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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시대’가 없었기에 더 맹렬하게 싸울 수 있다

[신흥멘탈(申興Mental)]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6월 7일(오후 8시 47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사진=픽사베이)

[신흥자경소] 일본만화 ‘슬램덩크’에서 나온 유명한 대사,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 때였나요?…전 지금입니다” 

    

그 ‘영광의 시대’라는 표현이 주는 맥락적 감동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그 ‘영광의 시대’라는 건 과연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건가.

     

슬프게도 그런 영광의 순간이 없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괴로움과 모욕, 실패와 투쟁이 가득할 뿐, 누가 봐도 대단하거나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취’는 없었다고 느낄 사람들이다.

     

사회에서는 그런 영광의 시대를 논할 때, 객관적으로 내세울만한 걸 기준으로 든다. 예를 들어 무슨 대회에서 우승했거나, 최상위 학벌을 둘렀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땄거나, 대단한 사업적 성과를 냈거나, 하다못해 삼성전자를 다녀봤거나, 뭔가 ‘1등’, ‘우승’에 어울리는 명패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명패조차 누군가에겐 족쇄가 되기도 한다. 혹은, 지나고 보면 영광의 순간이 아니라 잘못된 시작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필자가 몇 년 전 마주친 50대 남성(A)의 말이 그 예시가 될 수 있다. A는 국내 최고 대학교인 S대 출신이다. 그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다른 사람(대표·사장) 밑에서 중책을 맡아 일하고 있었다. 서로 가볍지 않은 얘기가 오가다, A는 상념에 찬 표정과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S대를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잘 됐을 거야”    

 

흔히들 ‘초년 출세’를 인생의 3대 불행 중 하나로 여기곤 한다. 초년에 멋모를 때 그 당시 재능과 기질, 체질, 상황적 운 등이 종합적으로 맞아떨어져 사회적으로 누구나 인정할 법한 일을 이뤄내는 경우가 있다. 그때에, 당사자는 자신도 모르게 오만함이나 건방짐이 내면에 자리 잡게 될 수도 있다. 여러 ‘운’이 맞아떨어진 상황에서 그다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누구라도 떠받들 성과를 냈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운이 좋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소수 현자(賢者)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내가 잘나서 잘 됐다’는 ‘우쭐거리는 마음’을 발견하기 더 쉬울 것이다. 그 우쭐함이 건방짐과 오만방자함으로 커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초년에 이뤄낸 성과에 취해 자기를 대단히 여기거나, 자기보다 못한 타인을 우습게 보기도 쉽다. 그러다 초년 시기 ‘좋은 운’이 다 한 뒤에도, 과거에 취해 ‘영광의 시대’에 유효했던 자기 성공패턴만 답습할 수 있다. 그러면 변화된 환경과 불행에 적응 못하고 뒤늦게 찾아온 좌절감에 허우적대며 술독에 빠지기도 쉽다. 물론 초년 성공 후에도 자기 마음을 갈고닦아 말년까지 영광의 시대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초년 성공을 겪으면 어린 마음에 우쭐해지는 심리가 생겨나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A의 말은 그런 시각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미 초년에 대다수가 대단하게 여길만한 일을 성취해 내면....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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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자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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