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려운 시절을 견디게 해 준 ‘개그 유튜버’를 추모하며

[신흥사설(申興社說)]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12월 13일(오후 7시 49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얼마 전, 필자가 좋아하던 한 ‘개그 유튜버’가 사망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즈음, 필자는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그 유튜버의 영상은 필자에게 매우 큰 위안이 됐었다. 과장된 몸짓과 익살스러운 표정,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멘탈의 그를 보며 필자는 세상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내게는 그가 유튜브 앱을 켜면 늘 만날 수 있는 ‘우주에서 가장 재밌는 개그맨’이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사망하다니. 당연히 주변 지인들은 황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를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필자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울렁거리듯 솟구쳤다. 그건 필자뿐만이 아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통해 “마치 동네 친한 형이 갑자기 떠난 것 같은 감정에 휩싸였다”는 팬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유족과 친한 지인들은 사인(死因)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얘기가 암암리에 퍼졌다. 과거 유튜브 영상 속에서 그가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말들도 재조명됐다. 결국 그가 죽고 난 뒤 얼마 뒤 지인 개그맨이 자기 방송에서 사인이 ‘극단적 선택’이라고 암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러자 그간 억측을 내놓던 많은 팬들도 더는 그의 사망 사인을 두고 설왕설래하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    

 

그래도 마음속이 쓰라리긴 마찬가지였다. 마치 사랑하는 지인이 사망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왜 이리 마음이 아플까. 세심히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그의 사망 소식은 마치 필자의 과거 ‘어려운 시기’를 견디게 해 준 은인(恩人)을 떠나보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짐짓 추측해 본 ‘사망 당시 그의 모습’이 마치 필자가 간신히 견뎌냈던 그 ‘어려운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의 영상을 보며 위안을 얻던 지난 2020~2023년,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쳤던 그 시기에, 필자 인생에도 자연재해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정신건강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육체 운동을 하고 정신수양을 하며 간신히 삶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난생처음 사주도 공부했었다. 나름 건방졌던 한 인간이 사주팔자까지 공부했다는 건 그만큼 그 시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방증이다. 그때 알게 된 사주원리의 한 조각을 조금 과장해서 털어놓자면, 필자 팔자(八字)에서 당시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였다. 그건 실제 삶의 모습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풀이였다. 과거부터 이어온 우울증이 직장을 다니면서 공황장애로 이어졌고 퇴사 후 이를 이겨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극심한 생활고를 함께 겪었다. 일용직, 배달 등으로 간신히 버텨내던 시기였다. 

    

알고 지내던 주변인들 사이에선 갑자기 직장을 관두고 잠적을 한 필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여러 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중엔 필자가 ‘불법을 한다’는 등 황당한 소문도 있었다. 이 외 대부분의 지인들은 직장을 잘 다니던 필자 모습만 기억한 채로 ‘퇴사 후 잠적’ 결정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었다.    

 

그들 눈엔 필자가 직장을 다닐 때 매우 온전한 상황이라고 본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마치 필자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아픔과 고통을 주변에 잘 털어놓지 않는 성격 때문일 것이다. 꿋꿋이 버티는 사람은, 주변인들이 보기에 “할 만하니까 한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당시 직장을 다니던 필자의 정신건강은 꽤나 심각하게 악화된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공황장애 중증’이었다. 처음 방문한 정신과(병원)에서도 엄청 힘들 거라고 얘기했었다. “버틴 게 용하다”는 설명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안 되는 걸’ 억지로 참아가며 극도의 정신력으로 버텨냈던 셈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다 보니 이를 보상해 줄 만한 강한 자극이 필요했고, 그래서 유흥에 빠졌던 기간도 있다. 이를 외부에서 보면, 마치 직업 생활에 만족한 채로 돈도 나름 잘 벌고 돈지랄(소비)을 해가며 인생을 즐기는 ‘잘 나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을 법하다. 실상은 고자극과 스트레스가 번갈아 오가며 공황장애가 더 심해지는 극도로 위험한 상태였는데 말이다.     


그 상황에서 필자는 결단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직장을 관뒀다. 그리곤 그 업계에서 멀리 벗어난 채로 건강 회복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사람은 자기 상황에 따른 고통보다, 주변 시선 때문에 더 힘들 수 있다는 걸. 필자가 직장을 관두고 난 뒤, 주변 지인들이 보여준 모습은 필자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환멸감’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필자가 잘 나가다가 직장에서 꼬꾸라져 실의에 빠진 것으로 이해해 겉으로라도 위로해 주려는 자들과, 자신은 비교적 안온한 상황에 있으니 짐짓 상대적 우월감을 취하려는 자들까지... 여러 인간 군상을 체험했다. 어떤 이는 이때다 싶어 그간 하지 못했던 공격적인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다행히도 필자는 어릴 때 이미 그와 비슷한 일들을 겪었다. 그래서 그러한 인간 본연의 추악한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고통의 시간을 거친 지도 이미 오래였다. 따라서 30대 이후 겪은 추락의 경험에서 큰 상처를 받진 않았다. 그러한 주변 인간들의 반응이 매우 보편적인 인간 심리를 나타내는 것일 뿐임을, 매우 당연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30대 이후 겪은 이 일들로 더 명확히 깨닫게 된 사실도 하나 있다.  

   

타인은 내 고통을 결코 알지 못한다.  

   

물론 타인은 내 고통이 자기 일이 아닌 만큼 당연히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건 필자뿐 아니라 누구나 알 수 있을 법한 얘기다. 심지어 고통을 겪는 당사자가 외부적으로 매우 강인해 보이는 멘탈과 육체의 소유자라면 주변은 그의 아픔을 더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실상 이를 뼈저리게 체감한 자는 처절한 인생의 아픔을 경험한 자들이다. 사망한 개그 유튜버 역시 주변인이나 팬 그 누구도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듯싶다. 아무리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도, 짓궂은 장난에도 늘 웃어넘기던 털털함과 강인해 보이는 젊은 육체는, 그가 언제든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이겨낼 것만 같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 내면에 있는 상처와 병과 고통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말이다.     


남성은 더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사회화되는 남성의 속성상, 커가면서 어떻게든 스스로 이겨내고 버티는 데에 익숙한 성별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면 추후 더 강력한 성인이 되겠지만, 시기가 좋지 않다면 침잠한 채로 간신히 삶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많은 팬들이 그 개그 유튜버에 감정이입을 한 것도 그래서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에 올라오는 각종 추모 글에서 필자처럼 그의 개그로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는 팬들의 증언이 참 많았다. 하지만, 침잠하던 많은 이들에게 웃음으로 삶의 희망을 준 대단한 그조차 단지 섬세하고 따뜻한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만큼 ‘때가 잔뜩 탄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아픔을 더 고통스럽게 느꼈으리라. 그렇게 그는 팬들보다 먼저 가 버렸다. 그에게 위안을 받던 우리들은 비록 지금은 슬프고 황망하겠지만, 그의 유산이 어쩌면 <그의 개그를 통해 어려운 시기를 넘긴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마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故人)의 명복을 빕니다.    

    

<신흥자경소> 

         

문의 및 제보 연락처 : master@shinhjks.com

[Copyright ⓒ 신흥자경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글의 전문(원문)을 보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를 눌러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