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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Mar 27. 2024

울적함에 대한 코칭

코칭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막막할 때가 있다. 그 막막함은 고객이 말하는 단어 하나에서 비롯되기도 하는데,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하. 올 것이 왔구나!’


얼마 전 고객은 ‘울적함’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초보 코치 시절이었으면 당황해서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겠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그냥 올 것이 왔으니, 최선을 다해서 고객과 함께하겠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 단어를 떠올린 이유를 듣기 위해서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고객은 울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속사포처럼 털어놓기 시작했다. 고객이 회사라는 공간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나조차도 답답한 마음이 올라오고 울적해질 것만 같았다.

 

마음과 관련된 코칭을 할 때 막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실체 없음 때문일 때가 많다. 코치인 나는 물론이고 고객도 그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러니 연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하나씩 탐색할라치면 고구마 줄기 나오듯 끝없는 탐구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뿐이랴. 실체가 없으니 언제 왔다가 언제 떠나갈지도 알 수 없다. 코치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것의 실체를 고객이 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다만 그 안에 함께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울적함이 어떤 모습이냐고 묻자, 고객은 말했다.

“젖은 수건처럼 축축해요”

“그리고 미지근하고요”

고객은 그 모습에 액체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울적함’에서 시작해서 액체괴물을 떠올렸으니 절반은 성공이다. 액체 괴물을 떠올리며 어떤 마음이 드는지 물었더니 고객이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했다.


“액체괴물이라고 이름을 붙이니까 뭔가 귀여워졌어요”


그랬다. ‘울적함’이 ‘통제할 수 없음에서 오는 답답함’이라고 정의 내릴 때는 답답하고 숨 막히고 무거운 것처럼 느껴졌는데, 액체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니 조금 더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고객님! 액체괴물이 고객님을 떠나는 날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면 뭐라고 남길 것 같아요?”


고객은 조금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글쎄요. 액체괴물이 무슨 말을 남길지 보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먼저 떠올라요”

“너와 함께 하는 동안 나를 보다 잘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워”

“그리고 액체괴물이 남긴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을 것 같은데요?”

“난 이제 다른 숙주에게로 갈 거야. 안녕!”

 

고객은 이 질문을 통해서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울적한 마음이 사라진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질문을 받으니 그 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어요”


마음이 불편하고 어려울 때 새로운 생각을 가로막는 것은 그 상태가 계속될 것 같다는 걱정과 불안이다.

그것의 끝, 새로운 상태를 구체적으로 상상할수록 우리는 변화할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실체 없음’에서 허우적대던 고객의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지고, 당분간 액체괴물과 귀엽게 놀아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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