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셨나요? 내일이면 벌써 4월이네요. 꽃이 피기 시작했더라고요. 두꺼운 외투를 벗고 예쁜 봄 옷 입을 날을 기다렸었는데, 이제 가능할 것 같아서 설레어요! 두근두근.
이번 글에서는, 작사 오디션 그 두 번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차 오디션 시안을 제출하고, 며칠 뒤 결과통보 메일이 왔어요.
저희는 소중히 보내주신 지원서와 포트폴리오를 내부적으로 심도 있게 검토하였으며, 지원해 주신 1차 평가 합격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보고 기뻐할 틈도 없었어요. 바로 다음 문장에서부터 2차 평가(심층 능력 평가) 안내가 이어졌기 때문이었죠. 잔뜩 긴장한 채로 메일을 계속 읽어 내려갔어요.
1차 평가에서는 곡과 아티스트를 응시자가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었어요. 2차 평가는 달랐습니다. 2차 평가 안내에는 팝송 7곡이 제시되어 있었어요. 곡 별로 특정 아티스트가 매치되어 있었고, 7곡 중에서 2곡을 선택하여 개사 작업을 하는 게 미션이었습니다. 곡 별로 짧은 요청사항도 있었어요.
- 훅을 신경 써서 작업해 주세요. - 보컬적인 매력이 돋보일 수 있게 작업해 주세요.
등처럼요. 저는 아래의 세 가지 기준을 통해서 2차 오디션에서 작업할 두 곡을 추렸어요.
첫 번째,내가 가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곡
7곡 모두 기발매곡이다 보니, 개중에 제가 즐겨 들었던 곡들도 있었어요. 그 곡들의 원 가사는 제 머릿속에 이미 각인되어 있었죠. 익숙한 곡으로 작업한다면 음절 따기는 수월하겠으나, 개사를 하는 과정에서 원 가사가 크게 방해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영감의 샘도, 상상의 나래도 멀리 뻗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익숙한 곡들은 제외했습니다.
두 번째,내 취향의 곡
처음 딱 들었을 때 너무 좋아서 궁디가 씰룩씰룩 되는 곡이 있거든요? '아, 꼭 작업하고 싶다!' 하고 탐나는 곡이요. 그런 곡은 작업할 때 많은 게 속에서 솟아요. 열정, 욕심, 아이디어 등등. 머릿속에 이미지도 막 쫙쫙 그려지고요. 그러한, 저의 가슴을 뛰게 하는 곡으로 골랐습니다.
세 번째,욕심나는 아티스트
평소에 꼭 작업해보고 싶었던 아티스트가 매칭되어 있는 곡을 골랐어요. 욕심이 나서, 잘해보고 싶은 맘에 드릉드릉하게 되는..!
이 세 가지의 필터를 거치고 나니, 제 수중에 세 곡이 남더라고요. 한 곡을 더 쳐내야 했는데, 솔직하게 적어보자면.. 한 곡은 쫄아서 버렸습니당ㅎ 그 곡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핵심 자리에 이미 아주 딱 맞게 들어앉아 있는 그 단어를 쾌감 느껴질 정도로 잘 밀어낼 자신이 당시에 없었어요. 이미 완벽하게 자리한 그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아무리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아서, 그 곡을 뺐습니다.
1차 오디션은 곡도, 아티스트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기에 뭐랄까.. 지금 생각해 보면, 팔레트에 물감들을 제 마음대로 쫙-쫙- 짜서 채워서는 빈 캔버스에 제 마음 가는 대로 촥-촥- 과감하게 붓칠을 하는.. 그런 플레이를 했던 것 같아요. 반면 곡과 아티스트가 정해진 2차 오디션은, 물감의 색과 양이 한정된 팔레트를 가지고 캔버스에 이미 채워져 있는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조화가 되도록 그림을 이어 그리는.. 그러한 느낌이었어요. 최종 그림이, 그러니까 가사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1차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고, 실전에 보다 더 가까운 작업이라 짜릿했었거든요. 그 과정을 이번 글에서 보여드리려고 해요.
첫 번째 곡은 Pink SweatS의 <Honesty>라는 곡이었어요. 잔잔하게 흐르는, 감미로운 곡인데 매칭되어 있는 아티스트가 파워풀한 퍼포먼스와 섹시함이 강점인 남성 솔로 가수셨어요. 제게 새겨져 있는 아티스트의 이미지와 이 곡을 처음에 딱 매치했을 때 제 머릿속에서 부조화가 일어났었어요. 곡이 아티스트를 대표하는 스타일과 많이 달라서요. '이 가수가, 이런 곡을? 갑자기?' 이런 리액션이 나올 법한 핸들 꺾기였달까요. 그래서 가사 스토리를 기획할 때, 곡이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내는 이 '균열'을 납득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래야 제 가사가 유효하겠다, 먹히겠다 싶었어요. 제가 곡에서 얻은 영감은 '사랑 고백'이었고, 그 사랑 고백을 가사 안에서 해당 아티스트와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였습니다.
