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니 Jun 20. 2023

14억 인구 중 내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중국의 겨울왕국, 하얼빈 생존일기

나는 중국에 오기 전 대강 어느 동아리에 가입할지 생각하고 왔었다. 내가 머물렀던 대학교는 커리큘럼뿐만 아니라 동아리나 교내 활동 모임들이 활발하게 운영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특히 중국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동아리에 유학생들도 가입할 수 있다는 소식을 먼저 갔다 온 학교 선배들의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서 '배드민턴 동아리' 또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해서 '피아노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한국은 3월에 학기가 시작되지만, 중국은 9월에 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아리는 9월부터 인원을 모집하기 시작한다. 나는 운이 좋게 9월에 교환학생 파견이 되어서 새 학기가 물씬 풍길 때 중국의 대학문화를 더 생생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3주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국제문화교류원은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저것 물어보며 특히 '동아리 가입'에 대해 물어봤었다.


"선생님, 동아리 가입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동아리 가입은 국제교류원 사무실 앞이나 건물 1층 게시판 참고하면 됩니다~"


나는 어떤 동아리가 있을지 기대되어서 가봤더니 중국인이 운영하는 동아리 홍보물은 하나도 없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축구부'만 있었을 뿐이다.


'뭐야.... 나는 중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동아리를 얘기한 건데... 한국도 아니고 무슨 한국인이 운영하는 동아리밖에 없네...'

9월에 동아리 홍보를 하기 위해 신입생 인원을 모집하는 모습

나는 투덜투덜 대며 아는 동생과 기숙사로 돌아갈 때쯤, B구역에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붐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기숙사는 C구역이라 수업하는 건물인 A구역에서 돌아오면서 중간지점인 B구역에서 뭔가 행사하는 것을 발견했었다.) 알고 보니 B구역에서 중국인 학생들이 씨에 회의(协会:일종의 협회, 동아리) 부스를 열고 신입생 인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거 뭐야? 대박! 동아리 인원 모집하고 있나 봐! 우리 한번 둘러보자!"


엄청나게 많은 부스 중에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일단 무작정 사람이 많아 보이는 곳으로 갔다.


"이거 동아리 인원 모집하는 거야?"

"응!"


내가 중국어로 얘기하는 순간 그 부스에 있던 5~6명 학생들이 동시에 우리를 다 쳐다봤다.


"쟤네 한국인인가 봐!"


온갖 관심이 우리에게 쏠려졌고 그 시선이 생각보다 많이 부담스러웠다.


그러자, 다른 부스에 있던 중국인 학생들이 우리 쪽으로 와서 자신의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겠냐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인 것 같은데 언제 왔는지 궁금해하며 동아리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한 동아리 부서의 중국인과 우리가 꾸민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중

나는 그저 이렇게 중국인과 대화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중국에 온 목표가 분명했던 사람이라 한국인과 얘기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이 나라에서 중국어의 '신'이 되겠다고 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동아리를 가입해서 중국 현지인 친구들과 사귀고 싶었다.

그런데 동아리에 가입하려면 먼저 자신의 이름과 번호를 적은 후, 며칠 뒤에 문자가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필기시험과 면접을 봐야지만이 비로소 그 동아리에 정식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험, 면접 다 봐야 한다고? 중국어 고작 조금 할 줄 아는데 어떻게 필기시험을 보지?'


일단 3개의 동아리에 이름과 번호를 적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나왔다.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미리 계획했었던 '배드민턴 동아리' 같은 활동적인 동아리가 아닌 '심리 동아리 육성부', '광고 동아리'에 내 이름을 기입했다. 배드민턴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일단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동아리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필기시험과 면접을 어떻게 봐야 할지 너무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일단 참가라도 하자, 이렇게 중국까지 와서 가입을 안 하기는 아깝지 않나'라고 생각해서 나는 혼자서 필기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지를 보는 순간,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지? 라며 소위 '멘붕'이라는 것을 겪었다. 심리 용어가 나오고 에세이를 적어보라고 하거나 정말 극강의 난이도인 중국어 시험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조용히 중국어 사전으로 단어 뜻을 찾으면서 쓸 수 있는 한 열심히 썼었다. 다 쓰고 면접을 보는데 3명의 중국인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세명 다 쑥스러워하며 어떻게 한국인한테 질문을 할지 서로 쳐다보며 그저 당황한 눈치였다.


