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객관이라는 단어를 호출할 자격

합의되지 않은 진실이 조직을 잠식하는 방식

by Insight Shin

합의되지 않은 진실이 조직을 잠식하는 방식


조직 안에서는 진실보다 먼저 해석이 유통되고, 해석보다 먼저 판단기준선이 형성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A와 B 사이에 문제가 있다. 그 문제가 조직 안에서 판정 가능한 종류의 사건이 아니어서 B는 공론화하지 않았다. 서로의 해석과 판단이 어긋나 있고, 엄정한 제3자의 개입과 절차가 필요한 영역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합의되지 않은 사안을 조직 안으로 끌고 들어와 공개적으로 진실을 규명할 문제도 아닐뿐더러, 부정적인 갈등 장면으로 소비되는 것도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 보면 이는 절제이고, 조직을 불필요한 소모로부터 지키려는 선택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비대칭이 발생한다. B가 말을 아끼는 동안 A는 자신의 입장을 선제적으로 유통한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해석을 배경설명처럼 깔아 두고, 자신의 진술을 사실에 가까운 인상으로 먼저 배치한다. 그러면 조직 안에서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이미 의미질서가 정리된다. 누가 까다로운 사람인지, 누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인지, 누가 피곤한 사람인지에 대한 인상이 먼저 자리 잡는다. 중요한 것은 사실의 여부가 아니다. 핵심은 누가 먼저 해석권력을 점유했는가에 있다. 먼저 판단기준선을 세팅한 사람이 유리해지는 구조다. 그 결과 B는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나서면 갈등의 당사자로 보이고, 나서지 않으면 침묵이 동의나 인정처럼 해석된다.


판단기준선을 세팅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반복하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에 관한 가중치 체계를 먼저 구성하는 것이다. 반복 노출이 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고전적 연구와, 반복된 진술이 더 참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연구는 인간의 판단이 정보의 진위만으로 형성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떤 설명을 반복해서 듣는다는 것은 단지 내용을 많이 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설명이 더 익숙하고 더 자연스럽고 더 그럴듯하게 느껴질 조건이 축적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당사자는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느끼면서도, 실제로는 이미 특정한 프레임 안에서 증거의 비중을 다르게 배분하게 된다. 해석권력은 여기서 작동한다. 사실을 직접 조작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핵심으로 보고 무엇을 주변부로 밀어낼지에 대한 기준을 선점함으로써 판단의 구조 자체를 움직이는 것이다(Zajonc, 1968; Hasher et al., 1977).


문제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영향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Ross와 Ward(1996)가 말한 순진실재론은 사람들이 자신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고, 다른 사람이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면 그것은 상대의 편향이나 정보 부족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을 설명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석의 비대칭은 더 강화된다. 이미 반복 접촉을 통해 하나의 해석이 기준선이 된 뒤에도, 그 해석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이 영향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을 보고 있다고, 관계가 아니라 현실을 보고 있다고 확신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객관성의 자기상과 실제 객관성은 다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제공된 설명, 비공식적 배경지식, 친숙한 말투와 신뢰의 분위기는 판단의 출발점을 이미 조용히 바꾼다. 이때 해석의 문제는 개인의 의견 차이를 넘어선다. 어떤 의미질서가 정상적인 것으로 먼저 승인되는가의 문제이며, 곧 조직 내부의 해석규범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의 문제다.


이 구조를 무시한채 조직이 특정 현상을 단지 갈등으로 부르는 순간, 핵심은 사라진다. 갈등이라는 이름은 중립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해석의 비대칭과 절차의 부재를 개인 간 충돌이라는 표면 아래로 숨긴다. 그러면 왜 합의되지 않은 해석이 검증 없이 유통되었는지, 왜 특정한 인상이 먼저 평판을 점유했는지, 왜 말을 아낀 사람의 절제가 오히려 불리한 조건으로 전환되었는지와 같은 질문은 지워진다. 남는 것은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이미지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조직의 공정성은 흔들린다. 절차적 공정성 연구가 보여주듯, 사람들은 결과만이 아니라 판단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절차를 통해 권위와 조직의 정당성을 평가한다. 따라서 누가 맞는가를 성급히 판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합의되지 않은 해석이 검증 없이 평판과 기회의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막는 데 있다. 갈등을 잘 중재하는 조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검증되지 않은 해석이 먼저 사람의 위치를 점유하지 못하게 하는 조직이다(Tyler, 1988).


