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등의 가르침을 받는다. <착하게 살아야 보상받는다. 하늘은 다 안다>부터 해서 심지어 <나쁘게 살면 벌 받는다>라는 협박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살기 쉬운 환경 속에 자란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착해서 도움이 된 적이 있었나.
그렇다. 정말 곰곰이 잘 생각해보면,
그냥 무작정 착한 건 내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은 적이 많다.
특히나, 이 지구 상에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어리 속에선 착하면 이용만 당하기 십상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사람 전부가 사기꾼이거나 나쁜 놈들이라서가 아니다. 비율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을 지라도 착한 인간을 속여먹는 나쁜 년놈들이 '꽤 있는 편'이라서 그렇다.
그런 소수가 활개 치다 보니, 다수의 선한 사람마저 늘 사기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용당하지 않거나 휘둘리지 않거나,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착한 짓을 덜 하도록 진화할 수밖에 없다. 착해 보이면 호구로 보여 타깃이 될 가능성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결국 어릴 때 우리가 늘 듣던 '착해야 한다'는 소리는, 그저 어른이나 선생들이 애들 잘 굴려먹도록 하기 위한 '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성인이 돼서도 착한 표정과 착한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런 인간은 대개 몇 가지 경우로 추려진다. '호구'거나, '강탈자의 위선' 혹은 '단순 연기(사회생활식 위선)' 등이다.
우선
'호구', 다른 말로 '=바보', 이들에게는 경계를 풀어도 된다.
하지만, 그 자가 정말 호구거나 바보일까.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정말 호구거나 바보는 드물다. 그런 인간은 애초에 도태돼서 사회에서 만나기 어렵다. 그 자가 돈이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아니든 사회에서 돈을 벌어먹고 살아남아 활동하고 있다는 건 적어도 그 인간이 완전한 호구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착한 짓을 하는 인간을 만나면, 그리고 그게 사회생활을 위한 단순 연기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런 상대를 대할 때 본능적으로 느낀다.
아. 이 새키 뭔가 있구나.
호구나 바보일 가능성이 적고 사회 직급상 예의를 갖추는 게 아닌데, 전혀 그럴 짓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과 관계인데 상대가 내게 무작정 착한 척한다는 것은 뭔가 나로부터 이득을 취하기 위한 짓임을 우리는 직감한다. '강탈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살인마 싸이코패스 중에 평소에 동물을 사랑하고 착하게 이웃을 대해왔다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접해왔다. 꼭 극단적인 싸이코패스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우리 주변의 상사, 부하, 거래처 사장 등등이 착한 짓을 대놓고 한다면, 우리는 대개 그게 '위선'임을 느낀다.
직접적으로 나를 이용해먹으려고 경계를 풀려는 행위거나, 아니면 그 위선 자체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서 장기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거나 그 둘 중 하나다.
전자는 사기꾼일 것이고, 후자는 정치인의 모습에 가깝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정치인만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은 직장 내에서도 정치질이 필수다. 직장뿐 아니라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연기고 가식이다. 이게 정치가 아니고 뭐겠는가.
그렇다는 건 사회생활에서도 우리는 위선 덩어리들을 만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결국 사기꾼에 당하지 않기 위해 호구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고, 또 동시에 내 이득을 챙기기 위해 타인에게 위선을 부리기도 해야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나 독립적인 전문직 등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일 조차도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정치질, 좆목질에 특화한 인간들과 엮여야 한다는 소리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당하지 않으려고 호구처럼 보이지 않기도 해야 하고 착한 척하며 타인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소리다.
이 논리에서 벗어난 사회인은 없다. 그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소시오패스화돼 가는 셈이다.
그런데,
정말로 드물게
착하면서도 호구(바보)나 위선자 및 강탈자가 아닌 자들이 있다.
착하게 상대를 대하면서도 그게 굴종이거나 그런 척하거나 강탈하려거나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담대하면서도 포용력 있게 정말 선의를 가지고 남을 대한다는 뜻이다.
그런 인간들은 어떤 인간일까.
그냥 한마디로 정말 강한 인간이다. 눈앞에 거의 모든 상대를 뛰어넘는 재력이 있거나 육체가 압도적으로 강력하거나 사상적으로 이치에 통달해 그릇의 크기가 남다르거나
그게 뭐든 내 눈앞의 상대를 무력하게끔 하는 남다른 경지에 다다른 인간들이다. 그런 인간은 '여유'가 있기에 - 상대에게 당할까, 혹은 집어 먹힐까 등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지 모를 '선의'를 당당히 밖으로 내보일 수도 있는 거다. 착한 짓을 했다고 호구 잡힐까를 두려워만 하면, 절대로 외부로 먼저 배려하는 등 행위를 못하게 되는 게 대한민국이란 나라다. 그런데, 먼저 호의를 베풀고 착한 짓을 한다는 건 그가 강한 인간이라는 방증이다. 결국 착한 것도 강한 자의 여유에 불과하다.
설사 그러다 호구 잡히는 듯한 상황이 연출된다 해도, 웃으며 다시 거리를 두거나 손절을 칠지 언정, 애초 어떤 이가 바보도 아닌데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짓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건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선 남다른 인물임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주변인 모두를 심리적으로 자기보다 한 수 아래의 X밥으로 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지능이 너무 높은 사람은 주변인 모두가 원숭이쯤으로 보인다고 한다. 원숭이를 근본적으로 경계하는 인간은 없다. 물론 원숭이가 날 할퀴거나 해할 리스크는 있겠지만, 원숭이를 무시했으면 했지 딱히 경쟁자로 보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20세 이상 성인은 10세 미만 아동들을 특별히 경계하지 않는다. 동등한 위치로 보지 않는다.
