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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Dec 23. 2021

20살, 나는 대한민국 '현역 고3'이었다

성실하게 방황했던 나의 1년


20살, 나는 대한민국 '현역 고3'이었다.


당시 나는 작곡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사실 조금 늦게, 고3이 되고서 진로를 정했다. 그래서 나보다 일찍 작곡을 시작한 다른 친구들과 경쟁해 대학을 가려면, 난 훨씬 많이 공부하고 연습해야 했다. 그럼에도 난 수업이 끝나고 야자실이 아니라, 우유와 샌드위치를 들고 연습실로 가는 게 무척 행복할 만큼 작곡을 배우는 게 좋았었다.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6월이 되었을 때, 나는 담임 선생님께 진학 상담을 받았다. 나의 내신 성적을 아까워하셨던 담임 선생님께서는 고등학교 3학년부터 작곡을 배워 '실용음악과'에 합격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냐고 내게 물으셨다. 재수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그 말에, 나는 덜컥 겁을 먹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관심이 많으니, 내신 성적으로 '실용음악과' 대신 '신문방송학과'를 지원해보자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 설득에 혼란스러워진 나는, 내게 '된다'는 작곡 선생님과 '현실'을 말하는 담임 선생님 사이에서 울상이 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하고 싶은 것'과 '공부' 중에서, 어떤 게 현명한 선택이 될지 답을 내리기엔 그때 난 너무 어렸다. 나이만 성인일 뿐, 주변 어른들의 영향을 받는 여느 고등학생이었다. 중학생 때 유급을 해서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았던 나는, '재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당시 어린 맘에, 재수로 1년을 더 뒤처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단히 겁을 먹어버렸던 나는, 고민 끝에 결국 피아노가 아닌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그렇게 나는 '신문방송학과' 진학을 위해 원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필수 서류인 자기소개서에는 내가 '신문방송학과'에 왜 진학하고 싶은지, 진학을 위해 고등학교 3년 간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 등을 적어야 했다. 자기소개서를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방송학과'에 맞춰 '가짜 나'를 만들어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끼워 맞추기와 거짓말 투성이인 자기소개서를 수없이 첨삭하며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 과정에서 '신문방송학과'는 내게 좋은 차선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짙어져 확신이 되었다. 내 목을 조여오는 수많은 서류와 제출 기한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했던 나는 살고자 모든 걸 툭 내려놨다. 덜컹대면서라도 어찌저찌 굴러가던 버스가 결국 멈춰 서버린 것이다. 공부도, 거짓말 투성이인 원서 준비도 내 멋대로 다 멈추고, 인터넷과 유튜브 서핑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무려 대한민국 고3이. 이대로라면 난 재수가 불가피했다. 


이 날도 자기소개서 쓰는 척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에서 연예부 기사를 이것저것 클릭해보고 있었다. 그러다 큐비즘 매거진에서 발행한, 김이나 작사가님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사들을 쓰신 작사가님이었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작사가'라는 직업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가 어떻게 작사가로 일하게 되었고 가사는 어떻게 떠올리는지 등 김이나 작사가님과 또 '작사가'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인터뷰였다. 그중에서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의 곡에 대해, '퍼포먼스나 캐릭터를 고려한 가사가 테크니컬하고 음악과 캐릭터, 퍼포먼스가 삼위일체 되어 완벽하다'는 작사가님의 말씀이 눈에 띄었다. '음악과 캐릭터, 퍼포먼스가 삼위일체 되었다'는 게 무슨 말인가 싶어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의 영상 몇 개를 시청했다. 이전에 EXO의 '으르렁' 무대를 봤을 때는, 단순히 노래가 중독성 있고 교복이 예쁘다고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김이나 작사가님의 인터뷰를 읽은 뒤 무대를 가사와 함께 다시 보니, 교복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가사 속 화자의 '캐릭터'가 있는 듯했다. 이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창에 'EXO 컨셉'이라고 쳐보니, 오센과 큐비즘에서 발행한 SM 엔터테인먼트 아트 디렉터 민희진 실장님(현 ADOR CEO)의 인터뷰 기사 두 개를 읽어볼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아트 디렉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민희진 실장님 인터뷰를 통해 태어나 처음 알았다. 직함은 '아트 디렉터'이지만, 실장님은 아티스트 앨범에 스토리를 불어넣는 '스토리텔러'라는 걸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발매하려는 앨범의 비주얼 컨셉부터, 스토리-세계관, 자켓이나 뮤직비디오 촬영, 앨범 디자인 등 앨범 제작에 필요한 모든 것에 그가 참여, 기획하는 듯했다. '나도 아티스트의 앨범 컨셉을 잡고, 앨범에 실을 음악을 고르고, 앨범 자켓과 뮤직비디오까지 기획해보면 어떨까? 그 앨범이 세상에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니, 너무 신이 나고 좋았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스크랩해뒀던 인터뷰 기사와 메모 일부


김이나 작사가님과 민희진 실장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다시 내 심장이 뛰었다. 나도 그들처럼 내가 사랑하는 음악으로 일을 하고 싶었다. 나도 그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멈춰 선 내 버스에 기름이 가득 채워졌다. 뒤에서 자세히 나올 이야기이지만, '작사가'는 나의 첫 번째 꿈이었기에 당시에 '작사'를 전공으로 배울 수 있는 대학교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 입시 원서 접수 마감이 코 앞인 시점에서, 민희진 실장님 인터뷰 프린트물을 집어 들고 '그래, 그러면 난 이 길이다!' 했다. 그렇게 나는 '음반 기획/제작'을 배우겠다는 목표를 잡고, 긴 방황을 끝낼 수 있었다. 이 결론까지 도달하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3 생활의 대부분을 방황하며 날려먹은 큰 딸을 지켜본 우리 엄마는 속이 다 타들어갔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나의 여정을 끝까지 지지해주셨다. 엄마와 함께 알아본 끝에, '음반 기획/제작'을 배울 수 있는 학과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에 국내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과 실무를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학과였다. 커리큘럼이 '신문방송학과' 보다 훨씬 내 맘에 들었기에, 난 더 고민할 것 없이 바로 그 학교에 입시 원서를 제출했다. 입시 원서 준비는 너무나도 순조로웠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이 참 좋았다. 결과는 감사하게도 합격이었고, 난 빛의 속도로 입학금을 납부했다.




대학 진학이 인생의 전부였던 20살 고3,

이렇게 최종 목적지가 결정된 줄 알았지만

이건 사실 수많은 정류장 중에 n번째 정류장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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