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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Jan 25. 2022

숨 막히는 눈치 싸움 : 명절 준비

#결혼생활 2

결혼을 하고 처음 맞이하는 명절은 추석이었다. 첫 명절이니 시댁에 가서 명절 음식은 어떤 것을 준비하는지도 보고 어떻게 요리하는지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친정 아빠는 3남매 중 유일한 아들로, 친정집에서 명절마다 차례 준비를 하였다. 그 덕분에 나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엄마를 도와서 재료를 다듬고 전을 부치면서 명절 음식을 함께 했다. 특히 할머니께서 명절 음식을 함께 하는 것이 버거워지셨을 때쯤부터 각종 전들은 나의 담당이 되었다. 동그랑땡 재료를 다듬고 부치는 일, 꼬치전을 만드는 일, 녹두전을 부치는 일은 20년 경력의 베테랑이 되었다.


그래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것에는 큰 부담이 없었다. 시부모님께 명절 음식을 할 때 미리 말씀해주시면 시간 맞춰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추석을 열흘 정도 남겨놨을 즈음 아버님께 카톡으로 사진을 받았다.

(위부터 시계방향) 게맛살, 쑥, 새우, 단호박, 새우, 오징어 튀김.

공부하는 며느리가 명절 음식에 신경 쓸까 걱정되어 미리 명절 음식을 준비하신 것이다. 사진에는 없지만 동그랑땡과 꼬치전도 다 해놓으신 상태였다.

사실 2차 시험이 끝난 후에 추석이 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었다. 추석 연휴 끝자락에는 캐나다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의 일출 / 택시기사 아저씨가 드라마 도깨비 명소를 꿰뚫고 있던 퀘백

7남매 중 장남이신 아버님, 그래서 어머님은 아버님과 결혼 후 열명이 넘는 끼니를 챙기셔야 했고, 온 친척들이 명절에 모이면 명절 음식은 기본 30인분 이상이 준비되어야 했다.

늘 친정 엄마께 명절에 오는 손님도 없는데 손이 왜 이렇게 크냐고 말하곤 했는데, 김장을 담가도 될 정도로 큰 스테인리스 대야에 있는 시어머님의 잡채를 보니 ‘손이 크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장보기부터 시작해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데에만 일주일은 족히 걸릴 양이었다. 이대로 계속 시부모님이 명절 음식을 하시다간 큰일이   같았다.


그래서 이때부터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의 숨 막히는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1

다음 해, 명절을 한 달 앞두고 홈쇼핑에서 새우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시부모님보다 먼저 전을 부쳐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당장 새우부터 주문했다.

신혼집은 시댁과 차로 30~40분 정도는 걸리는 거리라서 시댁에 찾아뵙기 전에 미리 연락을 드렸었다. 그런데 곧 명절이라 보게 될 테니 바쁜데 오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두어 번이나 시댁에 찾아뵙는 걸 말리셔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슨 일이 있나 여쭈어보니, 어머님께서 넘어지실 때 손으로 바닥을 짚으시는 바람에 손목을 다치셨다고 하셨다. 아들과 며느리가 온다는데 손목이 아파 음식을 해줄 수가 없으니 한사코 집에 오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새우가 배송되고 바로 새우튀김, 꼬치전과 동그랑땡을 해서 시댁에 갔다. 손목을 자꾸 쓰면 좋지 않으니 이번 명절만 우리집에서 지내자고 말씀드렸다. 10  전에 모든 제사를 정리하고 명절도 각자 지내자고 어머님이 선언을 하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10 전까지만 해도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서 하룻밤 자고 가면 친척들이 덮었던 이불산처럼 쌓였다고 한다.

3시간동안 무려 새우 200마리를 튀겼다. / 꼬치전 고기는 왜 이리 긴걸까?

항상 친정엄마와 함께 명절 음식을 준비하다가 처음으로 혼자 기억을 더듬어가며 준비했는데(물론 남편도 함께 새우를 튀기고 전을 부쳤다.), 생각보다 동그랑땡이 퍽퍽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서 만들 때 돼지고기 비율이 좀 더 높아야 부드러운데, 이 때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1:1 비율로 섞어 만들었다.

