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고 비웃던 말을 지금은 탁월한 한수라고 말한다

유엔 글로벌 AI허브 구상의 오래된 계보에 대하여

by Insight Shin

꿈이라고 비웃던 말을 지금은 탁월한 한수라고 말한다

: 유엔 글로벌 AI허브 구상의 오래된 계보에 대하여



유엔 글로벌 AI허브라는 말이 나온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은 내게 새롭지 않다. 너무 오래전부터 비슷한 문제의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는 그것을 제도 언어로 승인해 줄 사회적 인식의 두께가 없었다. 그래서 이 구상은 공적 검토의 대상이 되기 전에 먼저 꿈이 되었고, 망상이 되었고, 현실감각 없는 발상으로 밀려났다. 같은 방향의 말이 정책의 문장으로 돌아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세상은 늘 그렇게 뒤늦게 진면목을 알아본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 지금의 유엔 글로벌 AI허브 논의는 돌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오래된 흐름의 중심에는 고 김용복 총장과 사단법인 아시아태평양생명학연구원이 있었다. 지금 이 계보를 꺼내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 제기되는 문제의식을 돌발적인 우연의 결과이자 얕은 유행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 한신대 글로벌피스센터 등으로 흔적만 남아 있는 형식만 보고 당시의 구상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실제 과정은 훨씬 치열했고 복잡했다. 처음에는 DMZ에 세계평화도시를 세우고자 했고 국내는 물론 스위스 제네바와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와 팔레스타인 및 아프리카, 동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전세계 네트워킹도 포함했지만, 그 뜻은 지연되는 시간과 고양·파주·가평·지리산·제주도를 거치며 계속 조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역단위 코이카 프로젝트 등으로 분절되는 등 형식은 작아졌고, 방향은 꺾였고, 결과물은 원래의 초안과 달라졌다. 그러나 통합된 처음의 상상력은 훨씬 컸다. 교육, 연구, 국제 네트워크, 정보화, 제도 설계를 함께 묶는 구조적 발상이었다. 생명평화도시 설립안에는 분쟁 예방과 인권, 환경과 안보, 사이버 통신망, 원격교육센터, 정보통신과 인공지능 연구교육, 해외 협동연구소 네트워크 구상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의 언어로 바꾸면, 공공적 정보질서, 지식 아카이브, 국제적 데이터 환류, 분산형 네트워크 구조의 문제의식이다. AI라는 단어가 없었다고 해서, 오늘 유엔 글로벌 AI허브 논의의 핵심인 정보 연결과 국제 지식 인프라의 발상까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안타까운 일은, 변형된 타협의 결과만 현재에 남고, 처음의 질문이 얼마나 컸는지가 함께 지워진다는 데 있다. 이 구상은 상징정치가 아니었다. 평화를 선언이 아니라 운영 가능한 질서로 만들려는 구상이었다. 안보는 군사적 위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제도에 대한 신뢰, 정보 접근과 해석, 교육과 기록, 국제 네트워크, 운영 가능한 인프라가 함께 작동할 때 사회는 장기적 안정성을 갖는다.


지금 다시 유엔 글로벌 AI허브를 말한다면, 나는 적어도 다섯 축을 함께 복원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과 훈련의 축. 평화는 선언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배우고 훈련하고 제도적으로 길러야 한다. 국제 네트워크의 축. 유엔 글로벌 AI허브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건물보다 연결이 먼저다. 반복과 상주, 교류와 축적이 있어야 특정 공간이 국제적 의미를 갖는다. 정보와 해석의 축. 평화는 정보 없이 유지되지 않는다. 누가 자료를 축적하는가, 누가 서사를 만드는가, 누가 의미를 배치하는가에 따라 평화의 방향도 달라진다. 이것은 해석권력의 문제다. 공간 재구성의 축. DMZ를 위험의 표식으로만 두는 한, 접경은 영원히 관리와 제약의 공간으로 남는다. 거기에 교육과 연구, 국제협력과 기록의 기능을 배치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징과 실효의 결합. 상징만 있는 평화는 금방 닳는다. 실효만 말하는 평화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


지금의 국제환경도 이 문제를 호출하는 데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의 똥볼에서 비롯된 미국발 질서 재편이 세계를 흔들었고, 제국주의적 야욕을 노골화하는 AI 중심국 질서에 대한 피로도 커지고 있다. 세계는 기술과 정보, 안보와 거버넌스를 다른 방식으로 묶을 대안을 찾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일정 부분 천운이다. 그러나 천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되며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한때는 꿈이라고 비웃던 말을 이제 와 탁월한 한 수라고 말한다면, 적어도 그 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기억해야 한다. 김용복 총장님의 이름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추모가 아니다. 그분이 붙들었던 문제의식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한 사람이 던진 질문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른 방향으로 던져진 그 질문을 기억하는 이들이 남아 있을 때, 그 뜻은 다른 형식과 언어로 이어지고 다시 돌아온다. 나는 그것이 먼저 길을 낸 사람에게 우리가 뒤늦게라도 보여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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