또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침묵의 의미다. B와 같은 사람은 구체적인 내용을 조직에 유통하지 않는다. 문제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사적 다툼을 조직 전체의 소문 구조로 확장시키지 않으려는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은 이 절제의 의미를 자동으로 읽어주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은 것은 없는 것처럼 취급되거나, 별일 아닌 것으로 축소되거나, 심지어 애매한 태도로 오독되기 쉽다. 의미가 표기되지 않은 침묵은 결국 타인의 해석에 점유되기 쉽다. 그 결과 더 자주 말하는 사람, 더 먼저 설명하는 사람, 더 익숙한 사람이 해석의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조직행동 연구가 직장 내 가십(workplace gossip)의 효과를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공식적 해석의 유통은 단순한 뒷말이 아니라, 배제감과 조직기반 자존감의 손상, 신뢰 저하와 연결되는 조직적 변수이기 때문이다(Sun et al., 2023; Song & Guo, 2022).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라는 기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실이 늦게 확인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전에 이미 편견은 축적되고, 평판은 손상되며, 사람의 위치는 재배치된다. 사람들은 완결된 사실관계보다 먼저 접한 설명, 더 자주 들은 이야기, 더 익숙한 해석을 바탕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렇게 형성된 초기 이미지는 이후 들어오는 정보의 해석 방향까지 규정한다. 해석의 선점은 곧 평판의 선점으로 이어지고, 그 평판은 다시 이후의 모든 행동을 읽는 렌즈가 된다. B에게 요구되는 성숙함은 사실상 자기 방어의 권리를 유예하라는 요구가 되기 쉽다. 이때 개인의 억울함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해석이 먼저 유통되고, 그 해석이 평판의 기준선이 되도록 허용하는 조직의 조건에 있다. 바로 그 조건이 해석권력의 비대칭이고, 그 비대칭을 교정하지 못하는 상태가 절차적 공정성의 붕괴다.


결국 이 글이 보려는 것은 어떤 해석이 더 자주 반복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객관성의 외양을 띠게 되는 과정, 절제가 늘 절제로 읽히지 않고 공백으로 번역되는 이유, 그리고 합의되지 않은 진실이 조직 안에서 하나의 사실처럼 작동하게 되는 방식을 밝히는 데 있다. 이것은 개인적 서운함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사회적 신뢰 인프라가 어떤 방식으로 잠식되는가의 문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의 경쟁이 아니라, 해석이 유통되는 조건과 절차를 더 엄격하게 묻는 성숙한 감각이다. 그래야 조직은 갈등의 장면이 아니라 갈등을 가능하게 한 구조를 보게 되고 비로소 객관이라는 단어를 호출할 자격을 갖게 된다.


참고문헌

Hasher, L., Goldstein, D., & Toppino, T. (1977). Frequency and the conference of referential validity. Journal of Verbal Learning and Verbal Behavior, 16(1), 107–112. https://doi.org/10.1016/S0022-5371(77)80012-1

Ross, L., & Ward, A. (1996). Naive realism in everyday life: Implications for social conflict and misunderstanding. In E. S. Reed, E. Turiel, & T. Brown (Eds.), Values and knowledge (pp. 103–135). Lawrence Erlbaum Associates.

Song, X., & Guo, S. (2022). The impact of negative workplace gossip on employees' organizational self-esteem in a differential atmosphere. Frontiers in Psychology, 13, 854520. https://doi.org/10.3389/fpsyg.2022.854520

Sun, T., Schilpzand, P., & Liu, Y. (2023). Workplace gossip: An integrative review of its antecedents, functions, and consequences.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44(2), 311–334. https://doi.org/10.1002/job.2653

Tyler, T. R. (1988). What is procedural justice? Criteria used by citizens to assess the fairness of legal procedures. Law & Society Review, 22(1), 103–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