2차 오디션에서도 1차와 마찬가지로 가사 기획 내용을 담은 파일을 시안과 함께 보냈었어요. 이 곡에 해당하는 부분을 사진으로 첨부해서 그 과정을 보여드려 볼게요.
이렇게 뼈대를 잡고 작업을 시작했어요. 1절에서는 '다음 말을 건네고 싶다'며 마음을 읊조리는 듯한 독백을 담았고, 2절에서는 실천 직전의-고백 예행연습인 듯한 독백을 담았습니다.
두 번째 곡은 Ariana Grande의 <my hair>라는 곡이었어요. 이 곡은 듣자마자, 매치되어 있는 아티스트를 주인공으로 머릿속에 그림이 자동으로 쫙-쫙- 그려졌었어요. 영화 스토리보드나 뮤비 콘티 짜듯이요. '이렇게 써야지' 각을 잡고 작업했던 <Honesty>와 다른 유형의 작업이었어요. <Honesty>는 전략을 다 짜고서 'Okay!'하고 쭉쭉 달렸다면, <my hair>은 생각할 새도 없이 발이 알아서 움직여서 쭉쭉 달렸던.. (습작을 제외하고) 곡을 듣고 떠오르는 '그림'을 따라가며 내달리는 작업을 한 게 이때가 첫 경험이었어요. (두 번째 경험도 있었는데, 그 결과물이 저의 두 번째 작사 참여곡인 <Christmas Love> 예요.)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들은 아래의 네 가지를 보여주고 있었어요.
- 밤 - 어두운 와인 바 - 보라색 스팽글 숏 원피스를 입은 채, 고혹적으로 앉아 있는 그녀 -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한 사람
이 네 가지 요소에 집중해서 가사의 무드와 스토리 뼈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작업하면서 한 가지 더 각별히 유념했던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아티스트의 '가창'이었습니다. 곡에 매치되어 있었던 아티스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뛰어난 노래 실력과 독보적인 음색을 가진 솔로 여성 가수셨어요. 제가 이 아티스트의 무대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부분들 중에 하나가 이 분의 탄탄한 가창력인데요. 특히 '아' 또는 '에' 발음에서 소리와 표정, 입 모양을 통해 특유의 가창 매력이 더 잘 발산된다고 평소에 생각했었어요. 제가 애정하는 그 점이 부각될 수 있으면 해서, 발음 디자인에 보다 더 신경을 써서 작업을 했었던 기억이 나요.
위처럼 스토리 라인을 만들고 작업을 시작했어요. 가사를 쓰는데 정말, 너-무 재밌었어요. 장면이 보이니까, 진짜로 남의 썸을 관전하는 것 같았거든요. 저는 원곡의 'hair'를 'hand'로 바꿨고, 1절에서는 'take my hand'로 내용을 풀어갔어요. '내 손을 잡아줘'의 뉘앙스가 아닌, '와서 내 손 잡아도 돼'의 허락의 의미를 담았어요. 손을 잡았으면, 뭘 하겠어요? 이제 대화를 하겠죠! 손을 잡을 수 있을 만큼의 가까운 거리로 나란히 앉아서, 서로의 귀에 낮게 속삭이며 둘은 새벽까지 대화를 이어갔어요. 처음에는 귀여움+호기심이었는데, 화자는 대화를 나눌수록 상대에게 빠져들어요. Cool하게 자신의 심경 변화를 받아들인 화자는 2절에서 'kiss your hand'로 진전을 만들어내요. Bridge에서는 무를 수 없다고, 겁먹지 말라고, 각오하라고 하고요.
두 시안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하고서 작사 비하인드를 담은 기획안 파일과 함께 제출했어요. 약 3주 뒤에 결과 통보 메일이 왔고, 저는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누가 경쟁률이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최종 합격자가 몇 명인지 몰라서 경쟁률은 낼 수는 없는데, 2차에 시안을 제출한 인원이 112명이었다고 해요.
이렇게 글 두 편에 걸쳐서 제가 작사 오디션에 임했던 과정을 담아보았습니다. 사실, 1편을 쓸 때부터 저의 어리고 부족했던 시절을 제 손으로 뒤져서, 다시 꺼내서, 마주 보는 과정이 무척 괴로웠어요ㅎ 그걸 또 다른 이에게 내보는 것까지도요. 하지만 혼자 고군분투하던 그때의 제 심정을 떠올리며, 당시의 저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 홀로 애쓰고 계신 동료 작가님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어요. 도움이 되는 부분,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렇다면, 쑥스러워하며 발행한 제 글의 의의가 이 세상에서 숨을 쉰다는 뜻이기에 무척 기쁩니다 :)
아, 참. 오디션 합격 글에 어울리는 안부는 아니긴 한데요. 저는오디션에 붙었던 곳을 그만두고, 1년 2개월 만에 다시 홀로서기를 해요. 끝없이 도전하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많이 배우고, 잘 소화시켜서 그것들을 여러분께 나눌 수 있게 또 부지런히 지내겠습니다! 오늘 글을 쓰면서, 어리고 부족하지만 동시에 반짝반짝하던 그 시절의 저를 만나서 행복하기도 했어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경험할 수 있었던 감정이었어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4월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