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설(申興社說)]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5월 31일(오후 6시 00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초등학생 5~6학년 때 일이다. 당시 어린 필자(男)의 눈으로 봐도 다분히 ‘끼’가 넘쳐 보이는 여학생(A)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어느 날부터 다른 여학우 1명(B)과 함께, 같은 학년 남학생 1명을 정해 그 옆에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B는 마치 A의 시녀 같은 느낌이었다. 타깃이 된 남학생은 A·B의 목적(?)이 달성되면 다른 남학우로 바뀌곤 했다. 그 여자 아이들이 남학생들에게 하는 행동은 오묘하면서도 기가 찼다.
A와 B는 타깃 남학우가 정해지면 그 옆에 바짝 붙어 알랑방귀를 뀌면서 500원~1000원 정도를 빌려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빌려가기 전까지의 수법이 성인 뺨치는 수준이었다. 어른 시점으로 돌아보면, 마치 룸살롱 등에서 일하는 화류계 여성 혹은 전문사기꾼인 꽃뱀처럼, 다분히 이성(異性)적으로 남학생의 순수한 호의를 살살 긁어내어 착각하도록 만들고 돈을 갈취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여자애들이 빌린 돈을 갚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당시 매우 어리고 순수했던 필자는, 처음엔 본인이 ‘타깃’이 된 줄도 몰랐다. 그저 그 여자애(A)가 날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 여자애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실실 웃는 날도 있었다. 꼬임에 넘어가 이성(異性)적 호감을 느껴버린 것이다. 어리고 순수했던 만큼, 여자에 대한 면역이 돼 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결국 필자도 그 여자애에게 코 묻은 돈 몇백 원 정도를 내어준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당시 필자는 그 여자애가 날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만큼, 당연히 다시 내게로 와서 달콤한 말을 속삭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여자 아이는 이미 시녀 B(女)와 함께 다른 공간에서 다른 남학우 옆에 붙어 내게 했던 짓을 또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도한 당시의 필자는, 꽤 충격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도 ‘당했다’는 걸 모를 수는 없었다. 그 여자애 입장에서 목적 달성(돈 갈취)이 끝난 필자는 ‘호구10’ 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A와 B 입장에서 그 꽃뱀 짓은 돈벌이라기보단, 그저 순진한 남자애들 마음을 갖고 노는 ‘장난거리’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겐 적지 않은 쓰라림을 안겼다. 난생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필자는 그 후, 허망하고 나약한 호구 눈망울을 한 채로, 그 여자애를 피해 다녔다.
어느 날, 그런 내 모습을 본 그 여자애(A)가 속삭이듯 말했다.
“쟤, 우리 피해 다닌다?”
입에 악마 같은 웃음을 머금은 채였다.
타깃을 정해 이성을 꼬시고 돈까지 빼내는 꽃뱀 짓을, 필자는 초등학생 때 이미 겪은 것이다. 그 때문일까. 필자는 그 후 ‘악마 같은 이성’에 대한 면역 체계가 내면에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그 덕분에 이후 성인이 된 뒤로, ‘꽃뱀-호구’ 관계나 단순 연애관계에서 행해지는 갑을(甲乙)식 착취·가스라이팅에 당하는 입장이 되는 걸 본능적으로 피할 수 있었다.
물론 심정적으로 그럴 단계 직전까지 갔던 적이 20대 초반에도 한 번 더 있긴 했다. 그때에도 A와 비슷한 행위를 하는 20대 중반 여자(F)를 겪은 것이다. F는 돈을 갈취하진 않았지만, 타깃으로 정한 남성을 대놓고 꼬셔서 이리저리 마음을 가지고 논다는 측면에서 A와 유사했다. 미성년일 때 하다 말아야 하는 행동을 성인이 돼서도 유지하는 천박한 인간이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초등학생 때 경험이 ‘약’이 돼서인지 처음부터 강한 의심을 했고 그녀의 불순한 저의(底意)를 꿰뚫어 봤다. 그 때문에 큰 피해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20대 초반 경험까지 더해져, 이성적 호감을 끌어내어 상대를 갈취하는 악인을 구별해 내는 눈은 더 분명해졌다. (거기다 이젠 필자 외모가 ‘괴물’화 돼 버려서 웬만한 이성은 접근도 못하게 됐다)
이처럼, 못된 인간들이 꽤 많다. <신흥자경소>가 이전 기사(→불륜에 미친 대한민국...“간통 너무 쉽다”)를 통해 일부 소개했듯, 이성을 순수한 호의와 사랑으로 대하기보다, 호구로 보고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다. 꼭 금전적 이득을 갈취하려는 게 아니라도, 상대 이성을 ‘감정적인 창구’ 혹은 ‘자기를 위한 액세서리나 수단’ 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가령, 남자친구를 자기 인생사진 찍어주는 ‘찍사’쯤으로 이용하고, 그렇게 얻은 비키니 사진 등을 SNS에 올리면서 광범위한 어장을 형성해 언제든 조건이 더 좋은 다른 남자로 갈아탈 준비를 하는 여자들도 널린 시대다. 반대로 연애관계에서 여자를 등쳐먹는 남자도 많다. 당연히 ‘결혼’도 그런 착취·이용의 연장선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혼이 일상화돼 버린 건, 그러한 악인들이 늘어난 세태와도 일정 부분 연관됐다고 본다.
