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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Dec 25. 2024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쓰는 마지막 일기

고생해 준 과거의 나에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벌써 연말이다. 이맘때쯤엔 늘 속 시끄럽다. 마음속에 부유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나의 무관심 아래 몸집을 무럭무럭 키웠다. 서로 얽히고 설켜 내 안을 답답하게 꽉 채운다. 빡빡한 일상에 파묻혀 있는 나를 만 미터 위로 꺼내 올려준 이 비행기의 한 칸에 들고서, 그것들을 마주 볼 기운이 생겼다. 많은 것들이 통제되고, 차단되어 있는 이곳이 불편하지 않고 되려 자유롭고 여유롭다고 느껴진다. 이 자리에 앉아서야 마음에 의식을 깊숙이 넣어본다.


바빴다. 올해도 너무 바빴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과 달리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이게 날 소심하게, 작아지게 만든다. 시간 낭비 하지 않고 여러모로 부단히 애쓰며 살았다는 자부심이 이 순간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몰아쳐오는 무기력함을 소강시켜 주지 못한다.


작사일을 시작할 즈음 꿈꿨던 게 있다.


한 달에 최소 한 곡, 크레딧에 이름 올리는 작가 되기.


이 정도 연차가 됐을 때는 꿈의 머리털 끝이라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턱도 없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는데, 정말이다.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모를 일이다. 그간 내가 주체로서 '작사가'라는 꿈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문득 든다. 꿈이 나를 많은 곳으로 데려다주고 있다. 삶을 이끌어주고 있다. 내 계획은 어림 반 푼도 없다는 듯이. 꿈을 지키고자 했던 고군분투는 내 삶에 브런치를, 어학원을, 아이들을, 영어 수업을 들였다. 작사, 글쓰기에서 빗겨나가 있는 듯 보였던 그것들은 다시 나의 '글'에 가닿아 내가 작가로서 숨 쉬게 하고 작사가 신효인에게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나.. 잘하고 있는 거..겠지..?


불안감이 든다. 꿈을 지키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옆길로 새고 있는 건 아닌지 파악이 잘 되지 않는다. 길눈이 무척 어두운 것 마냥. 내 꿈은 간절함과, 그 간절함에 예속되어 있는 불안감으로 움직이고 버텨왔다. 이렇게 늘 두려움에 맞서는 건 무척 고단하다. 고단하지만.. 계속하고 싶다.


계속하겠다는 결정에는 여러 가지 대가가 따랐다. 나 자신과의 싸움만으로도 벅찬데, 타인의 시선과도 싸워야 했다. 올해 들어, 20대에 꿈을 좇는 것과 30대에 꿈을 좇는 건 많이 다르다는 걸 체감했다. 20대에 돈 없이 꿈을 좇는 건 열정으로, 30대에 돈 없이 꿈을 좇는 건 미련과 태만으로 취급되었다. 슬프고 외로웠다. 추천서 써줄 테니 우리 회사에 지원하라는 말이 꿈을 위한 나의 노력을 무시한다고 느껴졌던 건 내 자격지심이었을까. 친구 결혼식 후 식사 자리에서 왜 연애 안 하냐는 질문이 편치 않았던 건 열등감이었을까. 그럴 수 있겠다. 나를 아껴주는, 아까워해주는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말들이니까. 연애 안 하냐는 질문에 앞가림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다는 내 대답은 사실임과 동시에, 내 처지를 감추고자 했던 그럴싸한 핑계였다.


올해 월급이 줄고서 많은 걸 참아야 했고, 많은 걸 고사해야 했다. 친구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도 가볍게 할 수 없었다. 내가 보고 싶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바로 캘린더를 꺼내 들어 '당장 날 잡아!!'를 외칠 테니까. 그러면 지출이 생기니까. 보고 싶다는 나의 표현에 응해주는 친구들의 순수한 사랑 앞에서 돈이나 세고 있는 내가 싫었다. 작고 소중한 월급에서 매달 고정 지출 빼고, 저축할 금액 빼고, 아직 독립 못한 캥거루족으로서 자발적으로 집안 살림에 조금 보태고 나면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 연애는 사치다. 뒤로 밀릴 수밖에. 소개팅 받아보라는 사람에게 이런 걸 어찌 다 이야기하리오. 그럴싸 한 이유를 만들어 거절하면 눈이 높냐는 반문이나 듣는다. 떼이잉-.


