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렇다. 내 인생 처음으로 경험해 봤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쌩신입때도 면접 3번이면 거의 붙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류합격이 되더라도 면접에서 꼭 떨어졌다. 무려 9번이나 말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를 분석해 봤다. 떨어서도 아니 면접을 못 본 것도 답을 이상하게 해서? 아니었다. 심지어 묻는 말에 잘만 대답했다. 엉뚱한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암환자이기 때문에 내가 '건강' 때문에 퇴사를 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퇴사사유보다는 온전히 나 자신의 '경력'만 봐주기를 원했다.
저번회사가 아무래도 외국계기업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서류들도 외국계기업이 붙었고 한국기업은 한 곳 빼고는 서류에서 다 떨어졌다.
"왜 작년에 전회사를 퇴사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조금 더 큰 기업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고 저번회사가 계약직이어서 이번에는 정규직으로 입사해서 오래 다니고 싶어서입니다."
나름 첫 번째 서류합격한 회사에서 면접이 순조롭게 끝나갔고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하여 2차 면접까지 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헤드헌터의 대답은 2주 뒤에 아쉽게도 '불합격'소식을 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첫 번째 면접이니까 이제부터 잘 보면 되겠다 생각했다. 게다가 당시 2월이라 취업 자체를 급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면접을 연습용 삼아 본 거라 생각하고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떨어져도 앞으로 잘 보면 된다는 생각에 암울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꼭 면접 1차에서 탈락의 고비를 마시게 되었다. 2차가 있다면 2차까지 못 가고 1차만 있다 하더라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 1차 마저도 떨어지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쯤이면 대략 6-7년 차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3번째 면접본 곳에서 면접관이 했던 말이었다. 이제까지 아르바이트 포함해서 수많은 면접을 봤지만, 살면서 면접과정에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어서 당황했다. 또한, 여기뿐만 아니라 많지는 않았지만 극소수의 몇몇 회사에서 기분 나쁜 질문을 하기도 했었다. 근데 올해 이직 준비를 하면서 거의 1년 만에 기분 나쁜 면접관을 만났다. 태도 자체는 예의 있었어도 말을 하고 물어보는 말투 자체에서 흔히 '답정너' 스타일로 말을 하는데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합격해도 '이런 상사와 이런 식으로 일을 하겠네?'라는 게 오히려 면접 때 드러나서 다행이었다. 합격해도 안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해보자. 대학교를 모두가 4년제 나온 것도 아니고 2년제를 나올 수도 있고 고등학교만 졸업할 수도 있다. 게다가 모두가 스트레이트로 졸업하지 않는다. 휴학을 할 수도 있고 재수를 해서 대학을 1년 늦게 들어갈 수도 있고 아무리 졸업을 스트레이트로 한다고 하더라도 취업이 바로 되지도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혹은 공무원을 준비해서 2-3년이라는 시간을 공부하고 공기업이나 공무원에 실패한다면 사기업으로 방향을 돌리기도 한다.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 각자의 삶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곳은 합격하더라도 안 가고 싶기 마련이다. 면접 보다가 이런 질문이 있으면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갑을관계가 아닌 '소개팅'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여서 면접 때 발견되는 게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을 때가 많다.
그렇게 면접을 보면 볼수록 회사를 보는 안목이 생길 뿐만 아니라 마음 자체도 단단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가짐은 면접을 6-7번째 봤을 때 점점 의욕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탈락과 실패에 점점 지쳐가기 시작한다. 사실 혼자서 넣었던 곳은 5곳이었고 나머지 5곳은 헤드헌터로부터 포지션 제안을 받아서 면접을 보긴 해서 더욱더 면접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붙기는커녕 경력 없는 신입 때도 3번째면 거의 붙었는데 뭐가 문제인 건지 계속 떨어지니까 취업을 안 하고 싶어 졌다.
'이제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고 이것마저도 안되면 한 달 동안 해외여행 하다가 다시 와서 일해야지!'
거듭되는 실패에 이제는 10번째 면접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이것마저도 떨어지면, 대만 2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2주 정도 여행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구직활동을 시작하려고 했다.
2월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6개월째 서류를 넣고 면접 보고 떨어지는 과정이 계속되어서 지칠 때로 지치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제 취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계속되는 실패는 휴식을 더 취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6월 말에 채용사이트에서 우연히 좋은 포지션이 보여서 지원을 하게 되었다.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그래도 원했던 직무여서 넣었다. 하지만 사실 이제까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붙을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
그런데 서류를 넣고 며칠 안 지나서 바로 메일로 연락이 왔다. 면접날짜를 보내며 언제가 편한지를 물어봤고 지체할 시간도 없이 바로 봤다.
