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강한 건 '좌절하지 않는 태도'다

'31승1패' 마이클 스핑크스보다 '13승14패' 마크 헌트가 강한 이유

1999년 개봉한 미국 영화 '파이트 클럽'.


극 중,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은 싸움 집단 '파이트 클럽'의 리더다. 그는 어느 날 조직원들에게 신박한 과제를 내준다.

"길 가다 아무나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벌이곤 져줘"


?!?


이기는 것도 아니고 져주라니, 이게 뭔 소리지.


싶었지만, 알고 보니


정말로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애초 승패 여부 따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고 이기고를 떠나, '온실 속 화초'로 길러진 현대인들에게 내면에 숨겨진 야수성을 일깨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1대 1 싸움 조직인 파이트 클럽엔 애초 승패보단 싸움 자체를 즐기는 인간들이 모여들었다.


주인공(에드워드 노튼)은 파이트 클럽을 통해 야수성을 일깨운다. 노예처럼 다니던 직장의 직속 상사를 찾아가 깽판을 친다. 그리곤 오히려 좋은 보상을 받고 퇴사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 파이트 클럽의 기본 규칙 8가지 중,

3번 <누군가 "그만"이라고 외치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땅을 치면 그만둔다>

7번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운다>


애초 상대를 굴복시키는 일이나 승패 여부 따윈 상관없다는 듯한 자세를 내포하고 있다. 싸우고 있다는 그 자체, 살아있음을 느끼는 희열 자체가 승패 여부를 뛰어넘는다는 메시지다.


영화에서 뿐 아니라,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절로 알게 되는 '삶의 미덕'이 하나 있다. 바로 패배나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거다. 결과보다 과정에 삶의 즐거움이 있으며, 진짜 강한 것은 승리만 하는 게 아니라 넘어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자세에 있다는 것.


이러한 '좌절하지 않는 태도'를 빨리 습득할수록 인생이 더 발전적이다.




우리는 이를 실제 사례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복서(Boxer) 마이클 스핑크스(Michael Spinks, 1956년생).

마이클 스핑크스


그는 엘리트 복서였다. 어릴 때부터 복싱 가문에서 자라 자연스레 복싱을 접했다. 그의 형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프로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조카들도 복싱의 길을 걸었다. 스핑크스도 형과 마찬가지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음은 물론, 프로 세계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데 이어 헤비급으로 전향해 1985년 '레전드' 래리 홈즈를 꺾고 두 체급 챔피언에 올랐다. 프로에 올라 파죽지세로 31연승. 누구도 부러울 것 없던 '엘리트 복서'로서의 연승 행진이었다.


하지만 1988년. 그는 프로 32전만에 돌연 은퇴하게 된다. 단 한 번의 패배 때문이었다. 당시 떠오르던 신성이자 지금도 영원한 복싱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마이크 타이슨'과의 경기였다. 1라운드 1분 31초 만에 처참한 KO패를 당했다. 그간 복싱 커리어 내내 계속 승승장구해왔던 만큼 그의 프로 첫 패배는 뼈아팠고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스핑크스는 그 경기를 끝으로 바로 은퇴해버렸다. 프로 통산 32전 31승 1패.



나는 지금도,


마이클 스핑크스가 차라리 프로 커리어 초반에 패배를 일찍이 당해봤다면 어땠을까,라고 늘 생각하곤 한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90% 이상 승률을 기록하며 커리어를 쌓다가, 이후 프로에선 타이슨을 만나기 전까지 무패였을 정도로


어찌 보면


그는 너무나 평탄한, 잘 포장된 대로를 거칠 것 없이 쭉 달려온 복서였다. 그렇게 평탄하게만 잘 달리다가, 갑자기 난데없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본인도 충격이었겠지만, 주변에서도 소위 멘붕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타이슨과의 경기 내용은 처참했다. 그렇게 프로 첫 패배를 이겨내지 못하고, 스핑크스는 링을 떠났다.


그는 여전히 전문가 사이에서 언급될 정도로 뛰어난 복서였으나, 그 전적(31승1패)만큼의 '승리자' 혹은 '뇌리에 남는 특별한 복서'로 기억되진 않는다. 그것은 그가 비록 뛰어난 전적은 남겼을지라도, 마지막이 불명예스러운 퇴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불명예는 '졌다는' 사실보다, 그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바로 은퇴해버렸다는 사실에 있다.


어쩌면 승승장구하던 커리어가 그의 발목을 잡았을지 모른다. 그는 마지막 패배 전까지 너무 깨끗한 이력의 '엘리트' 혹은 '승리자'로만 자랐다. 오히려 일찍이 큰 패배를 경험해보거나 진흙탕 속에서 자라다시피 했다면 어땠을까. 다시 일어서기도 쉽지 않았을까.


