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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Mar 08. 2024

또 다른 여행의 서막이 올랐다

지난 8월 나트랑에서 스펙터클하고 긴장감 넘치는 경험을 했던 우리 가족. 아쉽게 함께 하지 못했던 작은언니의 재촉 아닌 재촉으로 조금은 급하게 이번 여행이 결정되었다. 이번 여행의 의미는 엄마를 위한 효도 여행이자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중3 조카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멤버 구성이 달라졌으니, 새로운 케미가 생겨나는 법. 새로운 케미가 빛나길 바라며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을 맞이했다. 첫 소식은 비행기가 40분 연착된다는 것. 평소라면 달갑지 않았겠지만 이번 만은 달랐다. 오후 비행기임에도 불구하고 여행 멤버 모두 각자 다른 이유로 분주했으니 모두 40분의 여유를 반겼다.


우리는 갑자기 생긴 여유를 즐기며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 후 집으로 이동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공항으로 가면 딱 맞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올랐는데 멀쩡 했던 차 시동이 안 걸렸다. 알고 보니 깜빡이가 켜진 채로 1시간가량이 방치되어 배터리가 방전된 거였다.
 
아! 여행도 떠나기 전에 또 파란만장할 것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이번 여행 메이트는 아주 새로운 조합이다. 큰언니네 모녀, 둘째 언니네 모녀, 그리고 울 엄마와 나. 이렇게 6명, 6 모녀와 3대가 함께 하는 이색적인 여행이었다.


새로운 멤버로 들어온 작은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에피소드 제조기라고 할 수 있다. 갑자기 십수 년 전 아찔했던 여행이 떠오르면서 불안을 증폭시켰다. 당시 언니는 조카를 임신한 상태였고, 엄마와 큰언니와 나까지 4명이 차로 이동하고 있었다. 큰언니가 운전을 하고 작은언니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오랜만의 여행으로 들떠 즐거운 수다 삼매경에 빠진 채 좌회전을 앞둔 순간이었다. 운전을 하던 큰언니가 섬뜩한 말을 하면서 우리는 모두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어. 브레이크가 안 먹어"

주행 중 브레이크 고장이라니. 그야말로 위급 상황이었다. 놀라고 당황한 목소리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때 큰언니보다 운전 경력이 더 많았던 작은언니가 침착한 목소리로 당황한 큰언니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일단 쭈욱 직진해."


차가 비탈길로 접어들자 점점 가속이 붙었고, 불안을 증폭시켰다. 평지로 접어들자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적한 도로여서 뒤 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저기 앞에 갓 길 보이지. 천천히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 봐"


그리고 차가 천천히 갓길에 들어선 찰나 작은 언니가 핸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서 차를 정지시켰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체감은 그 몇 배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사고로 이어지면 아찔했을 것을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결론적으로 차량 관리 미숙은 있었지만 베테랑 운전자의 기지가 빛났다.


사실 수년 전 이야기를 이렇게나 상세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아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찔한 순간 못지않은 웃지 못할 이야기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견인차를 불렀고 정비소까지 1시간 30분가량을 이동해야 했다. 임산부 언니와 고령의 엄마는 견인차량에 탑승했다. 나와 큰언니는 우리 차에 탄 채로 견인차량 뒤에 올려진 형국이었는데 아무려면 어떠랴 싶었던 마음도 잠시, 서서히 얼굴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때는 바야흐로 뙤약빛이 작열하던 8월 한 여름이었다. 창문을 모두 열고 있었지만 온풍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여행은 시작과 동시에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차량 관리에 미숙했던, 그러나 기지만큼은 베테랑 운전자였던 그날의 그 임산부 언니가 이번엔 큰 언니 차를 방전시켰다.

"아차. 내가 식당 들어올 때 깜빡이를 킨 것 같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얼른 보험사에 연락하라고 이야기하는 언니가 한 마디를 보탰다.

"보험사에 연락하면 바로 와서 해줄 거야. 점프 케이블 가져와서 충전하면 금방이야. 열 번까지는 무료니까 괜찮아"

역시 베테랑 운전자다운 대처다.


40분 연착이 가져온 여유를 배터리 충전하는 데 알차게 사용하고 드디어 무사 여행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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