일본 만화 <바키> 내 세계관 최강자 '한마유지로'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여자로 본다. 다들 너무 약하니 남자조차 여자로 보인다는 설정이다. 괴기스럽지만, 한편으론 이해되기도 한다. 골격근량 50kg대인 몸무게 100kg 이상 근육질 남자 입장에서 60~80kg 정도의 말랑말랑한 일반 남성들은 아예 같은 선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을 생각할 때면 완전히 과한 설정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착하게 행동하려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상대와는 수준이 아예 다른 종족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육체가 됐든, 재력이 됐든, 사상이나 멘탈이 됐든
그게 뭐든 그 모든 총합이 상대보다 한 차원 강력하거나 차원이 달라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착한 짓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해도 상대가 내게 위해를 가하지 못할 것이란 확고한 자신감이다.
그렇지 않고 누가 봐도 약해 보이고 돈도 없고 사상의 그릇도 좁고 멘탈도 약하다면
차라리 살쾡이처럼 사나워야 한다. 인자하기보다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다.
착하다는 건 그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자들이 그거로라도 어떻게 해볼까 하는 심산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그 경우에도 대부분 그 심산이나 계략은 통하지 않는다. 상대와 비즈니스가 이뤄지려면 내 가치가 높거나, 내가 가진 무언가가 상대가 요구하는 것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냥 착한 짓으로 어필하는 것은 대개 통하지 않고 호구로 낙인찍혀 이용만 당할 수 있다. 그러니 내세울 게 없다면 차라리 살쾡이처럼 사나운 게 낫다.
결국 가장 좋은 답은 강해지는 것이다.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는 내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복잡계 영역이므로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육체적 강인함이나 사상의 그릇을 넓히는 일, 멘탈을 강화시키는 일 등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강인한 육체, 사상이나 멘탈의 강력함은 서로가 상호보완적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 자체가 강력하려면 문무, 두 가지를 모두 갖춰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상호 균형을 깨뜨릴 정도로 약하면 상대에 따라 부들부들거리게 된다. 강한 자의 여유를 지닐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춘추시대 유학자 '공자'.
그는 사상으로 유명해진 인물이지만,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냉혹한 세상의 진리를 담은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담고 있다. 그중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공자도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지금 법제도에 비하면 야만적이었을 그 시대에 공자가 자신의 사상을 널리 전파할 수 있었던 비결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공자는 키가 어마무시하게 컸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흘러내려온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도 놀라운 숫자인 2미터 이상이라는 얘기도 있다. 폭력배인 '자로'를 주먹으로 교화시켜 제자로 삼았다는 얘기는, 비록 진실은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도 비범한 전설처럼 회자된다. 키만 큰 게 아니라, 몸집 자체가 큰 거구로서 무예와 군사를 부리는 일에도 능숙했다고 전해진다. 애초에 공자는 무장 가문 출신이고, 공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평시엔 사상을 논하고 전시엔 직접 싸움에 가담하는 무장세력이었다.
공자의 사상이 현대사회에서까지 엄청난 파급력을 끼칠 수 있었던 데에는, 공자의 강력한 육체와 무력도 한몫했음을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공자가 과연 무력이 약했다면, 과연 그 밑에 폭력배를 비롯한 여러 천둥벌거숭이 같은 제자들을 거두고 통제할 수 있었을까. 사상도 무력이 있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이처럼 어질 인을 부르짖었던 공자조차 무력을 통해 그 사상을 널리 전파했다는 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현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정 시대 한 나라의 사상과 문화가 힘을 발휘하려면 그 나라의 무력도 강력해야 한다. 미국의 문화가 전 세계에 통용될 수 있었던 건 미국이 가진 군사력 덕분이었다. 일본 문화도 선진문화처럼 여겨졌던 건, 강력한 군사력 덕택이었다. 힘이 없으면 사상도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개인 간에도 그렇다. 내가 아무리 사상의 폭이 넓고 대단한 철학과 주관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무력이 약하면 눈앞 상대에게 만만해 보일 수 있다. 반대로 무력이 강한데 사상적으로 무르고 깊이가 얕거나 멘탈이 약하면, 뒤에서 머리 나쁘다고 무시당하거나 평가절하 당한다.
결국 육체적 강인함과 사상적 멘탈적 강력함(학문적 깊이)은 서로가 상호보완적으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 공자가 인자한 성인군자쯤으로 여겨질 수 있었던 건 학문적 깊이 전에 육체적 강력함이 받쳐줬기 때문이다. 인자한 성인군자 짓도 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소리다. 지금보다 더 야만적이었던 시대적 상황이었다고는 해도, 지금은 법체계가 더 강력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인간 대 인간 관계에선 육체적 투닥거림에 따른 서열정리 회로가 인간 DNA에 녹아 있다. '인자한 공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기본 전제는 '육체적 강력함'이란 논리가 지금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얘기다. 시대가 아무리 흘렀다고 한들, 인간 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과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선하려면 몸과 마음이 모두 강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래야 좀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이쯤 되면, 꼭 착해야만 하냐?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꼭 착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악랄하면서 주체적이기보단, 선하면서 주체적인 게 더 떳떳하고 멋진 법이다. 한번 사는 인생, 인자하면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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