여름이었다’고. 나중에 내 인생에서도 ‘여름이었다’로 추억할 수 있는 하루 정도 만들어도 좋잖아. 그게 당신이라면 더 좋겠지. 류선재씨. 혹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그런 상징적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야.
* 이 글은 기존에 써놓은 글을 연희창작문학촌에서 수정 업데이트하여 발행했습니다. 작가들에게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시는 연희창작문학촌 및 서울문화재단 관계자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주로 시와 동시를 쓰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로 브런치에서 여행기와 에세이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