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을 훈련하는 공간
대학과 대학원이 다르다는 말은 단지 공부의 양이 다르고 난이도가 다르다는 뜻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본질적인 차이는 그 공간이 사람을 어떤 단계의 존재로 위치짓고, 그 위치에 따라 어떤 기대와 어떤 언행, 어떤 기회와 어떤 책임을 배치하는가에 있다. 베르거와 루크만의 표현을 빌리면, 대학과 대학원은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인 동시에 사람을 특정한 역할과 기대 속에 제도화하는 현실 구성의 장이다(Berger & Luckmann, 1966). 대학이 대체로 축적된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공간이라면, 대학원은 연구자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구성원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 또한 같을 수가 없다. 같은 학생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는 차이가 분명히 있고, 그 차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할 때 공동체는 사람을 길러내기보다 소모하게 된다.
석사 때 여러 은사님께 들었던 말, 논문은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쓰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는 말, 쓰고 싶은 것은 박사 때 하라는 말은 그래서 단지 현실적 조언이나 체념의 언어로만 들을 일이 아니다. 그 말은 연구자의 형성과정에서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를 분명히 구획하는 말이다. 석사는 대개 연구의 형식과 문법, 선행연구를 읽고 자기 문제를 학술적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 주장과 근거와 방법을 정렬하는 구조를 체화하는 단계에 가깝다. 반면 박사에서 무엇을 쓰느냐는 더 이상 단순한 훈련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문제를 어떤 개념어와 어떤 시선으로 붙들 사람인지를 자기 이름으로 고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박사 논문은 졸업 논문인 동시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는 라벨이 된다. 이후 사람들은 그 사람을 그 라벨을 통해 읽는다. 무엇을 보는 사람인지, 어디에서 사태를 절단하는지, 어떤 판단기준선 위에서 문제를 재구성하는지, 그 사람의 지적 포지셔닝은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베처와 트로울러가 말한 학문 부족과 영토(academic tribes and territories)라는 표현도 결국 학문 공동체가 사람을 단지 지식량이 아니라 특정한 규범, 언어, 위치 부여 방식으로 읽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Becher & Trowler, 2001).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는 구성원들 각자를 대하는 방식 역시 보다 섬세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섬세함은 감상적인 친절이나 두루뭉술한 배려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누가 아직 훈련의 단계에 있는 사람인지, 누가 이미 자기 문제의식을 세우고 독자적 기여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인지, 누가 더 많은 설명과 시행착오의 여지를 필요로 하는지, 누가 더 높은 자율성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기준선이 공동체 안에서 어느 정도 분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추상적인 인격체로만 대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가 점유한 위치를 읽고, 그 위치에 따라 말의 톤을 달리하고, 기대의 수위를 달리하고, 기회를 배치하고, 실수의 범위를 허용하게 되어 있다. 부르디외의 언어를 빌리면,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장(field) 안에서의 위치와 배치의 문제다(Bourdieu, 1990). 그러니 포지셔닝이 중요하다는 말은 단지 자리를 정해놓아야 한다는 행정적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어떤 존재로 해석하고 대우할 것인가에 관한 해석규범의 문제에 더 가깝다.
이때 포지셔닝에 따른 페르소나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페르소나는 가벼운 캐릭터나 가면이 아니다. 공동체가 그 사람을 어떤 단계의 사람으로 읽고, 그에 따라 어떤 언행을 적절한 것으로 간주할 것인가를 매개하는 사회적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고프먼이 말한 자기제시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언제나 주어진 무대 위에서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평판 관리의 형식을 수행한다(Goffman, 1959). 아직 배우는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설명과 기회와 실수의 여지가 주어져야 하고, 이미 자기 문제를 자기 이름으로 밀고 가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발화권과 크레딧, 자율성과 책임이 함께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차이가 흐려지면 언제나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아직 충분히 보호받고 훈련받아야 할 사람에게 완성된 성과와 책임을 먼저 요구하거나, 반대로 이미 연구자 수준의 기여를 하고 있는 사람을 계속 훈련생처럼만 다루며 기회를 늦추고 발화권을 제한하는 일이 그렇다. 관계가 어긋나는 이유를 단순히 누군가가 무례해서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을 읽는 기준선, 다시 말해 해석규범이 공동체 안에서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신뢰의 문제다. 사회적 신뢰라고 하면 흔히 호감, 분위기, 팀워크 같은 정서적 차원으로만 읽히기 쉽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이 공간에서 어떤 존재로 읽히는지, 나의 기여가 어떤 규칙에 따라 해석되는지, 내 위치와 책임과 기회가 자의적으로 전도되지 않는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신뢰는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규범의 안정성과 판단기준선의 일관성에 더 가깝다. 루만과 쉬톰프카의 논의를 빌리면, 신뢰는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복잡성을 감당할 수 있게 하고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기대의 구조다(Luhmann, 1979; Sztompka, 1999). 역할이 분명하고, 그 역할에 상응하는 기회 제공과 대우의 방식이 함께 정렬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이 공간이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낀다. 신뢰는 선의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해석의 규칙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을 때 비로소 축적된다.
