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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Dec 17. 2021

며느리는 딸이, 사위는 아들이 아니라지만

#결혼생활 1

어제는 남편의 생일이었다. 생일날 연차를 쓰고 싶었지만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생일 전 날에 연차를 썼다. 그래도 남편 생일선물로 살 운동화도 보러 가고, 뮤지컬도 보러 가기로 하였다. 생일 당일에는 저녁에 시부모님을 초대하고 남편 생일상을 차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생일 전 날 하루 종일 병원에 있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난 주말, 사위의 생일상을 차려주겠다고 하여 친정집에 갔다. 남편은 친정엄마가 만든 얇고 바싹한 튀김옷의 탕수육, 흐물흐물 입에서 녹는 갈비찜을 좋아한다. 남편은 소화제까지 챙겨가는 철저함을 보였다. 아빠는 사위 덕에 좋아하는 갈비찜을 이틀 내리 먹었다고 하셨다.

식사  아빠는 이번 건강검진에서 엄마의  내시경 사진을 직접 보고 와서 걱정이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이쯤 엄마는 위궤양으로 고생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위궤양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아무런 증상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셨다. 속이 쓰리거나 콕콕 쑤시는 느낌이 없어서  내시경을 하고 결과를  때까지 전혀 위궤양을 의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출혈 부위가 꽤나 넓어서 의사 선생님은 출혈 부위  조직을 떼어내서 조직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엄마는 직업 특성상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 전에 든든히 식사를 챙겨 먹지도 않으신다. 출근 전 집안일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식사를 거르고 출근하는 날이 꽤 많았다. 그러다 보면 하루 종일 굶다가 밤 10시, 11시가 되어서야 첫 끼이자 마지막 끼니를 챙기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위가 멀쩡하게 버텨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그래서 외가 친척 중에 암에 걸린 분이나 지병이 있었던 분은 없었지만, 위와 관련된 이번 건강검진 결과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때마침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남편이 연차를 쓴 생일 전 날이었고, 엄마와 함께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나에게 남편은 고맙게도 같이 가자고 이야기해주었다.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커졌다. 엄마는 혼자 다녀와도 된다고 하면서도, “괜찮겠지. 암이어도… 뭐 어쩌겠어. 암인 거지.”라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떨려왔다. 결국 병원 가기 전날 나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사 와 장조림을 만들었다. 내 기분처럼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하루 종일 날이 흐린 탓에 기분이 더 가라앉은 것 같기도 했다.

소고기를 부드럽게 삶지 못해서 엄마의 잔소리를 들은 장조림.

남편과 친정집에 가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제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전 날 내린 비 때문에 바닥이 젖어있어서 미끄러운 탓이었다. 계단 모서리에 꼬리뼈 부근을 부딪혔지만 마음이 급해서 아픈 줄도 몰랐다. 괜찮냐고 묻는 남편에게 괜찮다는 대답 대신 어서 가자는 말만 하였다.

엄마와 함께 마주한 의사 선생님은 우리 마음을 잘 알고 계신다는 듯이 바로 결과부터 말씀해주셨다.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보여주신 위 내시경 사진은 내가 봐도 심각했다. 동굴과 같은 위 내부 사진에서 전체의 10~20%가량의 면적의 빨간 핏덩이가 보였다(물론 위 전체가 아닌 위 일부를 캡처한 사진이었지만). 위궤양의 원인은 스트레스나 과다한 소염진통제 복용, 맵거나 딱딱한 자극적인 음식 섭취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위궤양 약을 두 달 정도 더 먹어보고 출혈 부위가 완전히 진정이 된 다음 다시 위 내시경을 해보자고 하셨다. 피딱지로 덮여 있는 부위에 암세포가 있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조직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지만 병원을 나서는 엄마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밤새 잠은 푹 잤는데 아침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말 암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야 혼자서는 병원에 무서워서 못 갔을 것 같다고 하셔서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따라온 것이 뿌듯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럴 때는 내가 백수라서, 엄마가 필요할 때 달려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와 남편, 그리고 나는 밖에서 점심을 먹고 친정집으로 돌아왔다. 초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자랑을 하려고 보낸 사진에 아빠가 단골 초밥집에 갔는지 묻자 남편이 그렇다고 대답을 해드렸다. 그러자 아빠는 우리 사위도 같이 있냐면서 내심 고마워하시는 눈치였다. 남편도 마음이  놓였는지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어디서든 잠을  잔다. 이런 사람이 매일 집에 오고 싶다고  정도로 병원은 불편한 곳이었나 보다.). 그리고 남편이 잠든  30 정도 지난  시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님께서는 공부하는 사람 방해하면  된다며 먼저 연락하시는 일이 거의 없다.

