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으레 주변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서로 치고박는 경쟁이 일상인 '좁은 땅덩이' 대한민국에선 희소한 가치를 선점하기 위해 높은 평가를 받는 게 유리하다고들 일반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종종 실력 이상의 지나친 대우(=과대평가)를 받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내 실체보다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게 과연 정말로 좋은 걸까.
예를 들어보자. 아래는 실제 사례다.
남자 고등학생인 A는 늘 주변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다. 특히 대외적으로 성실하고 공부를 잘할 것만 같은 외모 덕에 늘 선생들로부터 '실체' 이상의 대우를 받았다. 실력은 전국 수준(수능 모의)에서 4~5등급 선인데, 선생들은 A의 이미지 덕에 1등급을 기대했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 않더라도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고3 말 정도가 되면 그 발전 가능성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그렇게 주변에서들 바라봤다. 다행히 A는 내신 성적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급기야 고3 때에는 반에서 내신 1등을 차지했다. '과연' 거리며 선생들은 더욱 기대했다. 전국 단위 수능 성적도 최상위권을 향해 가겠지?
하지만 실체를 살펴보면, A가 재학 중인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한참 하위권을 맴도는 학력 수준이다. 거기에서 내신 1등을 해봤자 전국 단위 학력 기준에선 (모의수능) 1~2등급은커녕 3등급 정도만 나와도 다행인 수준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들은 그 실체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냥 으레 학년마다 한두 명쯤 '환경을 뛰어넘는 수재'는 있기 마련이고, A도 그런 부류쯤 되지 않을까 대략적으로 그저 습관적으로 그렇게 기대한 거다.
그러나 A의 수능성적은 저조했다. 결국, 선생들이 기대한 수준에는 전혀 못 미쳤다. 그러자 일부 선생 사이에선 급기야 실망을 넘어 조소하는 분위기도 나온다. '걔, 잘하는 줄 알았는데 영 형편없네?'
이에 A는 주변의 그런 변화에 상처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죽기 살기로 재수, 삼수를 불사한 인간이 됐다. 그러나 결국 주변이 기대했던 그런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그는 좌절하며 패배자의 모습으로 20대 초반 시절을 절망 속에 보냈다.
A는 주변 여건 상 어쩌다 보니 기대를 받는 상황이 됐으나, 그런 기대를 충족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자기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주변 인간들이 돌변하는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고, 어렸던 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
만일, A가 자기 실력대로만 평가받았다면 어땠을까.
실체 그대로 평가받았다면, 주변으로부터 허황된 기대를 받지도 않았을 거다. 그리고 그 자신도 자기에 적합한 수준에 맞는 대학을 일찌감치 정해 재수, 삼수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현역일 때 만족할만한 대학에 진학해 20대를 활기차게 보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과대평가를 받다가 괴로움에 빠진 꼴이다.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이 역시 실제 사례다.
30대 직장인 B는 첫 직장에서 자신도 놀랄만한 성과들을 냈다. 코피를 쏟을 정도로 열심히 일한 결과였다. 사내 선배들이 내지 못한 성과마저 달성하며 1~2년 만에 사내 에이스가 돼버렸다. 급기야 그런 성과가 동종업계에 소문이 나버려, 그를 스카우트하려는 회사도 나타났다.
그는 고민 끝에 회사를 옮겼다. 연봉도 크게 올랐다. 그의 전 퍼포먼스가 큰 역할을 했다. B는 기분이 좋았고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겠다는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자기가 이전 회사에서 성과를 다수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내용들이 새 회사에서 더욱더 크게 부풀려져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직원 사이에 돌고 있는 것이었다.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B의 성과는 더욱 '괴물'스러운 것으로 변모했다.
이런 얘기를 익히 알고 있던 새 회사의 윗급에선 B를 활용해 '성과 내기'를 시도했다. B 입장에선 전 회사에서 코피를 쏟으며 노력한 건 사실이나, 어쩌면 성과는 어쩌다 얻어걸린 것들에 불과할 뿐인데, 새로운 회사에선 마치 B가 당연히 성과를 내야 할 것처럼 여겼다.
B는 그 기대를 받아들여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초반엔 성과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주변 선배 등 사이에선 이따금씩 '뭐야 별 것 아니잖아?'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가끔 숨이 막히는 질식 현상이 올 정도로 업무과로에 시달렸지만, 계속 노력했다.
그러다 결국 또 성과를 냈다. 그제야 주변에선 '오 역시'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B는 땀을 닦으며 조금은 안심했다. 하지만 쉴 틈이 어딨나. 이전 회사에서 냈던 성과 이상을 달성하려면 아직 멀었다. 더 달렸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B가 실제로 성과를 내자 시기 질투심으로 B를 괴롭히려는 심보를 가진 인간이 주변에서 생긴 것이다. 급기야 콤플렉스 덩어리 직속 상사가 유독 B를 괴롭혔다.
