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겨울왕국, 하얼빈 생존일기
중국 하얼빈에 온 지 한 달째 되던 날, 기나긴 연휴를 보낼 수 있었다. 바로 국경절이었다. 국경절 기간에는 중국은 거의 일주일은 쉬어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거나 중국인들은 집으로 가곤 한다. 하지만 나는 밖에 나가면 사람한테 밟히기 싫었기 때문에 하얼빈에 계속 남기로 했다. 픽업차량 때 친해진 동생과 함께 하얼빈 '중앙대가', '태양도', 그리고 이케아를 가기로 했다. 다른 곳을 여행 갈 바에는 하얼빈에도 둘러볼 곳이 충분했기 때문에 이틀간은 하얼빈 여행을 하기로 계획했었다.
그리고 나는 동생과 함께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봤다. 하얼빈은 지하철 노선도가 3호선 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리 하얼빈이 도시였어도 15호선이나 되는 상해 같은 곳과 비교할 때는 그저 '소도시' 같은 곳이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보는 일이라 너무 신기했었다. 한국 서울의 지하철과는 당연히 비교가 안되게 작았지만, 매우 신기한 것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공항 검색대처럼 가방검사를 해야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심지어 물을 가지고 타면 먹어보라는 경찰도 봤었다. 사회주의 국가는 이렇게나 검열이 철저해서 어디 돌아다닐 수 있겠나...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방을 내리고 검사가 끝난 후 무서운 표정을 하고 서있는 경찰들을 지나쳐서 나와 동생은 무사히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아니... 근데 지하철에 들어가는데도 검사를 해? 그나저나 왜 검사하는 거지?'
중국은 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폭탄이나 다른 위험요소를 가지고 지하철을 탈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지하철역에 검색대가 있다고 한다. 하긴, 14 억 인구 중에 1%만 잡아도 1400만 명인데... 이상한 사람이 없을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지하철을 타게 되었고 점심을 뭐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무려 3명의 아저씨들이 동시에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기분이 조금 나쁘긴 했다. 그러나 우리를 신기하듯이 쳐다봐서 왜 이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보는 것일까 궁금했다. 처음에는 아무 말 안 하고 있다가 한국어를 하는 순간 다수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린 것이었다. 그만큼 하얼빈에서는 한국인이 흔하지 않다. 흡사 연예인 보는듯한 시선이었다.
우리는 하얼빈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중앙대가로 향했다. 그리고 일식 체인점으로 가서 점심을 든든히 먹었다. '태양도'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타는데 중국인들이 여전히 쳐다보는 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한국어를 하지도 않았다. 한국인의 분위기가 있었던 것인지 어떤 부부는 우리를 흐뭇하게 쳐다보기도 했었다.
2017년 10월 4일,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다. 태양도에 가기 적합한 날씨였고 우리는 오길 잘했다며 자전거를 빌려 탔었다. 옛 러시아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서 경치를 구경하면서 사진도 마음껏 찍었다.
실컷 구경한 후 2시간 뒤에 자전거를 반납해야 해야 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자전거를 반납하려고 오는 길에 자전거 반납하는 곳이 어디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태양도는 워낙 넓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다가 반납해야 할지 길을 잃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나가는 중국인을 붙잡고 물어봤었다.
"혹시 자전거 반납하는 곳 아나요?"
중국에 온 지 고작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으니 우리의 중국어 발음은 딱 들어봐도 외국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중국인은,
"네, 저기로 가시면 되는데.. 음... 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아! 중국어로 얘기하셔도 돼요. 영어로 얘기 안 하셔도 괜찮아요!"
"아, 외국인인 것 같아서 영어로 얘기해드리려고 했어요."
"아, 사실 중국어, 영어 다 가능해서 상관없긴 한데 중국어가 편하실 테니까 중국어로 말씀해 주시면 돼요."
우리가 외국인인걸 알고 영어로 설명을 해주려고 했던 것이다. 대충 길을 설명해 준 후 우리는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옆에서 계속 서성였던 어떤 한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국인이여?"