“아가, 음식 많이 하지 말어. 아빠가 어지럽다고 해서 병원에 왔어. 음식 해도 못 먹을 거 같아.”

허리를 삐끗하거나  뼈에 금이 가도 우리에겐 일절 연락하지 않는 시부모님이시다. 우리가 걱정할까 , 병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고생시킬까  어느 정도 치료가 되면 말씀해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신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께서는 우리가 가겠다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리셨고, 전화 소리에 잠이  남편이 바로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병원 응급실에 계신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바로 친정집을 나섰다.




시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신 편이다. 30년대 중후반생이신 시부모님은 우리 외할머니와 연배가 비슷하다. 늦둥이 남편이 있는 덕분에 두 분은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셨고(아버님은 매일 헬스장에 가셔서 3시간 정도씩 운동을 하고 오신다. 다재다능하신 어머님은 스포츠 댄스를 배우러 다니시곤 하였다.), 결혼식날 시부모님의 꼿꼿한 허리와 빠릿빠릿한 움직임을 본 내 친구들은 너무 젊고 건강해 보이신다고 감탄 일색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께서는 보통의 어르신들보다 생각이 깨어있으신 편이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는 며느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오히려 그런 자격시험을 준비할 생각을 어떻게 했냐며 기특해하셨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젊고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실 줄만 알았는데, 병원으로 가는 내내 남편과 나의 걱정은 끊이질 않았다. 항상 식사도 잘하시고 잠도 잘 주무시던 아버님이 끼니도 거른 채 누워있으시니 어머님도 많이 놀라신 것 같았다. 그런 어머님께 드릴 따뜻한 쌍화탕을 사서 응급실로 들어갔다.


코로나 시국에는 응급실에 보호자 1인만 출입이 가능했다. 어머님이 보호자 대기실로 나오고 출입증을 남편에게 넘기셨다. 아버님께서는 괜히 애들에게 전화를 했다며 어머님을 혼내셨다고 하셨다. 그런 어머님, 아버님께 이럴 때 전화 안 주시면 아들을 불효자로 만드는 것이라며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집에 있는 며느리한테라도 꼭 전화를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나도 잠시 아버님 얼굴을 뵈러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었는데 늘 웃는 얼굴로 맞이해주시던 아버님이 기운 없이 누워계셨다. 안 그래도 환자가 수시로 들어왔다 빠지고 의료진들이 바삐 움직여 정신이 없는 응급실에서 며느리가 옆에 있으면 신경이 쓰이실 것 같아 금방 보호자 대기실로 나왔다.


아침에 침대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시던 아버님은 갑자기 화면이 360 돌아가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끼고 일단 자리에 누워 계셨다고 한다. 그리고 어지럼증이  나아진  같아 다시 앉아서 핸드폰을 보자 또다시 세상이 뱅글뱅글 돌았다고 하셨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해서  챙겨 드시던 아침 식사도  먹겠다고 하시자 어머님은 당장 병원에  채비를 하셨다. 뇌졸중이  것은 아닐까 겁이 나서 혈액순환이  되도록 아버님 손도 따시고, 병원에 오래 있게  것을 대비하여 대충 밥을 한술 뜨시고 택시를 잡으셨다. 어머님은 대범하고 추진력도 강한 여장부이시지만, 집안에 온갖 약과 겉옷들이 널브러진 것을 보니 얼마나 놀라고 당황하셨을지 짐작할  있었다.

뇌졸중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후유장애가 남을 수 있고 심각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은 이석증이 의심된다고 하셨지만, 혹시나 모를 경우를 대비하여 뇌졸중인지 여부를 먼저 검사하였다. 우선 뇌 CT를 먼저 찍고, 폐 X-ray와 혈액검사를 실시하였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응급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보호자 대기실에는 우리처럼 환자 가족들이 총출동하여 사람이 바글바글해졌다. 물론 검사 결과를 보고 진료를 보아야 해서 대기 시간이 필요했을 테지만, 응급실에 온 지 4시간이 지나서야 이비인후과 전문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석증 치료방법으로는 이석 치환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고개의 위치를 바꿔가며 반고리관에 들어간 이석을 원래의 위치(전정 기관)로 이동시키는 치료법이라 한다(출처 :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엎드렸다가 앉았다가, 고개 위치를 바꿔가면서 귀 아래쪽 목에 진동을 주는 기계를 대며 이석 치환술을 실시하였다. 치료가 성공하면 즉시 어지럼증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아버님의 경우에는 여전히 어지럼증을 느끼셨다.