면접 준비할 때, 미리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와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 몇 가지만 준비하고 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을 볼 때, 퇴사 사유는 이번에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큰 기업'에 가겠다는 것과 '계약직이어서 정규직으로 가고 싶다'라는 말이 면접관들한테는 억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7,8번째 면접부터도 솔직하게 말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더욱더 솔직하게 꾸밈없이 대답을 하였다. 특히 업계에 오고 싶어 하는 이유와 내가 1년 동안 '건강'을 챙기면서 느꼈던 모든 경험을 엮어서 면접장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면접이 잘 풀리기 시작하였다. 초반에 면접을 볼 때 '일' 얘기 말고 만약 '취미' 얘기가 나오거나 일 외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사실 그 면접은 합격으로 갈 가능성이 조금 낮다고 느껴지는 게 이제까지 면접 보면서 느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나의 일하는 스타일과 직무에 대한 관심, 업계에 왜 오고 싶어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물어보면서 온전히 '나'에 대해서 알려고 했다. 게다가, 1년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그 과정들을 초반에 퇴사사유로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로 꼬리질문이 이어졌고 솔직하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면접관님들이 나를 좋게 봐주셨고 열정이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좋아해 주셨다.
그렇게 그다음 날 바로 결과가 나왔고 3-4일 만에 2차 면접과 임원면접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종합격을 하게 되어 제약회사 마케팅 직무로 입사를 하게 된다.
나는 전 직장에서 영업관리 일을 해왔기 때문에 영업관리일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매번 마케팅에 대한 갈망을 계속 해왔었다. 워낙 SNS 하는 것도 좋아하고 영상편집이나 블로그에다가 글을 쓰는 것에 매우 흥미를 느꼈었다. 그래서 전부터 마케팅 직무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전 직장에서는 계속 내가 영업관리 일을 하기를 원했었고 회사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직무 이동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직무를 떠나 업계도 정말 안 맞았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건강'을 회복하며 정말 많은 약을 먹었는데 자연스럽게 제약회사 업계로 관심이 가게 되었고 그렇게 1년 동안 있었던 경험이 제약회사 업계의 합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요즘 '링크드인'을 보면 경력만 입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력 휴식기'도 입력할 수 있게 나와있다. 요즘 트렌드는 전과는 다르게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말 이직 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1년 동안 어떤 일을 하던, 예를 들어 자격증을 취득하던 그냥 쉬어도 그것 자체도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 나는 1년 동안 건강을 회복하면서 운동도 하고 3년 동안 못 가본 해외여행도 가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나'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갈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취업이 안된다는 거에 너무 기죽을 필요 없다. 나야말로 자격증을 취득한 거라고는 외국어와 MS office 자격증이 전부이다. 그런 사소한 자격증을 따는 것도 경험으로 이야기하면 충분히 이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이러한 경험 자체가 면접관을 설득시킬 수 있는 이유이기만 하면 된다. 납득이 될만한 이유를 말하면 된다. 단지 큰 기업으로 가고 싶다는 말보다는 정말 그 이유를 납득시킬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나는 큰 기업과 정규직으로 입사를 원했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면접관을 설득시킬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그러니 억지로 이유를 만든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나도 이런 느낌이 드는데 현업에 오래 계신 면접관님들은 얼마나 더 티가 날까? 그래서 꾸며내는 것보다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솔직하게 말을 하되 대신 면접관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말을 한다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크게 문제는 안된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이지만, 결국 떨어진 이유는 회사와 '결'이 안 맞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의 '건강' 이야기를 하더라도 떨어지는 곳도 있었다. 또한 퇴사사유를 안 묻는 회사도 있었는데 그곳은 신입을 뽑았고 1:1 면접이 아니고 다대다 면접이었기 때문에 전 경력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나의 진가를 알아봐 준 회사로 가게 되었다. 정말 내가 원했던 업계와 직무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맞는 자신에게 맞는 회사가 따로 존재한다. 생각보다 '운'도 매우 중요하기도 했었다. 그 '운'이 결국 1년 만에 발휘를 하게 되었다. 초반에 면접을 봤을 때 이 회사는 잘 맞을 것 같았지만 떨어진 곳도 있고 아니면 아예 회사와 내가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곳도 있다. 그러면서 나한테 맞는 회사가 존재할지 매번 고뇌하곤 했는데 드디어 찾게 되었다.
나는 이번 취업준비가 세 번째여서 그런지 그래도 3년 전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떨어진 게 생각보다 다행이었다. 9번 떨어지면서 이야깃거리가 더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패는 생각보다 힘들지만 그만큼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매개체와도 같다. 이번 취업준비를 세 번째 하면서 느낀 점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공감하겠지만 무보수로 봉사를 하던 아니면 1인기업을 하던 회사에서 일을 하던 결국 '소속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나도 1년 동안 휴식을 취하며 건강을 회복하니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정말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해서 어디든 취업해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였다.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 그러나 이것도 건강해야 할 수 있다. 다들 취업이 안된다면 너무 기죽지 말고 힘들겠지만 과정을 즐겨보자. 건강도 챙기면서 '나' 자신을 알아간다는 시간으로 생각해 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분명 맞는 회사가 나타난다.
과정은 매우 힘들지만, 20살 때부터의 나의 모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 여전히 이 모토가 내가 삶을 사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고 있다.
이제부터 제약회사 마케터로 살아가는 삶, 어떤 삶을 살아갈지 앞으로도 매우 기대된다.
*사진출처: 드라마 '변혁의 사랑', 드라마 '여우각시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