그러다 B는 어느 날부터 숨이 막히는 질식 현상이 심해졌다. 아무리 참아봐도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결국 B는 반강제로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성과를 냈어도 뭘 하나. 건강이 망가져버린 그는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뒤 병원에 가보니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쉬는 게 좋을 거라고, 더 일하다간 더 힘들어질 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만일 B가 눈에 띄는 퍼포먼스로 주목받은 게 아니라 다른 일반 경력들처럼 무난한 상황에서 업무를 이어갔다면, 그런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역시 과대평가가 사람을 잡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위 사례와 비슷한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사람들은 으레 높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하지만, 정작 과대평가를 받아본 사람들은 이를 극도로 꺼리게 된다.
위 예와 같이, 직장에서 과대평가를 받고 입사했지만, 실력은 그 평가 수준보다 낮다면 그 사람은 퇴사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주변 기대를 충족하면 번아웃이 앞당겨질 것이고, 주변 기대를 저버리면 실망 or 비웃음을 사게 된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 회사를 온전히 다니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사업을 하는 경우라면 좀 다를 수도 있다. 적어도 사업체 내에선 누군가의 평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데다 사장(나) 역량에 따른 과실이 비교적 본인에게 다 돌아오기에 신바람 나게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함정은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사업을 크게 벌여 정부나 관련 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회사가 크게 성장해 투자자까지 끌어들여 상장사가 됐다고 해보자. 애초 운 좋게 과대평가를 받아 회사 덩치를 급속히 키우는 데는 좋았다. 다만 그렇다는 것은 그 회사 실체는 기대 수준엔 못 미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면, 부실기업으로 상장 폐지되며 창업자에게도 그 타격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과대평가는 그 업종이나 상황이 뭐든, 내게 이롭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한다. 늘 나에 대한 평가가 실제보다 너무 높게 책정되진 않았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과대평가는 결과적으로 내 신상에 이롭지 않은 상황으로 날 인도할 가능성이 높다. 주변에서 내게 큰 기대를 하지 않도록 세팅하는 게 내 신상에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오히려 내 실력보다 약간 낮게 평가받는 게 더 좋을 때도 많다. 특히 직장 내에선 다소 저평가를 받아야 적당히 대충 일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근무 외 시간에 내 시간을 즐기거나 내 일(사업)을 준비하기 위한 에너지를 최대한 남겨놓을 수 있다. (물론 승진 대비를 위해 너무 낮게 평가받진 않도록 처신해야 할 것이지만, 경험상 대한민국 조직의 대부분은 실력보다 그저 무난하게 버티는 인간이 승진하는 편이기에 그 부분은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자기 실력보다 약간 낮거나 딱 실력 수준으로 일할 수 없다면,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게 낫다)
사람들은 대개 주변에서 내 능력을 잘 알아주지 못한다며 불평한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과대평가보다 낫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주변에서 내 능력을 잘 알아주지 못한다며 불평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딱 자기 실력만큼 혹은 그보단 약간 못한 정도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대한민국 어느 조직에서나 잘 묻어가며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과대평가를 받거나 남보다 큰 주목에 휩싸이게 되면 그 자는 그 스포트라이트만큼 더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하고 그 때문에 번아웃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그 주목만큼의 실력을 진짜 가지고 있을 때여야만 부작용이 없다.
실체를 뛰어넘는 기대는 사람을 지치게 할 뿐이다. 오히려 약간 낮게 평가받으면 적당히 내 실력을 가끔씩 드러내며 조직에서 묻어가며 생활인으로서 내 이득을 요리조리 취할 수 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길거리 행인 1, 2'가 가지는 큰 이점을 잘 알지 못한다. 연예인이나 셀럽은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만 해도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정작 자기 사생활은 영위하기 어렵다. 공황장애나 대인기피증이 동반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길거리 행인 1, 2 등은 누구에게든 간섭받지 않고 자유를 강탈당하지 않고 내 삶을 온전히 누빌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고평가 받지 못한다고, 혹은 주목받지 못한다고 불평불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너무 높게 평가받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과대평가나 큰 주목은 내게 해롭다는 명백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연예인이나 유튜버가 될 것이 아니라면, 큰 주목은 오히려 내 자유에 방해만 된다. 마찬가지로 과대평가는 어느 일을 할 때든 내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주변 기대에 부응하든 아니든 귀찮은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시기 질투를 받기도 쉬울 것이고 쓸데없이 견제나 경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를 깨달으면, 우리는 오히려 조용하고 안온하며 적당한 내 삶이 가지는 이점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게 좋은 것이다. 내 실력보다 너무 극도로 낮게 대우받는 저평가만 아니라면, 우리는 오히려 과대평가를 늘 경계해야 한다. 겸손 같은 겉치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이득'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P.S. : 다시 말하지만 지나치게 낮게 평가받지도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방법은 이미 썼던 지난 글로 대체한다. (-> https://brunch.co.kr/@shinhjks/113 ) 결론적으로 내 실력이 100이라면, 직장에선 70~100 정도로 평가받는 게 좋다. 사업을 한다면 90~120 정도가 좋다. 150이나 30 정도로, 너무 높거나 낮게 평가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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