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트루먼쇼>(1998년작)에선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일단 줄거리를 보면, 주인공 트루먼은 한 방송사가 설계한 세트장을 진짜 세상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는 아기일 때부터 그 가짜 세계(세트장)에서 살아왔다. 이를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있다. 그 세트장 너머의 진짜 세상 속 수많은 사람들은 트루먼을 TV를 통해 보고 듣는다.
영화 후반에서, 트루먼은 가짜 세상을 깨닫고 방황하고 발악한다. 결국엔 그 세트장을 나가는 데 성공한다. 그전까지 주인공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던 TV 시청자들은 그 장면에 울컥 감동하고 환호성을 지르고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트루먼쇼 프로그램은 끝난다.
그러자, 이전까지 눈물짓던 많은 시청자 중 일부는 금방 감동을 싹 거두고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며 다른 관심거리를 찾는다. 이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지만, 나는 이것이 TV-시청자 간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통용되는 예리한 통찰을 나타낸다고 본다.
<주변 기대나 관심은 '진짜 애정'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다양한 주변 사람들을 겪으며 커간다. 부모, 형제, 학교 친구들, 선생들을 거쳐 성인이 된다. 그리고 사회로 나오면 군대 동기 및 선후임들, 대학교 친구들과 선후배들, 회사 동료 및 상사나 부하들 등 여러 인간 군상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늘 그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오묘한 '기대'를 받는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A는 반에서 성적이 20등 정도다. 그러면 주변에선 늘 "다음번엔 석차 15등 정도로 올려봐" 하는 기대가 나타난다. 그 기대는 부모로부터, 혹은 선생으로부터, 혹은 친구로부터 나타날 수 있다. 어쨌든 누구나 그러한 애매한 기대를 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혹시 그 기대를 충족하면 잠시나마 칭찬을 받게 된다. 그러면 어린 자아는 그런 작은 보상에도 기분이 좋아지거나 우쭐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계속하고 싶어 주변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애쓴다. 혹시나 주변에서 실망하는 듯하면 자기 스스로도 좌절하고, 더욱더 주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심리는 성인이 돼서도 이어진다. 어느 기업에 취직했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늘 주변으로부터 애매한 기대 혹은 관심을 받으며 살아간다. 혹시 그 기대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스스로 도태된 것처럼 여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정말 좋아하거나 내게 정말 잘 맞는 일을 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그런 명찰이나 직함, 직위, 명함 등을 얻는 데 필사적이 된다.
그런데 서두에서도 시사했듯,
그러한 주변 기대나 관심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아주 잠깐의 시선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거나 존경해서, 혹은 정말 당신이 잘 되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해서 그런 기대와 관심을 갖는 게 아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기대 혹은 가십거리용 정보 취득을 위한 관심이거나 위장된 애정에 불과하다.
말로는 다들, "다 너를 위해서야",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라고 지껄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아주 잠깐의 사회적&정치적 결탁의 신호이거나, 과장해서 말하자면 당신을 휘두르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정말 당신의 본질을 좋아하거나 사랑해서 그런 관심과 기대를 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그 기대를 불충족했다며 실망했다고 등을 지는 인간들을 상기해보라. 그들은 진짜 당신 편일까.
그런 주변인들은, 혹 당신이 자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진심으로 실망할법한 생물들도 아니다. 애초에 정말 당신에게 진짜 애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무슨 실망을 하느냐 이 말이다. 그저 지나가는 관심과 기대는 집단에서의 정치질 및 친목질이 일부 드러난 형태다. 혹은 그저 가십거리용으로 자기들끼리 씹어댈 정보를 취득하기 위한 시그널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알아채야 한다.
결국 주변인들은 본질적으로 나를 위하는 게 아니다.
결국 누구나 혼자 서야 한다. 혼자 살아가야 한다.
혈육이든, 불알친구든, 연인이든, 누구나 언제라도 애정이 싹 식고 차갑게 돌변할 수 있다. 그들이 지금 당신에게 쏟아붓는 관심과 기대는, 어쩌면 자신들의 '이기'를 위한 조종이거나 가스라이팅의 변주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나쁜 행위를 은근히 부추기는 등의 행위가, '기대나 관심'처럼 포장돼 내게 전달될 가능성을 견제해야 한다.
흔히들 대중이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네게 관심 없어"라는 말은 어떨까. 그건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물론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은 내가 유명인만 아니라면, 내게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알고 지내는 사람들(지인)은 계속 SNS 등으로 염탐이라도 하면서 내게 지속적인 관심을 표출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 역시 진실한 애정이나 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가십거리용 관심이고, 상대가 잘 되면 배 아파하고 못 되면 조소할 뿐이다. (관련 글 : https://brunch.co.kr/@nihil001/78 )
그러니까,
주변 인간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내 삶을 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방해가 되는 주변인들을 현명한 방법으로 하나씩 내 삶의 바운더리에서 제거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들이 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주변에 휘둘리면 내 인생을 제대로 살 수가 없다.
인간은 다 이기적이다. 결국 자기만 생각한다. 상대가 잘 되면 배 아파하고 못되면 비웃는 심리도, 다들 상대보다는 자기 처지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변 인간에 큰 중점을 둘 필요가 전혀 없고 오히려 스쳐 지나가는 생물쯤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히려 주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게 장기적&본질적으로 내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린 나이라면, 주변에 실망을 산 내 행동들이 처음엔 스스로도 미덥고 이래도 되나 싶을 거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자유와 주체적 삶의 시작이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
뒤틀린 괴기스러운 욕구와 질시, 입방아로 가득 찬 주변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길을 내 식대로 추구해나가는 순간과 과정에 삶의 환희가 있다. 그러려면 주변 인간들은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가로막는, 가스라이팅이나 정치 공작을 행하는 유기체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첫 깨달음을 얻고 자유의 시작을 맞이했다 해도 처음엔 그 길을 걷기가 마냥 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어느샌가부터는 주변 악마들이 내 삶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선을 지키고 있음을 스스로도 확실히 인지하게 되면, 그때부턴 그 오묘한 쾌감과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에 젖게 되는 순간도 온다.
그러면, 그때서야 말로 진짜 내 인생을 살 수 있다. 남들의 시선과 기대를 벗어나, 내가 정말 잘하고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그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주변 인간들은 당신이 자신보다 잘 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많은 경우, 가십거리용으로 뜯어낼 정보에 혈안이 된 하이에나들에 불과하다. 이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면, 그들에게 휘둘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과 기대로 포장된 본심을 바로 보고, 씁쓸할지라도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진정 독립적으로 '진짜 내 삶'을 추구하는 레벨로 성장하게 된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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