이런 일, 저런 일로 끊임없이 부서지는 한 해였다. 심적으로 많이 지쳤다. 1년만 더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두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계획 세워봤자 소용없지만.


혼자 일하는 걸 늘 선호했던 나인데 마음 맞는 사람, 좋은 사람들과 팀을 이뤄 작사/글쓰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최근에 강하게 들었다.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HOW는 모르겠다앙-. 늘 그랬지 뭐. 원하는 것, WHAT이 생겼음에 그리고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겼음에 큰 의의가 있다.


작년 말에 친구와 카페에서 올해 이루고 싶은 것, 해내고 싶은 것들을 종이에 적었었다.


1) 상반기, 하반기 한 곡씩, 총 2개의 발매곡에 참여
2) 영어 공부하기
3) 운동하기
4) 새로운 사람들 만나기 (집 밖으로 나가기)


2번과 3번은 확실하게 이뤘다. (쓰고 있는 와중에 기내식이 나왔다. 먹고 와야지 흐흐.)(와규 계란 덮밥 식사를 먹었다. 맛있었다. 특히 오렌지 케이크가 엄-청 맛있었다!! 한 입 먹고 눈 커짐. 남들은 기압 때문에 기내식 맛없다는데 나는 왤케 맛있나 몰라 ㅇㅅㅇ)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체지방은 빠지고 근육은 1kg 늘었다. 영어 공부 덕에 영어 실습 수업도 잘 해냈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구나. 해내는 사람이구나.'를 반복해서 경험하는 건, 내면을 튼튼하게 다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낀 1년이었다. 뿌듯. 1번과 4번은 내년에 다시 도전해 보자. 읏챠.


참, 이번 달에 유치원에서 이틀 동안 영어 수업 10개를 했다. 선생님 한 분이 갑자기 출근을 못하게 되셔서, 부장님께서 내게 수업을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당장 다음날에 수업을 해야 해서=수업 준비 시간이 짧아서 '잘할 수 있을까? 덥석 맡아도 되나? 망치면 어떡하지.'하고 겁이 났지만, 내게 기회가 또 한 번 온 거라는 생각에 하겠다고 답을 했다. 이틀 동안 밤새고 에너지를 평소보다 3~4배 많이 써서 몸이 갈갈갈 갈렸지만, 마치고 나니 여러모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수업만 하고 빠졌던 실습과 달리, 이번에는 다섯 반을 돌아서 제대로 된 근무 시스템과 환경을 겪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체력 분배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수업 구성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아쉬웠던 부분은 어떻게 보완하는 게 좋을지, 완급 조절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등 각이 섰다. 원장님으로부터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들의 반응이 이번에도 무척 좋았다고 전해 들었다 헤헿. 수업을 하면 할수록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것과 재미를 느끼는 게 좋다. 유익하고, 의미 있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년에 영어 교사 일자리를 얻게 될지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바는 없다. 원장님과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내년은 어떻게 흘러갈까?


2025년에도 하고 싶은 일,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365개의 칸들을 또 한 번 부지런히 채워 나가야겠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종종 했던 한 해였다. 포기하지 않고 10번이나 도전해서 결국 브런치 작가가 되어준 과거의 나 덕분에 이렇게 세상에 나의 이야기를 건넬 수 있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학위와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따준 과거의 나 덕분에 새로운 일도 도전해 볼 수 있었고, 무서워하지 말고 사회생활 다시 해보자고 용기를 내어 어학원에 취업한 과거의 나 덕분에 영어 교사까지 도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 덕분에 지금까지 작가/작사가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비록 올해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2024년에도 참 열심히 살았다! 미래의 내가 2024년에 애써줘서 고맙다고, 그때의 너 덕분에 지금 내가 잘 지낸다고 해주면 좋겠다. 2025년에도 미래의 나를 위해 부지런히 살아야지.


아, 그리고 내년에 브런치에 새로운 작사 프로젝트를 열거다. 마음먹은 거 꼭 실천하라고 적는다.


연말연시 이탈리아에서 잘 보내고 한국 돌아갑세-!

굿바이 2024년.



구독자님들께.

올 한 해도 제 글공간을 찾아주심에, 제 글을 읽어주심에 깊은 감사 인사 드립니다. 연말 건강하고 따뜻하게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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