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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Dec 01. 2021

시간 도둑, 손뜨개의 매력

#취미생활 1

생각이 많아질 때, 그런데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단순 노동만큼 좋은 것이 없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바로 손뜨개질을 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항상 예쁜 레이스 모양을 뜨고 계셨다. 레이스들이 모여서 모자가 되기도 하고, 스웨터가 되기도 하고, 받침대가 되기도 하였다.

스킬 자수나 십자수, 목도리 뜨기 등이 한참 유행이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나도 무언가 사부작 거리길 좋아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손뜨개질을 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아서 그런지 조금만 배우면 금방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바늘로는 목도리와 같이 단순한 모양(물론 꽈배기/바둑판/자라 등 다양한 모양을 낼 수도 있다.)의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코바늘로는 모자나 가방, 인형 등 다양한 것들을 뜰 수 있으니 나도 코바늘로 손뜨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배운 몇 가지 뜨개 방법으로 도안 없이 가방을 뜨기도 하였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여행을 가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으니 시험이 끝나고 난 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다. 그때 떠올린 것이 뜨개질이었다. 대학생 시절 모자를 몇 번 떠보긴 하였으나(세이브더칠드런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했었다.) 오랜 시간 안 했던 뜨개질을 다시 하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쉬운 것부터 떠보기로 하였다.


티 코스터 /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크기가 작고 무늬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티 코스터’ 뜨기로 뜨개질을 시작했다. 물론 ‘쟈스민스티치’(좌측 가운데 3개)는 유튜브로 여러 번 보며 따라 해 봐도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아 뜨다가 다시 풀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뜨개 방법이 어려운 편이기도 하지만, 영상에서 사용된 실과 내가 쓰는 실 두께가 달랐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크기로 뜨기 위해서 도안에 없는 여러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보통 티 코스터는 30분 정도면 한 개를 완성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도 많은 양의 티 코스터가 집에 쌓여 갔다. 그래서 작년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소품으로 인형을 떠보기로 하였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눈사람 / 시베리안 허스키 인형

인형을 뜨는 데에 자신감이 붙어서 강아지 인형도 떠보았다. 워낙 작아서 뜨고 난 후 안에 솜을 넣는 작업이 더 힘들었다.


올해에도 티 코스터를 뜨려고 새로운 실을 샀다. 온라인으로 구매했더니 생각한 것과 질감도 달랐고 색상도 달랐다. 빳빳한 실이라 코 하나하나 뜰 때마다 실이 실 사이에 빡빡하게 껴서 잘 빠져나오지 않았다. 바늘을 잡은 손에도 힘이 있는 힘껏 들어가고, 실을 감고 있는 손가락은 빳빳한 실에 쓸려서 쓰라렸다. 이 실로 조그마한 티 코스터를 뜨다가는 저릿저릿하고 쓰라려서 손이 다 망가질 것 같았다.

실이 아까워서 뭐라도 뜨기 위해서 사람들은 이 실로 무엇을 뜨나 후기를 찾아보았다. 빳빳한 실은 잘 늘어나지 않아서 튼튼하니 가방을 만들 때 많이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네이버와 유튜브를 열심히 검색해서 모양이 마음에 드는 가방을 찾아냈다.

라이트바이올렛색 / 카키색 가방

이번에도 두께감 있는 털실로 가방을 뜨는 영상을 보면서 가방 뜨는 방법을 익혔다. 내 실은 털실보다는 얇았기 때문이 기본 코 수도 늘려야 했고, 그에 따라서 반복되는 패턴의 수도 늘어났다(영상에서 설명한 것보다 내가 뜬 가방의 다이아몬드 패턴 개수가 더 많다.). 패턴을 만드는 규칙을 터득하고 나니 쟈스민스티치를 뜨던 때보다 금방 가방 하나를 완성했다.

사진을 보거나 우리집에 놀러 와서 내가 뜬 가방을 직접 본 친구들이 가방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첫 작품인 카키색 가방은 내 것으로 남겨두고, 연보라색, 갈색, 라이트 바이올렛색 가방을 더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손뜨개질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친구에게 뜨개질을 알려주었다. 내가 뜨는 모습을 보여준 다음 친구가 직접 떠보도록 했다. 처음 손뜨개질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왼손 새끼손가락에 실타래에서 풀려나오는 실을 감아두고, 검지로 한번 더 실을 받친다. 그리고 중지와 엄지 손가락으로 이미 뜬 부분을 잡는다. 코바늘은 오른손으로 잡는다.

손뜨개질은 오른손으로는 코바늘을 잡고, 왼손으로는 코바늘에 실을 감아서 한다. 그리고 실로 만들어진 코에 코바늘을 넣고 실을 감은 후 다시 코 밖으로 감긴 실을 빼낼 때, 코바늘을 쥔 손과 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로 빡빡하게 실을 바늘에 감아야 하는지, 코에서 실과 코바늘을 빼낼 때에 양손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야 하는지 요령이 없다. 손가락에도 실을 감은 상태에서 바늘에 실을 감다가도 바늘과 실을 코 밖으로 빼내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에 감은 실은 내팽개치고 바늘에 걸린 실을 빼내기가 바쁘다. 그래서 실을 잡고 있는 왼손이 사진과 같은 안정적인 자세가 나오기까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서툴게 뜨개질을 하는 내 친구도 왼손이 바빠서 자세가 나오질 않았다.

가방 하나를 뜨려면 보통 일주일이 걸렸다. 물론 어떤 날은 TV를 보며 하루 종일 뜨개질을 하기도 했지만, 일이 있으면 하루에 1시간도 못 뜨는 날도 있었다. 어쨌든 네 개의 가방을 뜨고 또 여러 개의 티코스터를 뜨면서 꽤 오랜 시간을 뜨개질로 보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내 왼손은 제법 손뜨개를 잘하는 사람의 자세가 나온다.


손뜨개질은 실과 바늘을 손가락으로 움직이면서 실의 짜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이지만 손뜨개질을 하는 시간만큼은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 실과 바늘을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뜨개질을 했다.

언제 다시 뜨개질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또 무엇을 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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