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등바등 아닌 척하는 건 피곤해
얼마 전에 좋아하는 언니에게서
주변 사람에게 브런치 알려주고서 불편했던 적은 없었어? 너의 속마음, 속사정 다 자세하게 알게 되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고 밝힌 걸 후회하기도 했다. 나의 치부를 아는 사람을 일상에서 오며 가며 마주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때는 '나의 글을, 나의 일기장을 읽은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고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나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살아보자.'라는 당찬 각오는 빠르게 요원해졌다. 인정과 존중이 아니라, 조롱이나 평가를 받을까 걱정도 되었다. (우려했던 일-상처가 되는 일을 실제로 겪기도 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 내 글을 읽는 게 차라리 마음이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신경 쓰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 가볍게 알고 지내는 사람, 매일 보는 사람, 일면식도 없는 사람 그 누가 읽어도 괜찮다. 복잡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까.
이번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이탈리아어를 못하는 날 배려해 주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다. 잘 몰라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나를 나서서 챙겨주고, 조금 느린 나를 재촉하는 기세 없이 기다려주고,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어 써가며 천천히 설명해 주고 나의 대답을 온전히 이해하려 애써주었다. 그들은 부드럽고 친절하게 나를 대해주었으며 그들의 눈빛, 손짓, 말투는 다정했다. 그들과의 만남은 큰 감동이자 행운이었고, 기쁨이었다. 감사했다.
반면, 나를 답답해하고, 귀찮아하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한 말과 제스처를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거나, 인종차별성 언행을 하거나, 거칠고 무례하게 날 대했다. 불쾌했다. 기분이 나빴다.
후자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어서, 또 만나게 될까 두려워서 해외여행을 안 가면.. 그건 내 손해다. 예쁜 풍경도, 맛있는 음식도, 전자의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다 날려버리는 거다.
내가 가진 특징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사람, 그걸 약점으로 잡아 날 함부로 대하는 사람 모두 어딜 가나 있다. 내가 이탈리어를 못하는 건 입만 뻥긋해도 절절히 다 드러난다. 숨겨도,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티가 난다. 나의 다른 점도 마찬가지더라. (예전에는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잘 감춰왔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걸 깨닫고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게-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쓰는 게 훨씬 편해졌다. 그게 몇 년이 쌓이니, 인생도 편해졌다.
그리고 브런치에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기 시작하고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더 가까워졌고, 나를 예쁘고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닿을 수 있었고, 여러 응원과 공감을 받았다. 감사하고,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들 덕분에 나답게 사는 것-나로 사는 것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용기와 힘을 얻었다.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로부터 자유로워진 것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의식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안 쓰는 게 아니라, '이게 나인데! 이게 나야. 어쩔 수 없어.' 마인드랄까. 뭐 어떻게 해. 남 눈치 본다고 해서 뭔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 겪은 불행한 일과 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내 특징-성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날 밉게-불편하게 보는 사람이 나를 조금이나마 예쁘게 봐주는 것도 아니고. 진짜 어쩔 수 없더라.
'나'를 스스로 받아들이고서 '나'를 드러내며 '나'로 사니, 한결 편하다. 스스로 질색하는 나의 단점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기도, 나에게는 별게 아닌 게 누군가에게는 감동이기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내 버릇이 누군가에게는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하더라. 각자의 들어가고 나온 부분이 맞아 잘 굴러가면, 키득키득 꺄르륵 소리가 났다. 대단히 애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분이 좋다. 이런 경험은 '나'로 살고서야 비로소 할 수 있었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경험도.
이탈리아 여행을 되짚어 보면 떠오르는 건 맛있었던 까르보나라 파스타와 마르게리따 피자, 꺄- 꺄- 손뼉 치면서 먹었던 디저트, 예쁜 풍경, 좋은 사람뿐이다. 또 먹고 싶고, 또 보고 싶고, 또 만나고 싶다. 그러려면, 겁내지 않고 씩씩하게 또 현관을 나서야지.
또 하나의 내 이야기를 적어 올려야지.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