어머님은 다시 아버님을 집으로 모셨다가 이상 증상이 발생하면 대처가 늦어지는 것이 우려되어 입원을 할 수 있는지 문의를 하셨다. 일단 입원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아버님은 코로나 PCR 검사를 받으셨다. 어머님은 우리가 뮤지컬을 예매한 것을 알기라도 하신 듯 혼자 계셔도 된다며 먼저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아버님께서 입원을 하시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어머님 혼자 고생하시게 둘 수 없었고, 오늘 바로 퇴원을 하게 된다면 아버님을 모시고 댁으로 가야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저녁시간에 예매해둔 뮤지컬 티켓을 남편 친구 부부에게 넘겼다. 그리고 쌍화탕은 물론이고 물 한 모금 하지 않으시던 어머님을 모시고 근처에 있는 죽집으로 향했다. 어머님은 죽을 드시면서도 아버님이 저녁시간을 넘겨 입원하면 저녁식사도 안 나오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셨다. 남편은 입원 여부가 확인되면 그때 죽을 포장 하러 오겠다고 했지만, 어머님은 본인이 죽을 다 드시기도 전에 아버님 죽부터 주문하셨다.

의사 선생님은 혹시나 뇌경색일지도 모르니 뇌 MRI 검사를 해보고 이상이 없으면 바로 퇴원을 하실 것을 권유하셨다. MRI에서도 이상이 없으면 이석증인 것이니, 처방해주는 약을 먹고 이틀 뒤 다시 병원에 와서 치료를 해보자고 하셨다. 이석증은 한 번에 치료되는 경우도 있으나 두어 번 더 치료를 받아야 어지럼증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저녁시간 사람이 많은 탓인지 2시간이 더 지나서야, 남편이 두 번 더 확인을 하고 나서야 뇌 MRI 검사를 받으셨고, 다행히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 하루 종일 식사를 못하신 아버님이 죽을 조금 뜨시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 9시가 되었다. 그리고 사돈어른이 많이 편찮으신지 걱정하는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거의 하루 종일 병원에 있었던 우리는 입었던 모든 옷에 소독제를 뿌리고 옷을 벗어 세탁통에 넣었다. 그리고 샤워를 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꼬리뼈 부근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빨갛게 살갗이 까진 것을 발견하였다.

‘아, 나 아침에 계단에서 미끄러졌었지…’

아픈 줄도 모르고 아침부터 마음이 급했던 나는 그제야 꼬리뼈가, 척추를 따라 이어지는 허리와 등줄기가, 그리고 팔과 다리 온몸이 아파왔다. 그래도 다음 날은 남편 생일이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몸살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미리 예약한 생일 케이크 /  급하게 차려준 생일상

오전에는 예약한 생일 케이크를 찾아오고,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에게 따뜻한 생일상도 차려주었다. 저녁에는 소화가 잘되고 기력 회복에도 도움이 되는 삼계탕을 배달시켜 먹기로 하였으나, 시부모님 두 분이서 식사하실 때 드실 수 있도록 미역국(친구가 신혼여행 가서 보내준 울릉도 자연산 미역으로 끓인 미역국. 자연산은 확실히 다르다.)과 버섯전을 넉넉히 준비했다.

오후에 동네에 있는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에 다녀오신 아버님은 말끔하게 어지럼증이 나아서 돌아오셨다. 어제부터 울렁거리던  진정되어서 배달해온 한방 삼계탕을 깨끗하게 비우셨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식사를 잘하시는 모습만 보아도 배가 부른 듯한 표정이셨다. 우리도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저녁식사 후에는 케이크 한판을 모두 해치웠다. 아무리 작은 케이크를  와도  먹은 적이 없었는데, 모든 식구가 맛있게 드시니 아침부터 바삐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긴박했던 전 날과 달리 모든 것이 순조롭고 알찼던 하루를 마치며 시댁을 나서려는 우리를 붙잡고 시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어제 병원에 온 것부터 오늘 생일상 차린 것까지 너무 고생이 많았어. 생일인데 엄마가 밥도 못해주고 미안해.”

35년이 넘게 매년 생일상을 차려주시고도 한 번을 못해준 게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전 날 하루 종일 병원에서 마음을 졸이신 탓도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운동을 쉬게 되시면서 어머님도 전보다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다. 어머님의 속상한 마음을 헤아린 남편은 몸 컨디션이 좋아지시면 아들이 좋아하는 육개장도, 며느리가 좋아하는 전골도 해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하면서 내가 걱정하고 챙겨야 할 가족도 늘어났지만, 내 가족을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가족도 늘어났다.

표현을 잘 안 하시는 친정 아빠는 사위가 없는 자리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사위가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다. 살갑게 자주 연락을 드리거나 역시나 표현이 많은 사위는 아니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향한 진심을 잘 알고 계셨다.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지만, 사위는 아들이 아니라지만, 그렇게 우리는 서로 걱정하고 위해주는 진심으로 점점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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