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맞기. Goodbye 2025.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옆집 아저씨와 안부를 나누었다. 유치원에서 영어 가르친다고 아빠한테서 들었다 하시더라.
영어 강사일을 시작하고서, 엄마 아빠가 자식 안부 물음에 이제 쉽게 대답할 수 있게 된 게 기뻤었다. 그전까지는 조금 길고 복잡했다. 노랫말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유치원-어학원에서 차량도 타고 카운터도 봤으니까. 이게 창피한 건 아니었는데, 간단하지 않으니 내보일 때 번듯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다. 자격지심이자 열등감이었다. 30대가 되고서 더 짙어진.
글쓰기로 안정적인 수입을 벌고 있는 게 아니어서, '작가'를 '직업'으로 말하는 건 '거짓' 혹은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오기를 부려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고 나면 늘 후회했다. 대단하다는 리액션이 불편했다. 업적을 묻는 다음 질문에서 아직 대단하지 않은 게 바로 들통나니까. 내가 참여한 곡과 쓴 글을 잘 몰라서 겸연쩍어하는 상대에게 괜찮다고, 모를만하다며 손사래 치고 나면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임을 숨기고, 유치원-어학원에서 하는 일만 밝히는 건 만족스러웠느냐? 또한 아니었다. 진짜를 말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 서른에 알바만 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와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는 내가, '작가'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이러한 내적 갈등이 심했을 때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친한 친구 나나가 부럽기도 했었다.
'유치원 영어 강사' 타이틀이 생기고서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어딜 가서 누굴 만나거나, 인적 사항을 적을 때 간단하게 나를 소개할 수 있고 신분을 증명할 수 있어서 너무 편하고 좋았다.
이제 내년 3월이면 그 타이틀이 사라진다. 이에 대한 아쉬움과 다시 겪게 될 고충에 대한 걱정을 나나에게 털어놓았다. 그에 나나는 이렇게 답했다.
어떤 타이틀도 영원하지 않아. 나도 언젠가 잘리거나 그만두면 지금의 타이틀은 없어지는 거야. 그런데 무얼 하는 사람인지는 사라지지 않아. 그게 더 중요한 것 같아. 너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야. 그러기 위해 살아가는 게 진짜 멋있어. 그게 너라는 사람을 설명해 주는 거야.
나나의 말이 마음에 무게감 있게 내려앉았다. 듣고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따뜻함을 곱씹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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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영어 강사일을 하는 걸 응원해 주었었기에, 퇴직한다고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부모님이 퇴직 소식을 듣고서 아쉬움을 내비치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어렵게 내린 결정을 존중받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고 실망시키는 자식이 되어버릴까 두려웠다.
며칠 전, 아빠와 동생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빠가 내년 계획을 물어왔다. 이제는 피할 수 없다. 내년 2월까지만 근무한다고 밝혔다. 그렇게 결정하게 된 자세한 사유를 들은 아빠는 5년간 고생했다고, 여행도 다녀오고 좀 쉬라고 해주었다. 동생도 안식년이 있어야 한다고, 내년은 쉬라고 해주었다. 그 말들을 듣는데, 몸이 녹는 기분이 들었다. 안도감이 들었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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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소식을 알게된 모두가 내게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나의 고생을 알아주었다. 직장 동료들은 아까워하고, 아쉬워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움츠려있었던 것 같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파묻혀 잘 몰랐지만, 나는 내 생각보다 클지도 모르겠다. 지난 5년을 내 생각보다 더 빛나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아껴주고, 응원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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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그해 마지막 글을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썼었다. 결국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한 해가 끝나버렸다는 생각 때문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당시 꽤 우울했던 걸로 기억한다.
올해의 마지막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홀가분하다. 에너지가 다 소진될 만큼 한해를 정말 열심히 살아서 그런가 보다. 아쉬움이나, 후회, 미련이 없다. 때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잘 마무리하고서 에너지를 조금 충전하고, 어서 다음 챕터를 열고 싶다. 구체적인 계획도, 보장된 것도 없지만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그래서 설렌다. 새로운 챕터를 어떻게 채우게 될지 기대가 된다. 지난 5년 간 꾸준히 무언가를 이루고, 해낸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기저에 있는 것 같다.
내년의 목표는 지금껏 피하던 것, 안 하던 것을 해보는 거다. 사실 지난주부터 실천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두려움이 컸던 게 무색할 만큼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 다음은 또 뭘 해볼까ㅎ_ㅎ.
아, 목표 한 가지 더 있다. 명랑하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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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안녕!!
2026년 안녕!!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작사가 신효인입니다.
제가 벌써 5년 차, 내년이면 6년 차 브런치 작가예요. 긴 시간 동안 브런치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저의 글을 들여다봐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이에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2026년에도 저의 글 공간에서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따뜻하게 잘 마무리하시고, 내년에 계획하고 꿈꾸시는 일 모두 잘 되길 제가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고맙고, 사랑합니다.
- 효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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