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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신흥멘탈(申興Mental)]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4월 14일(오전 3시37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나 패배에 집착한다. ‘무엇을 한다’는 사실보다, 그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이뤄냈는지를 따지고 캐묻는다. 성공과 실패, 혹은 1등이냐 2등이냐를 중요하게 여긴다.


만일 누군가의 자신감이 객관적 업적·성과로 증명되지 않은 경우에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허세라며 조롱당한다. 반면에 다른 누군가가 ‘대회 입상 경력’이나 ‘우승 타이틀’과 같이 확실히 내세울 만한 걸 드러낸다면 주변에서도 대우가 달라진다.


우리는 그러한 ‘승자’들을 매일 마주한다. TV나 유튜브, 혹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흔히 말해 ‘잘 나가는’ 스타들과 인플루언서들의 일상이 늘 대중에 공개된다. 그들은 각종 영역에서 저마다 특기를 살려 ‘1등’, ‘금메달’, ‘대상’, ‘우승’ 등 타이틀을 목에 걸고 위풍당당하게 마음껏 자기를 드러낸다. 증명 못한 대다수 ‘우리’들은 그들로 대리만족을 느낀다. 혹은 짐짓 자괴감을 느끼며 애써 못 본 척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우승’, ‘금메달’ 홍수에 젖다 보면, 우리는 그 ‘1등’ 잣대만으로 모든 이들을 바라보게 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한다. 소수 성공 사례에 자기도 모르게 눈이 높아진 것이다. 1등 아니면 의미 없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무언가를 하다가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 좌절감에 빠지기도 쉽다. 그런 함정에 빠지면 마음속엔 ‘두려움’과 ‘나약함’이 생겨버린다. 이후엔 어떤 일도 쉽사리 시도조차 못하게 된다.


하지만, 깨달아야 한다. 어떤 분야든, 꼭 ‘1등’이나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면 그저 ‘도전’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는 ‘금메달’, ‘우승’ 같은 게 아니라 단순히 어떤 분야에 입성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큰 도전일 수 있다. 그 분야에 맞지 않게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지닌 채 태어났을 수 있고,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해야 하기에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있을 수도 있다. 오히려 ‘대회 우승’과는 관련 없는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일수록 ‘관련 분야에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큰 도약을 한 것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태생적 나약함·나태함을 이겨내고 미지 세계로 들어가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렇다. ‘싸우고 있다’, ‘실행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그는 이미 자신의 우주를 항해하는 ‘주인’ 자격이 있다. 물론 우리가 재벌이 아닌 이상,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명확하다. 그렇기에 내 모든 가능성을 세상에서 구현하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머뭇거리는 이유가 과연 그뿐일까. 소수 성공 사례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그저 하는 것’, ‘그 반경에 머물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 얘기는 단순히 ‘취미’나 ‘사소한 시도’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청년들이 현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인 ‘출산 포기’·‘탈조선’·‘탕핑(躺平)’ 등과도 연관 지을 수 있다.


우선, 출산 문제는 다소 ‘논외(論外)’로, 지극히 현실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 한국 청년들은 국내 극심한 저출산·고령화 인구구조 하에서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엄청 큰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 젊은 층에선 아예 출산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그러면 사회는 더더욱 저출산 기조가 심해지고 향후엔 사회적 부작용이 더 빠르고 심각하게 다가올 것이다. 각 개인으로선 합리적인 판단에 따른 행동이 사회적으론 더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현시대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개인의 선택은 존중할만하다고 본다. 작금의 시대가, 현 대한민국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대(代)를 잇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이 증가하고 자연적으로 불임·난임 현상이 늘어난 시대, 출산율 0명대로 진입해서 급기야 전문가들이 ‘자연 소멸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나라. 그런 나라와 시대에서 각 개인의 선택이 항상 자발적일 수는 없다. 어쩌면 작금의 저출산 패러다임은 무능하고 어지러운 나라가 개인에게서 출산을 배제시키는 슬픈 시대상일 수 있다.


출산 포기 외에 현 국가적 자멸 흐름 속에서 청년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탈조선·탕핑(躺平) 등 몇 가지로 추려진다. 일단 탈조선은 말 그대로 한국을 뜬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사교육계 최고 권위자였던 한 그룹 회장은 몇 해 전부터 학벌주의 시대는 끝났고 이민이 답이란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실제 청년 일각에선 한국을 뜨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고려하거나 실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탕핑은 중국 내 신조어로, 그냥 ‘드러눕는 것’을 뜻한다.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소 생활비만 벌어 저비용으로 사는 것이다. 이는 청년 일각에서 대한민국 내 기득권 세력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취업 등 관련 통계 자료를 통해 “그냥 쉬었다”라고 답하는 대한민국 청년이 최근 늘어났음이 밝혀지고 있다.


