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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춤, 조르바의 춤, 나의 춤

by 도심산책자

2024년 12월, 우리 집 연례행사인 엄마의 생신이었다. 약 3주간의 행사(?) 준비를 했고, 사전 답사까지 마친 후 경치도 좋고 맛도 훌륭한 한정식집을 예약했고, 예쁜 케이크와 꽃도 준비했다.


가까운 친척들까지 초대한 자리라 우리 가족은 일찌감치 식사장소에 도착해서 자리를 세팅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종업원 한 분이 엄마에게 웃으며 한마디를 건넸다.


“여사님, 기분도 좋으실 텐데 노래 한 곡 하시죠!?”


이렇게 제대로 돗자리를 깔아주니 가만히 있을 엄마가 아니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몸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 한 자락을 멋지게 뽑으시더니, 뒤이어 부드럽게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래전 이긴 하나 복지관에서 다년간 스포츠댄스를 연마하셨다. 오늘 이 날을 위해 연마했다는 듯, 스텝을 밟고(발재간이라고 해야 할 것처럼 명랑했다), 빙글빙글 돌며 춤추는 모습이 참으로 천진해 보이셨다.


모든 동작이 손끝에서 시작해 손끝으로 끝나는 듯 부드러운 손놀림은 덤이었다. 엄마의 거칠 것 없는 춤사위에, 지켜보던 언니와 나는 흐뭇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행사가 끝난 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엄마가 춤추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도착했다. 그 순간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엄마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행복’이 몸을 통해 온전히 표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할까. 그리고 그 모습은 누가 보든 말든 개의치 않는 자유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나는 우연히 ‘조르바의 춤’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나게 됐다. ‘조르바’라는 단어가 주는 자유로운 느낌에 끌리면서도, ‘춤’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잠시 멈칫했다. 그때 문득 엄마의 춤이 떠올랐다.


‘춤이 뭐 별 건가. 지금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지.’


그렇게 엄마의 춤은 나를 조르바의 춤으로 이끌었고, 더 넓은 세계로 확장시켜 주었다. 물론 차이가 있다면, 나는 몸부림치며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지만, 엄마는 이미 몸으로 자유를 표현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도 몰랐던 몸의 신호를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른 조르바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보며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자유는 결국,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돌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

부정적인 사건이나 감정을 회피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며 흘려보낸다는 것,

그리고 그 이면에 숨은 욕구를 인정하며, 그에 맞는 선택을 하겠다는 용기를 내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마친 뒤, 후일담을 전해 들은 친구가 물었다.

“이제 과정이 끝났으니 혼자서 연습해 보는 거야?”

“아니. 몸이 기억하고 있는 강렬한 경험을 그대로 남겨두려고 해.

그러면 일상에서 필요한 순간, 그 기억이 나타나 나를 도와줄 것 같아.”


그렇게 이야기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그 다짐을 상기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마치 삶이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네가 했던 다짐, 일상 속에서 잘 적용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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