명절 당일에는 잡채와 미역국, 나물 두어 가지에 탕수육을 만들었다. 시부모님께서는 퍽퍽한 동그랑땡과 바삭하지 않은 탕수육을 맛있게 드셔주셨다. 나중에 들었지만 명절 문안인사차 전화를 했던 시누이들(남편의 고모님들)에게 아들 집에 가서 식사를 한다고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2

새우튀김과 탕수육을 만들면서 기름 냄새에 질린 남편은 다음부턴 절대 튀김은 하지 말자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서 그다음 명절에는 동그랑땡만 만들기로 하였다. 설 전에 아버님 생신이 있어서 이미 어머님이 꼬치전을 한가득 만들어두셨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언제 설음식을 준비하실지 시부모님은 절대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래도 3주 전이라면 아직 준비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신혼집에서 네다섯 시간 동안 서서 새우튀김, 탕수육을 만들다가 고생을 했던 우리는 굳이 좁은 방에 상을 펴고 전을 부쳤다.

시부모님 깻잎전 모양을 흉내내서 만드는 중

소고기 한 근, 돼지고기 두 근을 샀다. 정육점 사장님은 식구가 많은지 물어보셨다.

“저희 시부모님까지 네 명이서 먹을 거예요.”

“네? 난 또 엄청 대가족인 줄 알았네.”

그리고 우리가 바로 명절마다 소고기 열댓 근씩 사가시는 어머님의 아들, 며느리라고 말씀드렸더니, 그제야 수긍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두 번째 신혼집은 시댁과 걸어서 3분 거리이어서 어머님과 같은 정육점을 이용했다.


우린 정육점 사장님 말씀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동그랑땡 한 가지만 한다고 고기를 잔뜩 샀더니, 여러 가지 튀김과 전을 했던 것 못지않게 하루 종일 기름 냄새를 맡아야 했다.



#3

세 번째 신혼집(이쯤 되면 이제 ‘신혼’ 자를 떼어야 할까?)에서 결혼 후 맞는 여섯 번째 명절을 앞두고 우린 또 언제 전을 부칠까 고민했다. 온라인 수업을 주로 듣던 작년과 달리 주 6일 학원을 가다 보니, 결혼식 등 이런저런 일정을 제외하면 설 직전에야 시간이 날 것 같았다.


남편은 시댁 창고에 두고 온 짐을 가지러 가면서(지금 사는 이 집은 시댁과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이다.) 이 숨 막히는 눈치싸움을 끝내는 통보를 하고 왔다.

“이번에 저희가 동그랑땡 할 거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준비하지 마세요.”

아버님, 어머님은 공부해야 되는데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식사 후 설거지도 못하게 주방에서 내쫓는 시어머님이시다.), 남편은

“며느리 성격이 원래 그런데 어떡해요. 저희가 해야 마음이 편하대요.”

라며 당당하게 동그랑땡을 만들 권리(?)를 찾아왔다.

(위부터 시계방향) 알록달록 동그랑땡 재료 / 표고버섯전 / 오이고추전 / 깻잎전

지난 일요일, 소고기 300g과 돼지고기 600g(한 근)으로 양을 줄여서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드디어 내가 찾은 동그랑땡의 황금비율은 소고기 : 돼지고기 : 두부 = 1 : 2 : 1.5이다.


조금만 우리 몫으로 남기고(사진에 나온 정도가 우리 몫) 시댁에 가지고 갔더니, 이미 시댁에서도 우리 몫의 꼬치전을 준비해두셨다. 바로 이틀 전에 전을 부치신 것이다.

뚜껑이 닫히지 않을만큼 수북히 쌓아서 주신 꼬치전

남편이 시댁에 동그랑땡을 만들겠다고 말씀드리고 왔다고 했을 때 신경 쓰실 텐데 왜 말씀드렸냐고 했다. 하지만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한발 늦을뻔했다. 남편을 칭찬하며 말했다.

“다음에도 미리 말씀드리고 준비하자.”


이렇게 숨 막히는 눈치싸움은 끝이 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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