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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Nov 04. 2021

당신에게는 음악, 나에게는 소음 : 층간소음

#집 1

2018년 10월, 결혼을 준비하며 우리의 첫 번째 신혼집을 계약했다.

하루에 무려 일곱 군데의 집을 둘러보고도 아쉬움이 남아 마지막으로 한 집만 더 보자고 찾아간 집, 첫눈에 마음이 쏙 들었던 집이었다. 깨끗한 벽지와 바닥, 넓게 빠진 구조, 넉넉한 수납공간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다른 집을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다음날 가계약을 걸었고 12월에 입주하였다.


층간소음 전쟁이 시작되기 전, 전 남자친구(현 남편)가 신혼집으로 보낸 꽃 선물


#첫 번째


집을 계약한 후 가전, 가구를 고르고, 가전이 들어오기 전 날 나는 신혼집에서 혼자 자기로 했다. 가전이 몇 시에 배송되고 설치되는지는 배송 당일 아침에 알 수 있으므로, 시간에 맞춰 신혼집에 오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혼자 맞이하는 신혼집에서의 첫날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집에서 펼쳐질 신혼생활이 너무 기대됐다. 그러나 그 두근거림은 오래가지 못했다. 밤 12시경, 마이크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사람 목소리가 아니었다. 노래방에서 듣던 울림,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를 통해 퍼지는 소리였다.

‘윗 집에 노래방 기계가 있나?’, ‘왜 이 시간에 노래를 부르지? 연말이라 손님이 왔나?’, ‘아니면… 자주 이럴까?’

늦은 시간 울리는 노랫소리에 대한 불쾌감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결국 불면의 밤으로 매일 고통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예감으로 바뀌었다. 내 심장은 설렘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으나, 불안함으로 쿵쾅쿵쾅 거리며 진정되지 않았다.



#두 번째


가전과 가구 설치가 끝나고 다시 본가에서 잠을 자고 낮에 신혼집을 오가며 살림살이를 정리하였다. 낮 시간에 아파트 단지는 무척 조용했고 윗 집 또한 조용했다. 그날은 윗 집에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층간소음에 대한 불안함이 점점 옅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혼집에서 살림살이를 채우고 어떤 컨셉으로 웨딩촬영을 진행할지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 선거철이 아닌데 마치 선거 유세용 트럭이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온 것과 같은 매우 큰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이 노래의 가수가 누구인지도 알 수 있었고, 노래 가삿말 한 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왜 아파트에서 이런 광고 차량(?)을 내쫓지 않을까,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싶어 앞뒤 베란다를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에도 광고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노랫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귀를 기울이며 집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화장실 근처에서 가장 크게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또 윗집이구나. 그날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구나.’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화를 잘 참는다.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있거나 서운한 점이 있더라도 대게 몇 번은 꾹 참는 편이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나의 화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므로, 그래서 적당히 잘 지낼 수 있는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꼭 내가 ‘문제를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움을 받을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매일같이 머릿속까지 웅웅 울리는 소음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전 남자 친구(현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윗 집에 메모를 남겨보기로 했다. 혼자서라면 엄두도 못 냈을 테지만, 전 남자 친구에게 메모 내용까지 확인받고 그의 응원에 힘입어 윗 집 대문에 메모를 붙이고 밖으로 도망갔다.

대략적인 메모의 내용은 ‘정체모를 노랫소리로 밤잠을 설치거나 낮에도 머리가 울려 고통받았다, 소리를 줄이고 너무 늦은 시간에는 삼가달라.’는 것이었고, 최대한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남겼다.


그날 밤, 돌아온 신혼집 대문에 정갈한 글씨체의 메모가 붙어있었다. 윗 집의 답장이었다.

노랫소리는 윗 집에서 나는 것이 맞기 때문에 불편함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본인은 음악을 좋아하며, 밤 10시까지는 양해를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며 본인의 핸드폰 번호를 남겼다.

혹시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젠틀하고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그렇게 층간소음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세 번째


우리는 결혼을 했고, 본격적인 신혼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노랫소리가 확실히 작아졌다. 작은 비트가 둥둥둥둥 들리기는 하였으나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는 정도였고, 밤늦은 시간에는 그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방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웅웅 거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금방 그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기타 소리 같았다. 평소 저녁이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윗 집 사람이었으므로, 그 웅웅 거림은 기타의 울림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한번 소리를 의식하기 시작하니 그리 크지 않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온 신경이 윗 집의 기타 줄에 매달려있었다. 내가 소리를 처음 의식한 밤 12시부터 새벽 서너 시가 넘어서까지 웅웅 거림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날 아침 고민 끝에 남편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낸 날,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사흘쯤 지났을까? 답장이 왔다.

내 집에서 내가 음악을 좋아해서 하는데 뭐가 문제냐, 당신네가 예민한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지난번 쪽지에서의 젠틀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황당한 답장이었다. 정말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 무엇인지 절감했다.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윗 집 사람이 결코 젠틀하지 않다는 것을,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본인의 윗 집은 한 번도 항의한 적이 없고(그러나 우리는 결혼 후, 신혼집에 이사 들어온 후에 신발장 안에서 윗 집 사람이 남긴 메모를 발견했다. 이 전에 살던 사람도 같은 문제를 겪은 듯했다.), 그렇게 소음에 예민하면 우리가 단독주택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발걸음 소리나 문소리, 하수구로 물이 내려가는 소리 등의 생활소음이 아닌 사람이 컨트롤할 수 있는 노랫소리, 음악소리로 본인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제부터 층간소음 전쟁이다.



