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멘탈(申興Mental)]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6월 14일(오후 6시 11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격투 관련 체육관에 20대 남성 A가 신입으로 들어왔다. 그는 초보였지만, 정말 열심히 다녔다. 매우 열정적이었다. 일주일에 2번 나오기도 힘든 종목임에도, 체육관이 문을 여는 날마다 나왔다. 2~3개월이 흘렀는데도, 꾸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알고 보니, 매일 반복되는 기본기 훈련에 불만을 가진 듯했다. 2~3년 차 이상 수련자들도 체육관에 나오는 날이면 단순한 기본 연습을 1시간 이상 거친다. 그걸 본 A는 미래에 자신도 그렇게 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외적 명분을 넘어, 실제 사유는 따로 있었다. A는 ‘스파링’을 두려워했다.
누구나 체육관을 오래 다니려면, 어느 정도는 스파링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스파링 단계로 넘어가기도 전에 체육관을 그만둔다. 1달, 길어야 2~3달 안에 전부 그만둔다. 이는 복싱, 레슬링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몇 년을 넘기는 사람은 소수다. 대체로 스파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해 더 역동적인 재미를 느끼지 못한 채 그만두게 된다. 무엇보다 초보일수록, 스파링을 일종의 ‘싸움’이나 ‘승부’로 보는 경향이 있다.
A도 그랬다. ‘승패가 없는 훈련 과정’ 일 뿐인 스파링의 본질을 이해 못 했다. 스파링에서 지는 걸 ‘자존심’과 ‘체면’을 구기는 것으로 여겼다. 더구나 기본연습 때조차도 마치 승부를 하듯 달려들어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 일쑤였다. 애초에 기본 훈련 말고 더 다양한 걸 배우고 싶다던 그의 욕구는, 자유 대련인 스파링을 통해 충족될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스파링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채, ‘진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운동을 관뒀다.
같은 시기 시작한 50대 B는 달랐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나오거나, 생업 사정상 한 번도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A보다 꾸준히 오래 다녔고, A가 거부한 스파링도 안전한 선에서 계속해나갔다. 2년 가까이 다닌 그는 이제 상당한 실력자인 체육관 ‘고인물(생체 고수)’과 스파링을 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이를 고치기 위해 실력자들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B는 스파링을 연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A였다면 불쾌하거나 패배감을 느꼈을 그런 상황에서도 B는 초연했다. 늘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고인물들에게 덤벼들었다. B가 과연 전혀 패배감을 못 느끼는 인물이라서 그랬을까. 그도 무력감이나 패배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과정을 넘어서야 강해지고 발전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B는 A보다 훨씬 강해졌다. B는 A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음에도, 완력이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아예 다른 경지로 넘어섰다.
그 비결은 다른 데 있지 않다. ‘패배’를 과정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이를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패배에 의연한 사람이 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패배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설사 훈련과정일 뿐인 ‘스파링’에서조차 패배하는 듯한 상황에 닥치면 불쾌해하거나 분하게 느낀다. 이는 인생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우리는 무얼 하든 모든 영역에서 크고 작은 실패나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그 패배나 실패에서 큰 고통을 느끼면, 인생살이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일부 성공팔이들은 마치 실패는 악이고 성공만이 옳다는 듯 외쳐댄다. 그럴수록 실패나 패배에 큰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아져 간다.
하지만 패배는 누구에게라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패배에 의연해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패배나 실패에 의연할 수 있다는 건, 결국 그걸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과정’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의연하다는 건, ‘패배에 무감해져야 더 발전한다’는 진리를 바로 볼 수 있는 현명함을 갖췄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럼, 패배에 의연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음엔 마음이 쓰리더라도, 계속 무언가를 시도하며 쓰러져봐야 한다. 누구나 처음엔 어떤 일이든 실패나 패배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영역일수록, 초보일수록 실패나 패배는 필연적이다. 첫 쓰러짐의 아픔을 넘고 계속 일어나 꿋꿋하게 다시 도전해야 한다. 쓰러짐의 상처를 극복하고 시도 횟수가 늘어나다 보면, 점차 패배나 실패에 무감해지게 된다. 그러면 나중엔 시도와 도전 자체를 그저 무덤덤하게 치르는 경지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니 우선 처음엔 힘들겠지만,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해보는 마인드를 탑재해야 한다. 그러다 간혹 우연히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땐 그 운을 즐기면 된다. 반대로 실패해도 그저 웃어넘기며 그로부터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나를 고쳐나가면 된다.
물론, 모든 과정을 절체절명의 승부로 보는 것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 절박한 마음으로 덤벼들어야 그 패배로부터 배우는 것도 커진다. 하지만 시도와 도전이 늘어날수록 각 횟수에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금세 잊히고 패배에 무감해지기 마련이다. 즉, 달리 말하면 모든 과정을 민감한 절체절명의 승부로 보는 마음은, 시도와 도전 횟수가 애초에 너무 적어서일 수도 있다. 매 순간마다 쉽게 절망하거나 크게 환희를 느끼는 사람은, 작은 과정에 집착한다는 얘기고, 결국 애초에 도전 경험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경험이 적은 미성년자는 작은 패배도 크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절대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기 쉽다. 익숙지 못한 쓰라림을 받아들이기 싫은 심리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피와 살이 되는 실패와 패배를 수차례 극복한 사람은 이후 다시 찾아오는 똑같은 크기의 패배는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내공이 생겨버린다. 그래서 힘을 뺀 채로 ‘져도 괜찮다는 듯’ 의연하게 다음 과정을 치를 수 있다.
결국, 도전과 시도 횟수를 늘려 내 ‘마음 그릇’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 소소한 성공을 비롯한 사소한 실수나 과오 등 각종 다양한 여러 경험을 쌓을수록, 삶의 길목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과정에서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수많은 시도와 도전을 감행할 힘(=겸허한 마음가짐)을 갖추게 됨으로써 자기 목표에 더 가까워질 추진력을 얻게 된다. 이는 결국 ‘성취’ 확률을 높이게 된다.
일희일비하는 사람에게 큰 성공은 오히려 독이다. 경험이 없는 채로, 그릇이 협소한 채로 크게 성공해 버리면 자신을 우상시하거나 우쭐하는 마음이 생겨버릴 확률이 높다. 그러면 추후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실패나 패배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쉽다.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겸허함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 그릇’을 넓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시도와 도전을 가능한 한 즐겁게 해 나가야 한다. 결과는 그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처음일수록 실패가 더 많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매일 찾아오는 시도와 실패의 순간을 발전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거다. 패배에 의연했던 B가 이에 민감했던 A보다 훨씬 더 성장했던 것처럼, 우리도 패배나 실패 속에서 더 강한 나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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