사회에 나가면 이런 문제를 좀 더 건조한 언어로 R&R이라고 부른다. 역할과 책임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한 업무분장 정도로만 이해하면 결국 가장 중요한 층위를 놓치게 된다. R&R은 누가 어떤 일을 맡는가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가 어느 정도까지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누가 아직 더 많은 보호와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 누가 어떤 기회를 먼저 받아야 하는가, 누가 기여에 상응하는 인정과 권한을 받아야 하는가까지 함께 묶는 틀이다. 그래서 R&R은 효율의 언어인 동시에 인정의 언어이고, 권한 배치의 언어인 동시에 해석권력의 언어다. 머턴의 역할집합(role-set) 개념을 떠올리면, 하나의 위치는 언제나 복수의 기대와 관계, 상이한 책임망 속에서 읽힌다(Merton, 1968). 누군가를 어떤 위치의 사람으로 읽을 것인가가 그 안에 이미 들어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지우면서 기회는 주지 않고, 성과는 요구하면서 발화권은 제한하고, 기여는 요구하면서 인정은 미루는 조직이 왜 반복해서 사람을 소모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역할만 있고 역할에 상응하는 대우의 방식과 기회 제공의 구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도 다르지 않다. 석사와 박사를 구분한다는 것은 학위 단계의 서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형성과정에서 서로 다른 단계의 사람들에게 어떤 언어와 어떤 기회, 어떤 배려와 어떤 책임이 필요한지를 구분할 줄 안다는 뜻이어야 한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공동체는 과잉요구와 과소인정을 동시에 낳는다. 아직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빨리 완성된 성과를 강요하고, 이미 자기 몫의 기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계속 미완의 존재라는 이유로 기회를 늦추고 인정을 미루며 자존감을 깎는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연구와 성장에 힘을 쓰기보다, 내가 여기서 어떤 존재로 읽히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방어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결국 포지셔닝은 명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사람을 어떤 존재로 읽고, 그 읽기에 따라 어떤 언행과 기회와 책임을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다. 좋은 공동체는 누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하는지가 비교적 분명한 곳이다. 역할에 맞는 책임뿐 아니라 역할에 상응하는 기회와 배려, 인정과 권한의 방식이 함께 정렬되어 있는 곳이다. 그런 공간에서야 사람은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성장하며, 공동체도 사람을 소모하지 않고 축적할 수 있다. 반대로 이 기준선이 흐려진 공간에서는 언행도 함께 흐려진다. 사람들이 특별히 악의적이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서로를 읽고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해석규범이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역할은 단지 일의 분담이 아니라 관계의 질서를 만드는 장치이고, 그 질서는 사회적 신뢰를 떠받친다. 사람은 대우받는 방식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Becher, T., & Trowler, P. (2001). Academic tribes and territories: Intellectual enquiry and the cultures of disciplines (2nd ed.). Open University Press.
Berger, P. L., & Luckmann, T. (1966). The 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 A treatise in the sociology of knowledge. Anchor Books.
Bourdieu, P. (1990). The logic of practice. Stanford University Press.
Goffman, E. (1959).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Anchor Books.
Luhmann, N. (1979). Trust and power. Wiley.
Merton, R. K. (1968). Social theory and social structure. Free Press.
Sztompka, P. (1999). Trust: A sociological the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