탈조선은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탕핑은 너무 안타까운 선택이다. 탈조선이 내 인생을 걸고 새로운 땅으로 가서 다시 치열하게 앞으로 나아갈 채비를 한다는 의미라면, 그것도 일종의 ‘싸움’이긴 마찬가지다. 반면 탕핑은 그 ‘드러눕는다’는 의미가 인생 자체를 포기한 것에 가깝다면, 바람직하진 않다. 차라리 탈조선이 낫다.


탕핑이 만일 그 의미가 기존 대한민국 구조나 사회인식을 벗어나 주체성과 자유의지를 갖자는 것으로 확장됐다면 문제가 없다. 이를테면 20대 초반엔 명문대를 나와야 하고 20대 후반쯤엔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가야 한다는 등 각 나이대별로 정답처럼 정해진 코스를 강요하는 한국식 눈치문화 및 서열구조 같은 것을 거부하는 건, 지금 시대에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다. 한국 특유의 주변 눈치나 강압적 회유를 따르지 않겠다는 건 오히려 청년다운 패기이며 진취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마인드에서 창의력 넘치는 천재도 탄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아예 모든 일을 내던지고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소극적 저항으로 일관하겠다는 게 탕핑의 전부라면, 바람직한 대처는 아니다. 그건 국가나 개인에게 그 어떠한 이득도 없다.


아무리 사회가 문제가 많고 모순으로 가득 찼다고 해도 살아있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싸워야 한다. 내 인생을 개척하는 싸움을 펼쳐야 한다. 1등이니 금메달이니 하는 한국식 서열 구조를 벗어나, 그저 ‘싸우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세계무대 결승전이 아니어도 된다. 사람들이 관심도 없는 아주 작은 동네 체육관 링에서라도 싸우고 있다면, 그 자는 삶의 작은 여정에서 스스로를 불태우며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이다. 내게 주어진 우주를, 자기 기질·성격·체질 등에 맞게 구현해내야 한다. 그게 ‘직장’이든, ‘취미’든, 내 체질·기질에 맞게 ‘나’를 깨닫고 ‘시대’를 인지하고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실천해야 한다. 그게 곧 ‘싸우는 것’이다.


대(代)를 잇지는 못해도, 누구나 ‘내 모든 것을 불태우다 가는 것’쯤은 할 수 있다. 설사 내 유전자는 내 대(代)에서 끝나도 내 영혼과 몸뚱이는 현실 속에서 다 구현해 보고 가겠다는 의지 말이다. 이를 위해 각자는 ‘싸움의 과정’을 고심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 살다 갈 것인가. 무얼 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나. 그 과정 자체도 싸움이다. 적어도 인생의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 한다. 아주 깔끔하고 분명하게 내 정체성과 가치를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1등’이니 ‘금메달’이니 하는 번쩍번쩍한 명패는 사실 필요 없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어차피 우리는 곧 멸(滅)한다. 한번 살다가는 인생, 뭐든 좋다. 내게 맞는 길을, 내게 주어진 길을, 내 방식대로 기질대로 한번 사는 것이다. 그 여정에서 소수만 누렸던 ‘금메달’, ‘1등’, ‘우승’과 같은 것에 지레 위축되지 말고 그저 해봐야 한다. 격투기가 해보고 싶었다면 지금 당장 집 앞 체육관이라도 가서 샌드백이라도 뚜드려봐야 한다. 웹툰을 그려보고 싶었다면 누구나 작품을 등재할 수 있는 ‘네이버웹툰 도전만화’같은 공간에라도 작품을 내봐야 한다.


시작도 전에 1등이나 우승을 해야 할 것처럼 몰아붙이는 대한민국 특유의 성과주의 관념을 버리자. 하고 싶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을 그저 해보자. 그러다 정말 재밌고 내게 잘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다. 그땐 1등이나 상위권이 아니어도 된다. 심지어 꼴찌여도 상관없다. 그 일로 돈을 못 번다면 다른 벌이와 병행하면 된다. 그저 그 방면에서 무언가를 하거나 머물고 있다면 그 자체로 꿈을 이룬 것이다. 최대한 즐거움을 만끽하면 된다. 혹시 예상과 달리 전혀 즐겁지 않고 나와 너무 맞지 않다면, 즉시 멈추고 다른 도전으로 넘어가면 된다. 내 길을 찾을 때까지 두드리면 된다. 그러다 길을 발견하면 정착하면 된다. 그뿐이다. ‘그저 하는 것’, ‘내 일을 찾는 것’, ‘그 방면에 머무는 것’을 해낸 것만으로 이미 그 자는 나태함·비겁함을 이겨내고 한국사회 ‘1등 주의 매트릭스’를 벗어난 ‘전사(戰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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