만일 그가 타이슨에 당한 이후로 다시 도전하고 또 져도 다시 도전하고 했다면, 혹은 다른 여러 강자들과 파이팅 넘치게 계속 싸우고 50전 정도까지 이어갔다면, 혹 패배가 더 쌓였을지라도 그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달라졌을지 모른다.




여기, 그와는 전혀 다른 케이스가 있다.


바로 마크 헌트(Mark Hunt)다. 그는 연이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링 위에서 수많은 강자들과 계속 싸웠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 싸움 그 자체를 즐겼던 내추럴 파이터였다.


마크 헌트


마크 헌트는 어릴 때부터 격투기를 연마한 엘리트 체육인은 아니었다. 성인이 된 후 길거리 싸움을 벌이던 중, 그의 싸움 실력에 매료된 귀인의 소개로 처음 킥복싱에 입문했다. 여러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지만, 패배 또한 많은 선수다. 입식룰 43전 30승 13패, 종합룰 29전 13승 14패 1무 1무효다. 종합은 패배가 더 많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수히 많은 격투기 팬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남자다. 패배해도 언제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강자들과 맞붙었다. 특히 2015년 미오치치와의 경기에서 실망스럽고 처참한 패배를 겪기도 했지만, 그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토니오 실바를 KO로 때려잡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약물로 부정행위하는 선수들 틈에서, 마크 헌트는 '내추럴' 헤비급으로서 끝까지 신사적이고 매너 있는 모습으로 강자 면모를 유지다.


그가 승리에만 목을 매는 선수였다면, 시합 중 상대의 치명상 부위만 계속 노리는 짓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크 헌트는 상대의 치명상 부위를 공격하기보다, 계속 상대를 북돋워주며 끝까지 상대와 매너 게임을 즐겼던 선수다. 싸움 자체를 즐기는 남자. 승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이, 오히려 상대의 약점만을 공격하지 않고 끝까지 매너 있게 격투 자체를 즐겼던 파이터.


그가 격투기 팬들의 마음에 특별한 선수로 남아있는 이유다. 그의 남자답고 멋진 파이팅 앞에선, 패배가 많은 전적 따윈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나는, 단 한 번의 실패로 커리어를 스스로 끝마친 마이클 스핑크스보다, 연이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속 링에 남아 수많은 강자들과의 싸움 그 자체를 즐겼던 마크 헌트에게 더 마음이 쏠린다.



그것은 마이클 스핑크스 같은 엘리트 출신보다 마크 헌트 같은 잡초 리얼 파이터가 우리 일반 서민 인생에 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갖은 역경과 고난이 닥치는 우리네 인생을 떠올려보면, 마이클 스핑크스의 좌절보다는, 마크 헌트의 강인한 회복력이 우리 마음에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리 주변에선 스핑크스의 커리어를 보는 듯한 사례를 발견하기 쉽다. 삶에서 큰 고통이나 피해, 혹은 패배 없이 쭈욱 잘 살다가, 중말년 즈음 겪은 단 한 번의 실패로 큰 실의에 빠지는 스토리들 말이다. 예를 들어 일류 대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중년 이후 사업이나 기타 실패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매일 술로 연명하는 얘기들. 진부하지만 충분히 보고 들어왔던 케이스다.


그런 참사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대부분 인간들은 사회 말하기 앞서 애초에 자기들 스스로 먼저 패배나 실패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좁은 마음속에 자란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패배나 실패는 그저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진짜 강한 것은 승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얘기하는 실패나 패배는, 사실 '시도'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과정 없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격투기 팬들 마음속에 '31승 1패'의 마이클 스핑크스보다 '13승 14패'의 마크 헌트가 더 뜨겁고 진한 으로 남아있는 건, 우리네 인생이 '늘 승리만 하는 위너'보다는, 승률 5할에도 못 미치는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패를 떠나 격투 그 자체를 즐겼던 마크 헌트처럼, 우리들도 인생에서의 성공이나 실패에 지나치게 몰입하기보다 인생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어쩌면 스핑크스처럼 '엘리트'거나 '온실 속 화초'로 자란 부류는 패배나 실패를 마음껏 겪어볼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안락함이나 초년 성공을 누린 대신 야생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반대로 '잡초' 부류는 사회적 인정을 못 받는 시작점에서 출발하지만, 누구보다 실패나 패배에는 면역이 되게 돼 있다.


시도나 과정 없이 삶을 살아갈 순 없다. 그 과정에서 오는 패배의 쓴맛과 소소한 성취의 기쁨, 환희 등을 모두 오롯이 느끼고 즐기는 것이 인생일 뿐이다. 우리는 패배나 실패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게 별 것 아니라는 듯,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한다. 종합룰 승률 50%도 되지 않았지만 늘 강자의 모습으로 재차 일어나 다시 싸웠던 마크 헌트처럼, 우리도 패배 속에서도 늘 강인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강자의 진면모는 승패 여부보다 좌절하지 않는 모습에 있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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