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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공개수업 하고서.. 퇴사하게 되었음돠

5살 dobby is free

by 작사가 신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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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나흘간 진행되었던 학부모 공개수업 8회를 모두 잘 마쳤다.

수업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내내 널을 뛰었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 의젓했다가, 내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긴장감에 압도되기도 했다. 받아놓은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데, 끝이 보인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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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첫 타임.

학부모님들이 우르르 들어오시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졌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최악의 상황을 겪는 장면이 어마무시한 속도로 끊임없이 그려졌다.

> I can't breath.
> You can. Breath.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숨 쉬라고 말하는 동료 선생님 뒤로, 원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셨다. 수업을 시작하라는 신호다.

모두가 날 바라보고 있다. 긴장감이 한 칸만 더 넘어가면, 100개가 넘는 눈앞에서 헉헉 댈 판이다. 싫다. 그건 너무 싫다.

사랑, 행복, 두려움, 공포심 등 종류 상관없이 어떤 감정이 임계치를 치면 나는 순식간에 차분하고 담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영혼이 바뀐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다.

> Good morning. Welcome to our English class.

본래 여유롭고 능숙한 척 인사말을 던지며 수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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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친 호기에 걸맞지 않게 내 머릿속은 한 문장을 마칠 때마다 하얘졌다.


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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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웃긴 게, '어? 망했다.' 싶을 때 말이 떠오르고 '어? 진짜 망했다.' 싶을 때 다음 단계가 생각이 났다. 컴퓨터의 흰 화면 위에 검은 글자가 반복해서 깜빡거리는 것처럼 머릿속이 번쩍번쩍했다. 자꾸 가려서 얄밉다고 해야 해, 너무 늦지 않게 도로 띄워줘서 고맙다고 해야 해. 남들에게는 문장과 행동 사이 자연스러운 공백이었겠으나, 그 모든 찰나가 내게는 황천길 위 유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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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역시나.
돌발 상황도 많았다.

나에게 그랬듯, 아이들에게도 공개수업이 빅 이벤트였나 보다. 생각보다 들떠 있거나, 움츠러있거나, 쑥스러워하거나, 신이 나 있었다.

'No'에 앉고, 'Yes'에 일어나라고 했는데 한 아이가 '헤헤' 웃으며 그 반대로 하더라. 평소 수업 시간에는 늘 적극적이고 잘하는 아이가 수업 참여를 거부했다. 부모님 앞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다른 아이는 반대로 부모님 앞에서 자신이 잘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는지, 연속해서 자기를 시켜달라고 계속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예상 밖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쏟아졌다.

들숨에 멘붕. 날숨에 당황.

> 아니, 얘가 왜 이러지. 내버려두어야 하나? 그러지 말라고 지도를 해야 하나? 지도하는 모습이 안 좋게 보이려나? 일부러 반대로 하는 게 더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것 같은데. 어쩌지.

> 헐. 왜 안 하려고 하지. 한 번 더 물어볼까. 하기 싫다는데 그러면 안 되겠지. 하지만, 한 번씩은 다 참여해야 하는데.

> 어머. 쟤가 왜 저러지. 자제시켜야 하나? 콕 짚어서 그래버리면, 아이가 민망하지 않을까.


아, 너무 의식하고 있다. 타인을 너무 의식하고 있다. 중심을 잃는다. 말리기 시작한다.


당황스러움과 눈치 보기가 임계치를 넘어서자, 또 각성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이 chant를 외치는 동안, 지시와 반대로 행동하는 아이와 눈을 맞췄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썹을 구겼다. 단호함과 우스꽝스러움 그 사이 어딘가의 표정으로 두 손가락을 내 눈에 댔다가 아이에게 향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이는 '히히' 하고 웃으며 몸을 살짝 베베 꼬더니 'Yes' 타이밍에 드디어 일어섰다. 뭐야? 관심받아서 만족한다는 그 표정은? 참 나(귀여워).

나서지 않으려는 아이들은 달래 보았다. '너 할 수 있잖아~ 할 줄 아는 거 선생님이 아는데! 도와줄게.' 하고. 이름을 연호하기도 하고, 아이 자리로 직접 데리러 가기도 했다. 대부분 쑥스러워하면서도 웃으며 나왔다. 그러면 박수와 환호, 칭찬을 퍼부어주었다. 물론 끝까지 안 한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아이에게 너무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독려할 때 부모님들이 같이 박수를 쳐주시기도, 아이 이름을 외쳐 주시기도 했다. 3~4명이 연달아 참여 거부 의사를 보이자 머리에 손을 얹고서 당황해하는 나를 보고 웃기도 하셨고, 나 대신 당신의 아이를 직접 지도해주시기도 했다.

내가 당혹감을 느꼈던 순간들을 수업의 일부라고,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와 함께 호흡하며 수업을 꾸려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공개수업을 '평가의 자리', 나와 아이들을 제외한 저 많은 사람들은 다 '평가자'라고 생각을 했었다. 계획대로, 완벽하게 잘 진행되는 수업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통제 욕구를 버리자, 더 좋은 수업이 되었다. 자연스러웠고, 아이와 나 사이에 여느 때처럼 교감이 존재했다. 계획에 집착했었다면, 그건.. '수업'이 아니라 일종의 'show'가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그 속에서 show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울그락 불그락 얼굴을 붉히는 못난이 감독이었겠지. 부모님들은 그런 show를 보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셨을 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어른들은 '평가자'가 아니라 '조력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걸 깨닫고서 (물론 긴장을 하긴 했지만) 조금 편하게, 내 스타일과 페이스대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공개수업 3, 4일 차. 제가 아주 멀쩡해 보이나요? 제대로 속으신 겁니다 ㅋ_ㅋ. 심장 벌렁 벌렁 바운스 바운스 중..


마지막에 원장님이 1년 동안 고생하신 노아 선생님이라고 날 소개하자, 학부모님들께서 박수를 쳐주셨는데 벅찬 기분이 들었다. 그 박수에 많은 따뜻한 말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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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수업 8회를 무탈하게 잘 마쳤다. 좋은 경험이었다.

잘했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수업이 끝나고 복도에서 한 학부모님과 마주쳤는데, 수업 잘 봤다고 좋았다고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건데, 나의 공개 수업을 참관하셨던 7세 학부모님이 5세 담임 선생님의 새언니셨더라. 그 학부모님께서 내 수업이 무척 좋았다고 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다행이다. 모두 감사합니다.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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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수업을 같이 한 동료 선생님께서 내년에도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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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수요일에 재계약 면담이 있었다.

면담을 마치고, 어학원 버스에 탔다.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보는 사이, 무력감이 차올랐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해도 변하는 게 없구나. 미래를 꿈꾸는 힘이 몸에서 빠져나간다. 이 컨디션에 더 머물러 있으면 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두 번째 면담을 통해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정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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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차 직장 생활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이제 퇴사까지 두 달 반이 남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원래도 소중했는데 이제 더 더 더 소중해졌다. 남은 수업 시간에 많이 사랑해 주고, 많이 알려줘야지.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챕터를 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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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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