"아, 안녕하세요? 음... 일단 자기소개해 보실래요?"

"네, 저는 한국 00 대학교에서 온 교환학생 시니입니다, 저는 이번 달에 중국에 왔습니다.”

"아, 혹시 이 동아리에 가입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중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싶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중국 문화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지원했습니다."


그러자, 왼쪽에 귀여운 여자 학생이 너무 궁금하다는 듯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좋아하는 한국 가수가 누구예요?"

"하하, 저는.... 빅뱅 좋아합니다."

"어!! 나도 좋아하는데!"


이때 실감했던 건 케이팝의 힘이 다시 한번 정말 크다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의 중국인 여자 학생들이 케이팝을 좋아했었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팬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는 무조건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혹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중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은데 꼭 이 심리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고 싶습니다."

"하하, 네 알겠습니다. 음,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수고했어요."


이렇게 면접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국인이다 보니 매우 간단한 질문들이 던져졌고 오히려 면접관이었던 학생들이 질문할 때마다 긴장하며 나를 연예인 보듯 신기하게 쳐다봤다. 매우 긴장하고 갔지만, 다행히 간단하게 면접을 봐서 기분 좋게 면접장에 나올 수 있었다.


9월의 하얼빈은 날씨가 좋다. 그러나 당시 10월에는 미세먼지가 최고조였다.(2017년)


그리고 며칠 후 합격했다는 문자가 왔고 나는 중국인 학생들이 운영하는 동아리에 드디어 합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심리 동아리 육성부'에서 최초 한국인 구성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친구들과 사귀기가 힘들었다. 나 혼자만 유일하게 한국인이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다 중국인이었기 때문에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그 속에서 들어가 어울리기가 사실 어려웠었다. 


말은 안 통하지, 문화는 다르지, 정말 그들 사이에 끼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 모임을 가질 때, 활동이 있을 때, 못 알아 들었는데도 그저 바보같이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주곤 했다.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문화와 언어 차이 때문에 그 무리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 이제까지'인싸'라고 불려져 왔지만 처음 타지 생활에 처음 중국인들 무리에 혼자 속하려고 하니 너무 힘들었다.



14억 인구 중 내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인구는 많은데 정말 내가 중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어느 누가 타지에 와서 한 번에 적응하려고 하는 것인가. 어차피 한 두 달 동안은 적응기간이라 생각했다. 성격 급한 내가 중국에서는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렇게 나는 한 두 달 동안은 그저 학교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와 수업, 숙제를 끝내기에 급급했다. 바쁜 와중에도 동아리 활동이 있을 때마다 동아리실에 가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비록 처음에는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활동할 때마다 중국인 친구들이 '중국에 온 지 2개월밖에 안되었는데 중국어를 이렇게나 잘해?'라면서 칭찬해주기도 했었다.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중국인 친구들이 잘한다고 다독여줬을 때 그 말이 나에게 있어서 원동력과도 같았다.


'그래... 일단, 몇 달 동안만큼은 열심히 공부하자, 아직 기초도 안 다져졌고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서 친구 사귀는 건 천천히 사귀자! 아직 온 지 두 달 밖에 안되었고 그래도 동아리 가입한 게 어디야!'


나는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내 할 일을 하며 하루를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중국인 친구를 몇 명씩 사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중국에 있으면서 최대한 급하게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항상 시간이 걸리는 법! 마음가짐을 달리 하니 조금씩 중국문화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인에 대한 중국인의 시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