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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Jul 09. 2023

베트남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동남아의 색다른 매력에 빠지다

원래 내가 더운 것을 안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동남아 국가를 여행 자체로써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가고 싶었던 나라가 있었다면 베트남과 싱가포르였다.


일단 싱가포르는 안전한 나라였다. 갔다 온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혼자 새벽에 돌아다녀도 아무렇지 않다는 말에 가고 싶었었다. 그리고 베트남은 쌀국수를 매우 좋아해서 가자마자 매일 쌀국수를 먹겠다고 다짐했었다. 게다가, 물가도 싸다고 들어서 더욱더 가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올해 2월 초 태국과 베트남을 동시에 갔다 올 수 있게 되었다. 3년 만의 여행이었다. 2019년 12월,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후 그때 아일랜드에서 학생비자의 쓴맛을 맛본 후 워킹홀리데이비자를 가지고 떠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2020년 1월, 한국에 코로나가 터지기 시작했고 나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워킹홀리데이는 못 가더라도 여행은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코로나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여행은 자연스럽게 내 기억 속으로만 자리 잡고 잊혀가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2022년부터 여러 나라에서 이제 PCR이나 백신 맞은 자료들을 폐지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줄기의 희망이 생겼고 특히 태국이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소식에 아직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PCR이 의무이긴 했으나 가고 싶었던 나머지 회사 점심시간 동안 태국 여행에 대해서 찾아보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4월 갑상선암 진단을 받게 되면서 수술도 하고 방사선요오드 치료도 끝나면 꼭 가겠다고 결심했고 드디어 어느 정도 회복하고 2월에 갔다 올 수 있었다.


동생은 올해 졸업을 하였고 졸업여행 기념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 혼자여행도 좋지만, 그래도 동생과 단둘이 해외여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기대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태국과 베트남을 연달아갔고 가장 베스트인 나라를 꼽으라면 '베트남'이었다.


물론, 태국도 너무 좋았다. 그러나, 태국은 관광국가답게 태국인들보다는 서양인이 더 많이 보였을 정도였고 게다가 전 세계 각국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와서 태국이라는 느낌이 안 들기도 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달랐다. 벌써부터 현지인으로 가득했고 정말 베트남에 온 것처럼 제대로 현지문화체험을 할 수 있었다. 식당만 가도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지나다니는 곳마다 베트남인들로 가득하였다.


베트남은 넓기 때문에 지역선정도 중요했는데 전부터 검색을 한 결과, '호치민'으로 결정했다. 친구가 '하노이'를 갔지만 하노이는 교통이 약간 불편하다고 했고 게다가 하롱베이도 가야 해서 부모님과 오기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낭 같은 경우는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며 또 재미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게다가 휴양지는 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럼 나머지 한 곳으로 '호치민'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근데 덧붙이자면 아버지의 아는 분께서 하노이에서 사업을 하시는데 가기 전에 듣기로는 베트남이 교통은 원래 안 좋다고 오히려 남쪽이라 호치민이 날씨가 더울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도 호치민이 여전히 나한테는 최고의 선택이었고 어차피 한 번만 오는 나라가 되지는 않을 테니 나중에 기회 되면 가족들과 함께 하노이로 가겠다고 다짐했다.

호치민 동상과 청사의 야경

나는 베트남을 쌀국수나 반미 때문에 오고 싶어 했지만, 결국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중에는 커피 때문에 떠나기 싫을 정도였다. 껀저투어 때 만났던 사업가분이 얘기해 주셨던 게 기억났다. '커피'때문에 베트남을 떠나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베트남은 커피로 사랑받는 엄청나게 사랑받는 국가이다. 2일 차 때 동생과 카페 아파트먼트를 가게 되었고 맨 위층부터 쭉 내려오다가 6층의 어느 한 카페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상시대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러나, 카페 주인은 아메리카노가 없다고 하였고 블랙커피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블랙커피를 시켰고 동생은 패션푸르츠주스를 시켰다. 그리고 블랙커피를 마시는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맛있었다. 우리가 이제까지 먹어본 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달달하면서 향도 강한 이 블랙커피, 나의 머리를 탁 스치게 만들었다. '지금 내가 이걸 놓아두고 베트남을 왔는데 아메리카노를 시켜? 베트남한테는 블랙커피가 있는데...'


이때 베트남 블랙커피를 맛보고 난 후, 카페를 갈 때마다 블랙커피를 시켜서 마셨다. 게다가, 쓰어다를 먹어보라고 해서 마지막날 먹었더니 우리는 왜 이제까지 쓰어다를 안 먹었는지 후회만 가득했었을 정도로 진하고 달달하며 카페라떼의 고급진 맛을 농축해 놓은 것처럼 얼음과 함께 먹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먹었던 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커피였다. 그 이후로 한국에서도 베트남 프랜차이즈 커피 '콩카페'가 한국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한번 갔다 와서 코코넛스무디커피와 연유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여전히 그 현지의 맛이 나지 않아 아쉽긴 하다.


