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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 개체’는 고난의 길을 받아들여야 한다

[신흥멘탈(申興Mental)]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5월 3일(오후 4시 14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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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자경소] 어느 종이든 ‘독립적인 개체’가 있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누군가에 지시받지 않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부류다. 그들은 소위 ‘개썅마이웨이’라거나 ‘독고다이’ 등 과격한 표현으로도 불린다. 비자발적 외톨이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혼자 움직이는 개체다. 호랑이가 홀로 산속을 거닐 듯, 그들도 혼자 움직이며 타인 도움을 거절한다. 당연히, 그들은 고독하다. 외로움은 비교적 덜 탈지라도, 내면 깊이 찾아오는 고독함은 피할 수 없다.


대개 사람은 사회성의 동물이다. 집단 속에서 부대끼며 서로 위안받으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따뜻한 말과 감정적 교류를 얻고자 한다. 사람과의 교류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쌓아가며 ‘나’란 사람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깨닫는다. 대부분은 홀로 지내는 걸 싫어한다. 그렇기에 조직에서 이탈하는 것을 ‘도태’로 받아들이기도 쉽다. 조직과 집단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그 무리에게 잘 보이려 한다. 특히 직장에선 권력자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아양을 떨거나 순종적이거나, 혹은 똥꼬가 헐도록 입발림으로 핥아대거나. 그렇게 조직에 잘 붙어있기 위해, 집단 실세와 발맞추기 위해, 분위기를 파악하고 눈치를 살핀다.


그렇게 하면, 조직에서 안정적으로 밥 벌어먹고 살 확률이 올라간다. 이는 밥벌이인 직장생활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든, 사회와 완전히 따로 떨어져 살 수는 없다. 모두 사회 각 요소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살게 된다. 아무리 독고다이가 체질적으로 잘 맞고 그 기조로 인생을 살아가도록 설계된 인간이라 해도, 세상 시스템과 아예 무관할 수는 없다. 가령, 누군가 사업체를 차렸다면 이미 그 업종 내 플레이어들끼리 모여 형성된 생태계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중엔 비즈니스에 유리한 위치를 획득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을 수 있다. 업종이 오래됐을수록 그 기성 시스템에 입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은 대개 까다로운 편이다. 면접관처럼 구는 평가자들이 요구하는 기준을 따라야 한다. 물론 그 요구를 맞추면 기존 사업체들처럼 그 업종 비즈니스에 맞는 교과서 같은 정갈함이 장착될 확률이 높다. 그러면 그에 따라 기성시스템을 빌어 비즈니스를 하기도 수월해질 것이다.


반대로 그 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기존 시스템에 입성하기 어렵다. 그럼 당연히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도 포기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그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 그들 요구대로 맞춰야 하기에 튀는 색채는 잘라내야 한다. 개성은 사라지고 기성복에 맞춘 또 하나의 복제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개성을 버릴지언정 기성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도태된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그 영역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더욱더 가이드라인을 신봉하고 철저히 따른다. 그럴수록 기성 권력은 자기 바운더리에 속한 자들을 자기들 입맛대로 주무르기도 쉬워진다.


그럼 대체 그 잣대는 누가 만들었는가. 그 기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답은 관련 조직 최상위 지배자다. 대놓고 자기 정체를 드러냈든, 흑막 속에 숨어있든, 어느 무리든 실세는 있는 법이다. 그들 입맛대로 꾸려진 기준이다. 월급쟁이 세계인 ‘직장’에서 최대주주나 회장·대표들이 직원들을 자기 기준에 맞게 통제하고 주무르는 것처럼, 세상 모든 기성 권력도 자기들 기준대로 수하를 조종하려 한다. 기존 공교육도 그런 노예 길들이기에 최적화됐다. 사회에서 ‘학벌’을 따지는 가장 큰 이유도, 실상 고학벌자가 반드시 뛰어나서라기 보단, 그들이 말을 잘 듣는 ‘성실성’을 지녔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고교 시절,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고 충성하고 규율을 잘 따를수록 그에 따라 얻어지는 보상은, 그런 식으로 분명히 존재한다.


독립적 개체는, 그래서 늘 인생에서 손해를 본다. 자기 주관이 분명할수록, 자기 색채나 정체성이 확실할수록 집단과 기성권력을 따르는 데서 오는 이득과는 멀어지게 된다. 자기를 따르라고 은근히 핍박하고 강요하는 기성권력은 늘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럴 때는 저래야 하고, 저럴 때는 이래야 한다는 식이다. 그렇게 움직여서 충성할 때 가끔씩 아주 작은 보상이라도 주어진다. 내 의지와 주관을 버리고 오로지 시스템에 맞출수록 주변에선 칭찬하기 시작한다. “잘했어”,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하지만, 그만큼 시스템만 따르면 굴종(屈從)에 익숙해지기도 쉽다. 그러면, 주체성과 자의식도 박살 나게 된다. ‘나’는 사라지고, ‘그들’만 존재한다. 그들 속에 섞여버린 부품이 돼버린다. 부품이 된 주체는, 갈수록 부당한 압력과 지시에도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 권력을 따르는 열매가 달콤할수록 ‘자아’는 사라진다. 각 개인의 색깔과 고유한 성격은 점차 그가 속한 세계·그룹·조직에 맞게 재단된다. 자기 색깔 하나 없는, 유행 따라 흘러가는 기성품 같은 꼴이다.


