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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뒷모습

제주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by 도심산책자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하기 전까지 시간이 떠서 산책을 나섰다. 해안도로를 따라 5분쯤 걷다 보면 뷰맛집 카페가 하나 있다. 전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바다뷰를 감상하기 최적의 장소였기에 볼 때마다 인파들로 북적였다.


그 카페를 지나갈 때 오픈 시간 전 카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청소에 여념이 없는 스텝들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통창을 닦는 분주한 손길과 통창 밖으로 보이는 정원의 작은 연못(?)을 청소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방문객들이 창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가장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가장 투명한 시야를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장 깨끗한 유리로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방문객이 무엇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미리 배려하는 예술가의 마음과도 같다고 느껴져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이 분들의 완벽주의 덕분에 방문객들은 뷰를 제대로 즐기다 갈 수 있겠구나 ‘


방문객들을 기다리는 진심이 느껴져 인상적인 곳은 버스정류장 맞은편에서 발견한 책방이었다.

‘아. 어제 왔던 책방이 여기 있었네.’

정확한 위치 감각도 없이 우연히 찾아들었던 책방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사 들고 나오는 기쁨.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기쁨이자 묘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튿날 버스환승정류장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마주한 그곳은 새롭게 다가왔다. 이전에는 책이 보였다면 그날은 책방 주인장이 보였다. 갑자기 내린 비로 책방 창문에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주인장이 우산도 없이 급하게 맞은편 편의점으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한 동안 책방은 비어있었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책방을 보며 분명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이 지나자 손님 한 명이 책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하나, 둘, 셋’

아니나 다를까. 이어서 책방 주인이 편의점에서 나와 책방으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책방 주인이 점심시간을 보내는 방법에서 방문객들을 위하는 마음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책방이라는 공간에 책냄새만을 남기고 싶기에 음식을 들일 수 없는 마음, 대형서점은 책이 주인이지만 독립책방에서는 책도 주인도 주인공이 되기에 오래도록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마음,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는 마음으로 얼마나 부지런히 편의점 창밖을 응시했을지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책방 주인의 식사시간은 ‘자리를 지킨다’는 그 자체로 환대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가 비운 자리는 너무 금방 허전해져서, 늘 돌아올 준비를 하며 식사를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날은 비예보가 있었다. 여행 중에는 일기예보를 더 자주 보게 되는 면이 있다. 12시 즈음부터 비예보가 있어서 우산 없이 오전 일정을 보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1시 즈음부터 비바람이 시작되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혹시나 해서 책방 주인에게 근처에 편의점이 있는지 물었다. 15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정도의 비면 우산 사러 가다가 홀딱 젖을 것이 분명했다.


제주 날씨는 변덕이 심하니까 조금 잦아들면 이동해야지 마음먹고 한적한 공간으로 가 새로 산 책을 읽고 있었다. 얼마 뒤 주인장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손님이 두고 간 우산이 있는데, 조금 작긴 해요. 혹시 필요하시면 가져가셔도 좋아요.”


그날 나는 책방 주인의 따듯함 덕분에, 오래전 손님이 남기고 갔을 작은 우산 덕분에 비바람을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두고 간 배려가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도착한 것이다.


다정함이란 꼭 따뜻한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날의 비를 막아주는 작은 우산처럼 문득, 조용히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4박 5일, 제주에서 나는 다정한 뒷모습들을 만났다. 말없이 손을 내밀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우산 하나 건네는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제주에서 떠나기도 전에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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