통일궁 안에서 찍은 호치민의 거리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다 보니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중국의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행 이틀째날, 동생의 옷을 호텔에서 드라이하기로 해서 드라이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호텔 여자직원이 와서 옷들을 가져가는데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가지고 갔다. 갑자기 이 상황이 내가 중국에 있었을 때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여자들의 표정이 거의 밝지 않았던 점과 카페나 식당을 가니 남자직원들이 엄청 친절하게 응대해 주면서 쑥스러움을 금치 못했던 점이 중국과 비슷했다. 중국도 이런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확실히 베트남도 약간 여자들의 기가 세 보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껀저투어 때 만난 사업가분이 베트남의 문화에 대해서 알려줬는데 베트남은 원래 여성의 파워가 세다면서 베트남은 현재까지도 이혼하면 여자가 돈을 다 가지고 간다고 하셨다. 내가 처음 베트남 도착했을 때 느꼈던 것 그대로 여자의 기가 센 게 신기했던 문화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호치민의 거리 

베트남을 가게 되면 빠질 수 없는 장소가 있다. 바로 전쟁박물관이다. 원래 2월 초에 갔을 때는 시간이 없어 전쟁박물관을 들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4월 초에는 다시 한번 온 거여서 시간도 꽤 있었고 무조건 가야 할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박물관을 갔다. 박물관을 가본사람은 알겠지만,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져있다. 아무래도 한국군도 참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더욱더 그 전쟁의 실상을 알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베트남과 한국은 역사적으로 보면 적대관계이지만, 현재는 베트남에서 대한민국은 엄청 사랑하는 나라이기도하다. 


예전 이미지는 어떨지 몰라도 요즘에는 K-POP부터 시작해서 박항서 감독님까지 정말 베트남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바꿀 수 있었던 계기들이 매우 많아졌다. 


이미 많이 실감하고 있었던 게 투어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와 동생 옆에서도 베트남 현지인들이 가족단위로 거의 7-8명이 함께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중 한 여자분이 나한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


누가 봐도 우리는 베트남 현지인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우리 한국에서 왔어"


그러면서 내가 영어를 정말 잘한다고 했더니 근처에 있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자신의 아이들이라며 아이들도 영어를 배웠다고 했고 아이보고 갑자기 우리한테 영어로 말하라고 시켰다. 아이가 쑥스러워하며 고민하다가 "Are you Japanese?(일본인이야?)"라고 말했다.


"아니, 우리 한국에서 왔어."라는 말과 함께 한두 개 질문정도 하고 그 주변에 있는 아이들과 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옆에 있는 한 여자 꼬마아이가 나를 가리키며 계속 신기하게 쳐다보며 웃었다. 투어버스 내릴 때도 계속 쳐다보며 사촌들한테 귓속말하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웃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들 눈에는 우리가 많이 신기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흡사 중국에서의 연예인 체험처럼 여기 베트남에서도 시작되었다. 나랑 동생이 카페에만 들어가도 외국인이 들어와서 어쩔 줄 몰라하는 베트남인들의 모습. 너무나도 순수해서 귀여웠다.


그리고 카페 아파트먼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우리를 쳐다보더니 나이가 조금 있으신 현지인분이 정중하게 물어봤다.


"너희 한국인이야?"

"응, 한국인이야!"

"한국 좋아해, 한국 최고!" 


그러더니 엄지를 올리더니 '최고'라는 표시를 우리한테 선보였다.


우리는 너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현지인분은 웃으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렇게 벌써 여행으로만 해도 베트남사람들의 한국사랑이 넘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교류도 많아졌기 때문에 베트남사람들도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듣기로는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어로 먹고사는 직업을 택하면 돈도 많이 받는 걸로 알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중국어 하는 걸 매우 좋아했지만, 당시에도 중국도 뜨는 국가이긴 하지만, 이제 중국보다는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뜰 거라고 계속 말이 나오긴 했었다. 그래서 베트남학과를 가라는 사람도 종종 보곤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베트남어학과가 많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평균연령이 30세라는 것에도 놀랐다. 전쟁이 끝난 지 꽤 오래된 것은 아니어서 그런지 여전히 옛날에 머물러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대체적으로 외관상으로 봐도 20-30대가 대부분이었고 50대는 거의 안보였다. 정말 젊음이 넘치는 도시였다. 내가 나이 든 사람을 본 건 호텔 가는 길에 노숙자 한 명이 앉아있었는데 한국으로 치면 80살은 훌쩍 넘어 보였지만, 개인적으로 베트남에서는 60-70대이지 않을까 싶다. 그 노숙자를 제외하고는 노인을 거의 못 봤다. 그래서 베트남이 젊은 사람들이 많고 출생률도 낮지 않은 발전하는 국가라고 얘기가 나오는 게 베트남 가보니 실감을 하였다.


여행을 갔다 오고 나니 나는 중국어가 아닌 베트남어를 배웠어야 맞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베트남이 너무 좋아졌다. 2번으로 끝나지 않을 여행, 앞으로 가고 싶은 도시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베트남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 졌다. 그나저나 언제 또 갈 수 있을까? 이 매력이 넘치는 나라에서 추억 쌓은 것을 상기하면서 다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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