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 공짜 법률서비스의 장점, 그리고 분명한 한계

by 도심산책자

원청사에 이의 제기를 한 지 2주 만에 합의서 초안이 도착했다. 그 문서를 받는 순간,

“이제야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로 가겠구나.”

나는 그렇게 믿었다.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들이 드디어 올바른 궤도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예상은 너무도 쉽게 깨졌다.


합의서의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정작 시공사의 책임은 줄어 있었고, 세대가 가져야 할 권리는

여기저기 삭제되거나 흐릿하게 누락되어 있었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이미 구두로 합의된 내용들이

서류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조용히 줄어들거나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한 조항의 문구’가 아니었다. 그 조항들을 통해 누구의 책임이 어떻게 규정되는가, 세대는 무엇을 보장받아야 하는가, 전체 판이 왜곡되는 지점이 보였다. 이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건 더 이상 혼자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늘 마음 한편에 높은 문턱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먼저, 무료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찾아보았다. 전국 단위로 운영되는 곳이 있었고 가장 빠르게 예약 가능한 지점을 골랐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20여 분의 상담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사건 경위, 쟁점, 질문을 한 장에 깔끔하게 정리해 갔다.

그리고 마침내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도심산책자님, 2번 상담실로 들어오세요.”


상담이 한창 흐르던 중 나는 자연스럽게 상대를

‘변호사님’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는 조용히 정정했다.

“아, 저는 변호사는 아니에요.”

그 짧은 문장이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또렷하게 정렬시켰다.


아, 이 서비스는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행정절차 안내와 기본적인 방향 제시’에 가까운 것이구나. 그는 전체 조항의 흐름을 두루뭉술하게 짚어주었고,

개별 보상 항목이 소송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되는지만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어떤 항목은 다소 과해 보이니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성의 없었다는 건 아니다. 그들은 주어진 범위 안에서

분명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작은 모래알 같은 찜찜함이

계속 남았다. 지워지지 않는 느낌, 아직 중요한 질문들이 열리지 않은 느낌. 그리고 나는 또렷하게 깨달았다.


지금 내가 맞서고 있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 이번 사안의 핵심 쟁점은 정확히 무엇인가

• 어떤 방향으로 전략을 설계해야 하는가

• 내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 합의서의 한 문장이 훗날 어떤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은 무료 상담으로는 닿을 수 없는 깊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담실을 나서는 길.

오히려 마음이 더 복잡했고, 그 복잡함 속에서 하나만 선명했다. 이제는 진짜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


그래서 검색을 시작했다.

퇴근 후 갈 수 있을 것,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을 것.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 눈에 띄었다. 6시 이후에도 문을 여는 변호사 사무실. 거리도 적당하고, 리뷰도 좋았다. 마치 “여기가 다음 단계입니다.”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무료 상담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방향’을 알려주었다면, 이제는 문제의 판을 바꾸고 나를 지켜줄

‘전략’을 세울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변호사와의 만남이 일사천리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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