"네, 저희 한국인이에요."
"아 그럼 북한에서 온 건가?"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북한에서 왔다니...
"아니, 그 뭐야, 김정은이 대통령이잖아~"
"네, 맞아요. 북한 대통령이 김정은 맞는데... 근데 저희 북한에서 온 게 아니라 한국에서 왔어요! 대한민국!(我们不是朝鲜人,我们来自韩国!)한국 대통령은 문재인이에요. 김정은이 아니라...'
그 뒤로 알 수 없는 사투리를 써가며 얘기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고 서로 그 자리를 떠났다.
중국 와서 처음으로 '북한'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사실 내가 2017년에 교환학생을 갔지만, 하얼빈에 오기 전에 듣기로는 북한에서 아주 잘 사는 사람이나 고위 관리직인 소수의 사람들이 중국 북방 쪽으로 유학을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동기는 교환학생 시절 본 적이 있다고 하였으나 나는 교환학생 1년 동안 단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이 할아버지는 북한 사람을 봤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북한인이냐고 물어봤을 때, 기분이 이상했었다. 나이가 거의 80대는 되어 보였었는데 북한과 한국이 분단국가가 아닌 아직 같은 나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녁이 되고 중앙대가의 거리는 아직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휴여서 나름 사람이 없겠지 했지만, 역시 하얼빈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는 어떠한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시선들이 이미 하루 만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1년 동안 나는 지하철에 한국인 친구들이랑 가끔씩 탈 때마다 이런 시선은 계속되었다. 한국인을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 상해나 북경도 아닌 처음 보는 외국인이 중국 '하얼빈'이라는 도시에 있다는 게 그들 눈에는 신기했던 것 같다.
나는 교내의 어학당을 다녔는데 당시 반에 15명 중 무려 9명이나 한국이었지만, 바깥세상을 나가보니 해외여행을 나간 사람이 아닌 이상 한국인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내가 살면서 처음 본 외국인'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시선들이 조금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졌고 그 이후로 쳐다봐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매우 우호적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한국도 70,80년대 서양사람 보면 신기해서 쳐다봤듯이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정말 이미지 좋은 '한국인'이었다.
언제 한 번은 한국인 동생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지하철 표를 사는 기계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기계가 고장 났는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아니.. 이거 왜 안 되는 거야? 동생아, 이거 안되는데 지폐에 문제 있는 거 같아, 혹시 너 지폐로 해도 돼?"
옆에서 줄 서있던 중국인이 우리가 한국말을 하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다른 기계로 가려고 하는 순간 옆에서 또 '한궈런, 한궈런(韩国人:중국어로 한국인이라는 뜻, 발음은 한궈런이라고 한다)'이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 저. 이거 누르 면대"라며 어눌한 한국어로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알고 보니 어떤 버튼을 못 눌러서 안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표시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한국어 잘하시네요! 배우신 거예요?"
"네! 한국 드라마 자주 봐."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면서 얘기했지만, 한국어를 처음 해서 그런 건지 쑥스러워하는 표정이 드러났었다. 한편으로는 우리를 도와줬던 것도 고마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좋아서 그랬는지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중국인들은 '한국인'이라고 하면 왜 그렇게 좋아할까? 한국어가 들리면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중국과 제일 가까운 나라임과 동시에 '한국'은 생활수준이 높고 시민의식도 높은 나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그저 TV에서만 들었던 '한국', 물가가 비싸다는 '한국'. 그 한국인이 하얼빈에 있으니 그들의 눈에는 매우 신기했었나 보다.
중국 오기 전까지는 그냥 같은 동양권이니까 별 차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사드'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아졌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갔었다.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중국에 도착한 이후 중국인들이 한국인만 보면 어쩔 줄 몰라하며 쑥스러워하기도 한다.(베트남가도 이런 반응이긴 했다.) 나는 중국인들이 이렇게까지 한국인을 좋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국인'의 이미지가 이렇게나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