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지고 꺾여도 살아 있어요
한강 공원에 가면 생각지도 못한 진귀한 풍경과 마주할 때가 있다. 오늘 산책길에 마주한 장면들을 풀어보겠다.
# 책 읽는 할아버지
선착장을 돌아 산책길로 들어섰을 때였다. 산책길 옆으로 낮은 언덕배기 위에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유독 빨간 옷 색깔로 인해 저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안경도 없이 책을 읽고 계셨는데, 뒤로는 갈대가 멋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아름다운 풍경의 주인공이 된 줄 모르는 할아버지는 마냥 평화로운 모습으로 책 속에 빠져 있었다. 나는 모르는 할아버지 덕에 명당자리 하나를 새롭게 발견했다.
# 출사 나온 할아버지와 나물 캐는 할머니
그다음으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두 분의 관계는 모르겠다. 사실 나물 캐는 할머니를 보며 웃음이 터졌는데, 그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할아버지가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고 계셨다. 이 풍경이 진귀하게 느껴진 이유는 그 옆으로 난 자전거길 위에 자전거족들이 쉴 새 없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울리지 않을 듯 묘하게 어울리는 오묘한 조화가 봄날의 자유분방함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엔 왜 들어가신 거예요?
한강변에서 전에 없던 구조물을 발견했다. 원통형 시멘트 구조물인데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곳을 지나갈 때 문득 유년 시절이 생각났다. 어릴 때 장난치며 놀았던 기억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런데 반환점을 돌아 다시 그곳에 와보니 중년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그곳에 들어가 깔깔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한적했던 한강변이 순간 왁자지껄해졌다. 봄기운이 꽁꽁 얼어붙었던 동심마저도 자극한 게 아닌가 싶다.
#짙은 푸른 빛깔을 내던 까치
선착장 근처로 돌아와 한가로이 걷는데 까치 한 마리가 산책길 가장자리에 앉았다. 지척까지 다가가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길래 가까이 다가가보니 검은 깃털 부분이 햇빛을 받아 신비로운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신비로운 빛깔에 취해서 사진을 찍으려던 순간 까치는 날아가 버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사진 대신 까치 소리만큼이나 상서로운 기운을 느낀 것에 위안을 삼았다.
#부러지고 꺾여도 살아 있어요
산책길에 이제 막 가지마다 물길이 올라오고 있는 능수버들을 발견했다. 아래로 늘어진 잔가지들에도 초록빛 물길이 올라온 것이 반가웠다. 진짜 봄이구나 생각하던 찰나 늘어진 가지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시선을 옮기다가 순간 멈칫했다. 가지가 시작되는 지점이 엉망으로 꺾여 있는 거였다. 그럼에도 물길이 들고 잎이 돋을 것을 상상하니 그 생명력이 새삼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