그럼, 독고다이 인생은 어떨까. 기성 시스템을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하기만 할까. 슬프게도, 경지에 도달하기 전까진 오히려 괴로운 일의 연속일 수 있다. 주변 권력자나 그에 동조하는 발발이들 모두가 ‘독고다이 개체’를 교화시켜야 할 ‘도태종’이나 ‘적’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독고다이 개체에게는 주변 인간 하나하나가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주변 모든 이들이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나 보자”라는 식으로 눈초리를 흘기는 꼴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도 왜 그런 험난한 독고다이 인생을 자처하느냐. 세상엔 ‘팔자’라는 게 있다. 누군가는 집단 속에 섞여 살 때 가장 행복하다. 대개 타인이 도움이 되는 팔자들이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집단 속에 들어가면 온갖 괴로움과 고통이 동반한다. 타인이 방해가 되는 팔자다. 대부분 그 성질들이 극단적으로 치우치기보단 부분적으로 섞여 있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일정 개체는 반드시 그런 독고다이로 살 수밖에 없는 팔자라는 거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대부분 일을 자기 혼자 처리해야 한다. 혼자서 그 모든 걸 극복하고 물리쳐야 했기에 멘탈과 육체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타인은 도움이 되지 못하고 방해만 되는 삶을 살다 보니, 자기 식대로 처리하고 추진하고 나아가는 스타일이 자기 정체성처럼 돼버렸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자수성가’ 팔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외골수, 자기주장이 강한 인간. 크게 성공하거나 완전히 말아먹는 부류. 만일 그 부류가 밑바닥에서 자기 힘만으로 위로 올라가는 경우엔 자기 확신에 가득 차 남 말은 더더욱 듣지 않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설사 실패한다 해도 그들은 잡초처럼 다시 일어설 힘이 있다. 실패에 위축되지 않고 조직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를 지탱한다. 그들은 육체가 연약한 어릴 때부터 마냥 강하진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자기 깜냥·팔자를 깨달아 가면서 계속 험난한 길을 자처했을 것이고, 또 그 과정을 헤쳐 나가면서 그렇게 강력해졌을 것이다.


그들은 그 길을 벗어날 수 없다. 남들처럼 해봐야 마음속 병만 더 커지는 걸 삶을 통해 이미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분명 그 길은 고독하고 어려운 길이다. 자수성가 팔자라 해도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그 팔자는 그 길을 피해선 안 된다.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풀린다. 그 팔자가 아닌 사람들이 보기엔, 헛짓거리를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독고다이·자수성가 팔자들은 분명 자기들 방식대로 투철하게 싸우고 있을 뿐이다. 무리를 짓는 타인들의 기준과 정답은 애초에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정진할 뿐이다. 자신의 의지와 정답, 기준으로 밀고 나갈 뿐이다.


독고다이들에게는 오히려 작금의 국가적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 시대, 대한민국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시대, 서민 각자가 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각자도생’ 시대. 무리를 지으며 유대를 형성하던 사람들은 당황해하겠지만, 독고다이에겐 이미 익숙한 세상이다.


미래 AI시대도 하나의 희망이다. 향후 AI시대가 자리 잡고 많은 일자리가 대체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해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주체성이 명확하고 ‘나’에 대한 공부가 된 사람 혹은 자기 브랜드가 확고한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확고한 개성과 색깔이 그 자를 AI 시대에서도 살아남게 한다는 것이다. 그 전망대로라면 ‘나’를 연구해 이를 자기만의 사업체로 현실화한 독고다이들이 큰 이득을 볼 시대도 멀지 않았다. 또 아무리 독고다이라 해도 홀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일을 벌이다 보면, 이에 동조하는 동료를 찾으며 ‘리더’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땐 ‘철학’을 가진 ‘우두머리’로서 ‘멤버’를 지닌 ‘사업체’를 운영하며 그 시대를 보내는 것이다.


자수성가 팔자들은 고난의 길을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은 또라이가 아니다. 사회에 필요한 하나의 성질을 가진 인간일 뿐이다. 애초에 다르게 살 수도 없지 않은가. 초년 굴곡과 고통은 성장의 발판일 뿐이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앞으로 뚫고 나가자. 오로지 자기 힘으로 쟁취한 영역을 굽어보는 범처럼, 그렇게 용맹하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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