#네 번째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기분 나쁜 웅웅 거림에 밤잠을 설쳤고, 낮시간에도 윗 집의 발 망치소리와 무거운 물건을 끄는 소리, 바닥에 툭 내려놓는 소리, 전동드릴 소리, 진짜 망치질하는 소리 등등으로 온 신경이 예민해져 갔다.

관리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윗 집의 층간소음에 대하여 항의를 했으나 자기네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안내해주고 나를 돌려보냈다. 그 집에 대한 층간소음 항의는 처음이라며 마치 그 집은 문제가 없다는 듯한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남편은 날로 예민해져 가는 나를 걱정하며 이사할 집을 알아보았다. 신혼집을 소개한 공인중개사 사장님에게도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러고 나서 사장님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이사까지 생각할 정도로 층간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지, 관리사무소에서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관리사무소로부터 전화가 왔다. 층간소음에 대해 주의를 주는 안내문을 엘리베이터에 부착하고, 동 전체에 안내 방송을 하겠다고 했다.

왜 내가 찾아갔을 때에는 그러한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젊은 여자가 혼자 찾아가 항의하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까? 화가 났다. 그리고 이 아파트에 대해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다음날 엘리베이터는 층간소음에 관한 포스터가 붙었고, 저녁에는 층간소음으로 이웃에 피해를 주지 말고 서로 배려하자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섯 번째


관리사무소보다 적극적으로 윗 집과의 층간소음 갈등을 중재해줄 제삼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전에 관리사무소가 알려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민원을 접수했다. (http://www.noiseinfo.or.kr)


며칠 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소음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지, 윗 집과의 갈등 상황이 어떠한지 확인하였고, 층간소음을 어떻게 중재하는지 절차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안내된 절차는 다음과 같다(2년 전과는 다소 달라진 듯하다).


우선 센터에서 윗 집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민원 접수 내용을 우편으로 통지하였고, 진행상황을 전화로 안내해주셨다. 아울러 층간소음을 유발한 상대 세대에서 우편 수신을 하지 않거나 전화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 경우에는 관리사무소가 직접 상대 세대에 연락을 하거나 방문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으면 중재가 어렵다는 사실도 설명해주셨다. 현재 홈페이지에 안내된 절차에 따르면 상대 세대의 동의 없이도 층간소음을 측정할 수 있으나, 2년 전에는 동의 없이 소음을 측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 세대의 동의 하에 소음을 측정한다고 하더라도 센터의 상담과 중재 등은 강제력이 없으므로, 결국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였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 다시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윗 집 사람이 상담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여 기대하지 않았는데(아파트 관리사무소의 태도도 소극적이었으므로 중재를 받을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의외로 윗 집과 연락이 닿아 전화상담을 진행하였다고 하였다.

상담을 통해서 1. 음악 관련 장비를 안방에서 작은 방으로 옮기고 2. 늦은 시간엔 악기 연주 등을 하지 않겠다는 해결책을 마련했고, 원한다면 소음측정도 실시하겠다는 선 동의(?)까지 하였다고 한다. 전화상담을 받은 것이 6월경이었는데 이미 소음측정 신청이 많아 빨라야 12월에 측정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상담을 해주시던 선생님께서는 소음측정을 당장 하기가 어려우니, 일단 위와 같은 해결책으로 소음 문제가 개선되는지 지켜보고 이후 절차를 진행하자고 권유하셨다.


사실 소음측정은 상대 세대에 미리 통보하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소음측정을 신청할 생각은 없었다. 어떤 바보가 소음을 측정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평소와 같은 소음을 내겠는가. 당당하게 소음측정을 해도 된다는 윗 집의 태도가 우스웠지만, 윗 집 사람에게 귀찮고 신경 쓰이는 일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관리사무소에 윗 집이 층간소음 유발자라는 낙인을 찍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한동안은 정말 안방 위에서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결론


메모를 남기고, 문자를 보내고,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통한 중재가 있어도 결국 우리는 층간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는 윗 집 베짱이는 어느 날은 홀로 기타 연주를 하며 잔잔한 노래를 부르고, 또 어떤 날은 여러 명이 모여 합주를 하면서 시끄러운 노래를 불러댔다.

밤늦은 시간에도 세탁기 소리가 났다.

낮에는 전동드릴 소리, 망치 소리가 자주 들렸다(도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은 덤이다.)


참다못해 문자나 전화를 하면, 윗 집 사람은 그대로 우리에게 갚아주었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지속적인 망치소리가 나서 전화를 하면, 며칠 뒤 우리 집에 아이가 있냐며 아이가 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문자를 남기는 식이다.

우리는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이고 아랫집인데, 누가 봐도 유치한 복수였다.


층간소음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이사를 가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년의 계약기간을 채우고 우리는 신혼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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