그럼, 그런 악인을 구별해 내는 눈은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 필자처럼 일찍이 당해보는 게 가장 좋긴 하다. 경험보다 피와 살이 되는 건 없다. 하지만, 굳이 당하지 않고도 체화할 수 있는 방법도 없진 않다.
인간 기본심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이득을 최우선으로 따진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20~30년 이상 각자 살다 만나 연애·결혼으로 발전하는 이성 관계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나보다 상대를 위하는 ‘진짜 사랑’ 같은 건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처음엔 상대를 경계해야 한다. 의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낯선 이를 의심하지 않는 건, 정글과 같은 잔혹한 세상에 자신을 먹잇감으로 내던지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결국 이성이든 동성이든, 타인을 믿을 게 아니라 ‘나’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속지 않기 위해선, 한 가지 더 기본 전제 심리가 필요하다. 바로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마인드다. 세상은 당신이 특별하다고 계속 부추긴다. 그래야 인간들이 뭔가 스스로 세상 주인공이 된 듯 행세하면서, 성공팔이 등 각종 장사꾼들 이득으로 이어지는 행동(과소비 등)을 할 확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본인을 특별하다고 여길수록, 아무리 주변에서 사기(詐欺) 사례를 들이밀어도 ‘그래도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특별하니, 부정적인 건 나를 피해 갈 거야’ 라고 믿고 싶은, 매우 유아적인 심리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존감을 갉아먹는 거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 마인드가 실상은 자존감이 더 낮은 것이라 지적하고 싶다. 거기다 그 심리는 사람을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한 결과로 내몰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경험이 적은 ‘애새끼’는 뭐든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돈다고 착각한다. 그러다 보면 사기(詐欺)를 당하기도 쉽다. 반대로, 각종 사회 함정과 상황에 빠져 피와 살이 되는 경험을 무수히 겪은 성인일수록, ‘나는 특별하다’ 따위 생각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세상을 겪고 현실 속에서의 내 위치를 이해하고 깨달을수록 ‘겸허한 인간형’이 돼 간다. 그러면 세상의 각종 함정을 피해 자기만의 견고한 성(城)을 이루기도 더 수월해진다.
사기꾼이나 꽃뱀이 누군가를 타깃으로 정한다는 건, 그 타깃이 순진해 보이는 호구 모습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각종 세상 밑바닥 경험을 하며 험한 삶을 지낸 사람은 오묘하게도 겉으로 볼 때부터 마냥 호구로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온실 속 화초’로 자란 사람은 그 삶의 여정대로 외면도 만만해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그게 곧 강탈자들 타깃이 되는 요인이 돼버린다.
이를 달리 말하면, 완전히 ‘악인으로 고정된’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누구나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천사가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다. 근육돼지에겐 세상 거의 모든 사람이 친절한데, 만만한 호구처럼 생긴 사람 주변엔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유독 득실대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상대적’이다. 누군가가 얼마나 악덕하냐를 논할 때, 그 인간 자체 성정도 분명 큰 참고 요소겠지만, 상황이나 상대방에 따른 변수도 크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결국 본질적으로 ‘경험’ 없이, ‘강해짐’ 없이 호구가 되지 않기는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상 경험을 적극적으로 해 나가면서 나를 강인하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성관계도 마찬가지다. 결혼 상대자가 바람을 피우고 오히려 대놓고 뻔뻔하게 ‘나’를 조롱한다는 건, ‘나’를 완전히 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대놓고 내 존엄성과 권리를 해하고 침탈하는 인간에겐 매우 강도 높은 대처를 해야 한다. 애초에 내가 호구임을 눈치챘으면 결혼까지 가지도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법적관계로 묶였다면, 그때라도 강인하게 대처해야 한다. 법이든, 물리적·심정적이든 뭐든 ‘악인 기질이 강한 부류’는 상대방이 약하게 나올수록 더 뻔뻔해지고 드세게 나온다.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그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런 하나하나의 위기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정면 대응해야 한다. 본인이 호구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도 언제라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는 ‘보편적 인간’ 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휘두르려는 상황이 닥칠 때마다 이에 맞서 강인하게 헤쳐 나가는 것 역시 ‘가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보편적 과정’이란 걸 인지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겪은 이후에야, 내 주변에 해로운 부류가 생겨나지 않도록 통제하는 내공도 쌓을 수 있다.
<신흥자경소>
문의 및 제보 연락처 : master@shinhjks.com
[Copyright ⓒ 신흥자경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해당 글의 원문을 보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로 가셔서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세요!
--> 원문보기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의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브런치에는 없는, 더 많은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 대문 : https://shinhjk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