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진심은 마음 끝까지 닿는다
나는 며칠 전, 우연히 서랍을 보다가 예전에 모아둔 편지를 보게 되었다. 거의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아니 현재까지도 누가 나한테 준 편지는 절대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하는 편이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싶다지만, 편지만큼은 그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 진심을 무시하고 싶지 않아서 쉽게 못 버린다.
그리고 수업시간이나 학원에서도 몰래 쪽지를 써서 교환하곤 했는데 원래 하나도 빼먹지 않고 보관했었다. 그냥 '안녕, 반가워' 이런 흔한 쪽지마저도 말이다. 그러나, 현재 사라진 쪽지가 많아서 아쉽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편지를 쓰긴 썼으나 많이 쓰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한테 편지를 쓰면 답장을 해주거나 친한 친구들이나 가까운 사람한테 써주는 정도였다. 그렇게 편지보다는 오히려 수업시간에 몰래 쪽지를 쓰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간단하게 조그마한 쪽지를 주곤 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 반 친구가 수업시간 몰래 편지를 써서 나한테 줬다. 내 옆자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친구가 수업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엄청나게 뭔가 열심히 쓰고 있길래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편지를 썼었고 자신은 편지 쓰는 걸 매우 좋아하니 부담 가지지 말라며 나한테 이쁜 편지지를 편지봉투에 담아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그 편지를 받는 순간 나도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매우 깔끔하고 색도 단색에다가 글씨까지 너무 이뻤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준다는 건 한 사람의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걸 그때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그 친구한테 이 편지지를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대략 100원에 주고 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친구와 함께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서 편지지를 사기로 했다. 교보문고는 정말 컸다. 펜도 구경하고 여러 가지 포스트잇을 보면서 세련된 문구점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나한테는 신세계였다.
그렇게 나는 색깔에 맞춰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10장씩 샀다. 분홍색, 하얀색과 같은 다양한 색깔을 맞춰서 샀고 나의 친한 친구들에게 쓰기 시작했다.
그때서부터 나의 제대로 된 편지 쓰기가 시작되었다.
지금 이렇게 편지를 하나씩 읽어보는데 각자만의 진심이 담긴 종이에 한편으로는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나쁜 말은 없고 좋은 말을 해주는 친구들이 썼다 지웠다 하는 진심을 다해 쓴 모습이 어땠을지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에서야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연락이 끊겼는데 사이가 좋게 끝난 친구가 있는가 하면 사이가 안 좋아져서 헤어진 친구가 쓴 편지마저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싸우거나 사이가 멀어진 친구들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이 친구도 분명 이걸 쓸 때만큼은 소중한 시간을 쓰면서까지 편지를 써서 나한테 준 것일 텐데 끝이 어떻더라도 순수한 진심만큼은 계속 간직하고 싶어 진다.
또한, 읽으면서 느낀 건 남이 보는 '나'자신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도 자기가 하는 것보다 나를 잘 아는 다른 사람한테도 검사를 하게끔 해서 입체적인 나의 모습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김영하 작가님의 말처럼 편지를 읽어보니 '나'자신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활발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편지에는 '생각보다 얌전하다'라는 말도 있었고 '울보'라고 칭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내가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남들한테 보이는 '나'는 또 다른 점이 꽤 있었다. 이렇게 편지는 남이 보는 '나'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나는 편지의 위력을 알기 때문에 대학생 때 올라와서는 편지도 썼지만 대체적으로 엽서를 주고받았다. 여행을 현재까지 18개 국가를 갔다 왔기 때문에 그곳에서 엽서를 사는 게 나의 기념품 중 필수사항이었다. 그리고 엽서를 하나만 사는 게 아니라 여러 개 사서 보관하기도 한다. 그중에 몇 장을 꺼내 글을 써 나의 진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일랜드를 떠날 때도 나의 홈메이트들에게 엽서에다가 편지를 쓰기도 하고 심지어 내가 일했던 첫 번째 회사 사람들한테도, 전 직장에 나의 사수한테도 떠날 때 조그맣게 엽서에 내 마음을 담아서 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왠지 모르게 편지보다는 엽서에 간단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더 좋아졌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말로 표현하는 게 힘들어지는데 편지만큼은 진심을 담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
그렇게 편지는 가장 진실되게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편지는 나쁜 말을 못 한다. 편지만큼은 그 사람의 순수한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에 좋은 말을 쓰기 위해 신중해진다. 틀리면 다시 지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한다. 현재도 브런치스토리뿐만 아니라, 다른 플랫폼에 글을 쓰시거나 혹은 정말 편지를 쓰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 현재의 모습은 글을 지웠다가 다시 쓰고 진심을 다해 쓰려고 또 노력하려고 한다. 각자 어떠한 형태든 글을 쓰며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상상이 간다.
그러는 의미에서 오늘 하루만큼은 다들 마음속에 간직한 추억 하나 꺼내서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사진출처: 영화 '시월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